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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 지아 Aug 07. 2021

유튜브 쇼츠, 인스타그램 릴

짧게 더 짧게

번아웃 주요 증상이었던 무기력증이 조금씩 좋아지고 있다고 느끼던 치료 2개월째쯤, 영화를 한 편 봤다. 마음에 들었던 영화 내용보다, 너무 오랜만에 영화를 집중해서 봤다는 사실이 감격적이었다.


(Header: Photo by Psk Slayer on Unsplash)


 [어바웃타임]| Photo by imdb.co


정신상태가 안 좋을 때는 어떤 일에 오랜 시간 집중하는 게 그 무엇보다 고되다. 


그 당시에는 이렇게 생각하지도 못했지만, 무기력증이 아주 천천히 나를 옭아매기 시작할 때부터 집중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책은 고사하고 한 시간이 넘는 영화를 보는 일이 너무나 힘겨웠던 것이다. 대신 나의 시간은 흥미롭지도 않은 유튜브의 자동재생 영상들이나 인스타그램의 릴 (15초 길이의 짧은 영상)을 의미 없이 스크롤하는 것에 쓰였다. 


집중은 잘 안됐어도 가만히 있는 것은 견디기 힘들어서 항상 무언가를 보거나 듣고 있었다. 진짜 해야 될 일이 있었을 때도 5분마다 (알람도 울리지 않은) 핸드폰을 확인했다. 이 버릇은 지금도 끊기가 참 힘들다.


요즘 나오는 노래들, 특히 팝송은 대부분 재생시간이 3분 정도이고 2분대의 곡들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빌보드 싱글차트 핫 100에서 9주째 1위를 차지하고 있는 BTS의 [버터]의 재생시간은 2분 45초. 빌보드 탑 10 순위를 몇 주 째 지키고 있는 '더 키드 라로이 & 저스틴 비버'의 [스테이]는 무려 2분 22초다.


[스테이] 뮤직비디오 썸네일 | Photo by YouTube

유튜브에서 새로 론칭한 'YouTube Shorts (유튜브쇼츠)'는 1분 이내의 영상만을 올릴 수 있고 영상 시작 1~2초 이내에 결정되는 첫인상에서 시청자의 흥미를 끌지 못하면 조회수를 얻기 힘들다. 앞서 언급한 인스타그램 '릴'은 15초 이내의 동영상이다.


사람들이 이렇게 짧고 자극적인 콘텐츠에 몰두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점점 빨라지는 인터넷 속도나 미디어 기술의 영향도 있겠지만, 내 경험처럼 많은 이들이 시간이 오래 걸리는 무언가에 집중하기 힘든 마음 상태가 된 것은 아닐까.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에는 섬뜩한 문장이 나온다. 


상품(컨텐츠)에 돈을 내고 있지 않다면, 당신 자체가 상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If you're not paying for the product, you ARE the product.


내가 인스타그램의 릴 스크롤을 내릴 때마다 분석이 이뤄진다. 내가 좋아하는 영상은 어떤 종류인지, 음악은 어떤 걸 좋아하는지, 어떤 콘텐츠는 1초도 안 보고 밀어버리는지. 어떤 광고를 넘기지 않고 볼지. 어떻게 하면 이 사용자가 긴 시간을 이 '앱'에 할애할 수 있을지. 


이렇게 정교한 알고리즘에 당해낼 사람은 많지 않다. 의도적으로 핸드폰을 보는 시간을 줄이려고 노력하지 않는 이상. 


SNS 종사자, 사업가들이 그들의 사업 기밀을 폭로한 다큐멘터리 [소셜딜레마] | Photo by NETFLIX


더 짧은 영상이나 음악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에 조금의 여유가 생긴다면, 본인이 정말 원하는 양질의 콘텐츠를 즐길 수 있을 수 있지 않을까. 두 시간 동안 틱톡 영상들을 보는 것과 두 시간짜리 영화 한 편을 보는 것, 둘 중에 어떤 것이 더 기억에 남을 경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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