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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Gia 지아 Jan 04. 2022

첫 연봉협상

여성은 협상을 하지 않는다.

나의 첫 연봉협상은 사회생활 4년 차였다.


그때까지는 회사에서 제시하는 금액을 그대로 받아들였고, 뒤에서는 욕할망정 연봉에 대한 불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았던 것이다.


커피회사 물류팀에서 1년 정도 일하고 나서 Buying 팀으로 옮기면서 승진까지 하게 됐고, 어느 정도 연봉 상승률을 예상해 두었다. 그렇지만 생각보다 낮은 인상 수준에 문제를 제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대한 상사와의 미팅 날짜가 정해지고, 도움을 청할 멘토도 없었기에 회사에서 꽤 오래 근속하며 인정받는 여자 직원에게 살짝 물어봤다. 그녀는 영국인이었고 내가 회사에 있던 4년 동안 두 번의 승진을 하는 모습을 봤었다.


"연봉협상은 어떤 식으로 하세요?"


돌아온 대답은 충격 그 자체였다.


"나 지금까지 연봉협상해 본 적이 없는데?"


나보다 적어도 10살은 많았던 긴 경력의 항상 멋져 보였던 그 직원이 한 번도 연봉협상을 해 본 적이 없다니!


당황한 나는 할 말을 잃고, 대충 얼버무리며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Lean In]에서 셰릴 샌드버그는 다음과 같이 기술한다. 


... 여성들은 하면 욕먹고, 못하면 망하는 상황에 처한다. 이는 보상금, 수당, 직급 그리고 다른 특전들을 위한 협상에서 특히 그러하다. (린 인, 셰릴 샌드버그. 2013)


.. women find themselves in "damned if they do" and "doomed if they don't" situations. This is especially true when it comes to negotiations concerning compensation, benefits, titles, and other perks. (Lean In, Sheryl Sandberg. 2013)


회사생활을 시작하며 읽었던 책 "Lean In"


몇몇 직원들의 연봉 수준을 알고 있었기에 부당하다고 생각은 했지만, 그대로 받아들일 수도 있었다. 


웃으며 승진시켜줘서 감사하다고 할 수도 있었다. (그랬다면 감정 에너지는 적잖이 아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왠지 지금껏 연봉협상을 해본 적 없다던 그 선배의 말이 나의 열의를 더 불타오르게 만들었다. 이번에 내가 원하는 걸 얻지 못한다면 앞으로는 더 힘들 것 같았다.




대망의 미팅 날. 나를 팀에 들이는 것을 너무나도 반기던 팀장은 연봉협상 회의실에서 나를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대했다. 


말 한마디 한마디 꺼내는 것이 지옥 같았고 속이 뒤틀렸다. 아니, 이게 이렇게 힘들일인가?


감히 내 직장생활 통틀어 제일 거북했던 상황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 인상률이 최고라며 무표정으로 다그치는 회의실의 분위기는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녀는 아직도 안부를 물으며 지내는 좋은 친구로 남았는데, 지금도 왜 그렇게까지 완강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한 발 물러선 나는 6개월 후에 협상을 다시 하기로 마무리 지을 수밖에 없었고, 그다음 협상에서 원하던 연봉 수준까지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협상을 미루는 결정은 사실 친한 남자 직원의 조언에 따른 것이었다. 조언을 구했던 몇몇 남자 직원들은 이 주제에 대한 다양한 경험을 나에게 들려줬다. 모르고 지냈지만 그들은 항상 협상을 했던 것이다.




여성들이 그대로 받아들이는 사이에 남성들은 더 많이 요구한다. 그렇기에 남녀의 연봉 차이는 연차가 늘수록 더 심해진다.


네덜란드의 남녀 연봉 차이는 14.6%로 유럽의 평균보다 높은 편이다. 


Gender pay gap of average gross hourly earnings in selected European countries in 2019 (Statista)

유럽 국가의 남녀 시급 차이 (2019)


비교적 성차별이 적다고 알려진 네덜란드도 이러한데 우리나라는 어떨까.


한국의 남녀 급여 차이는, 무려 32.2%.


Female to male earnings ratio in South Korea from 2010 to 2020 (Statista)

2010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의 남녀 급여 비율 (여성/남성)


그리고 그 차이는 시간이 갈수록 좁아질 기미 없이 더욱더 벌어지고 있다. 지금 이 그래프를 붙여 넣고 있는 나에게도 너무나 충격적인 숫자다.




이 글은 연봉협상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협상의 유무 만이 이런 심각한 문제의 원인이라는 요지는 절대 아니다. 


나는 아직 페미니즘에 대한 공부가 더 필요한 사람임을 밝힌다. 그렇지만 급여 차이를 비롯한 많은 사회문제의 요인들이 교육, 사회, 커뮤니티 전체에 뿌리 박혀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되돌려 그 상황을 다시 마주한대도 난 월급에 대한 문제를 제기했을 것이다. 원하는 것을 바로 얻지는 못했지만 어느 정도 인간으로서 성장했다는 느낌이 들었더랬다. 그리고 이 경험 이후로 내 주변의 여성 동료나 후배들에게 연봉 협상할 기회가 있으면 항상 하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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