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생활을 떠나보내며
8년.. 중고등학교를 다니고 전문대를 졸업할 수 있는 시간.
그렇게 짧지도, 길지도 않은 회사생활을 정리한 지 벌써 9개월이나 지났다.
현재 내 링크드인 상태는 Entrepreneur (사업가)이다.
오랜만에 연락한 미국 친구가 어떤 사업을 하냐 묻길래, 몇 달째 하는 일이 없어서 뭐라도 채워 넣어야 할 것 같아서 적었다고 농담을 했다. 사실 올해 봄 퇴사 후에 직업이라고 할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에 마냥 가벼운 농은 아니었던 것이다.
그간 소속감을 느끼지 못해 힘들었던 시간에 대한 푸념은 다른 글에서 풀어보기로 하고, 현재 나는 다시 취업전선에 뛰어들고 싶은 마음은 없기에 8년간의 회사생활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들을 하나씩 풀어놓으며 이 경험을 떠나보내려 한다.
(참고로, 거의 대부분의 회사생활은 네덜란드에서 보냈다.)
8년 중 4년 동안 일했던 곳, 나의 직장생활의 꽃을 피웠다고 생각하는 곳은 바로 스타벅스이다.
Supply planner로 입사해서 Buyer(jr. sourcing manager)로 퇴사했던 스타벅스.
스타벅스는 정말 예전부터 일하고 싶은 곳이었다. 한국에 살면서 내 용돈의 꽤 큰 부분을 할애했던 곳. 동네 베프와 만날 때는 항상 "스벅"이었고, 그곳은 당시까지만 해도 핫플이었다.
스타벅스에서는 하루에 적어도 한 번 이상의 커피 테이스팅을 했는데, 특히 중요한 회의가 전에는 어김없이 커피 테이스팅을 하거나 준비해야 했다. 이 리츄얼(Ritual)이 회의시간을 늘리고 쓸데없다고 여기는 동료들도 있었지만 나는 그냥 그 시간이 참 좋았다. 커피 테이스팅은 내가 어떤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는지 다시금 생각하게 해 줬고, 동료들과 스몰토크 주제를 따로 정하지 않고도 자연스럽게 교감할 수 있는 하나의 도구였다.
커피 테이스팅 진행자는 그 과정을 하나하나 짚어줘야 하는데, 먼저 코로 향기를 맡고 어떤 향이 나는지 이야기를 나눈 후에, slurping(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시기)을 권유한다. 그냥 마시는 게 아니라 후루룩 마시는 이유는 우선 커피가 매우 뜨겁기 때문이고 (보통 프렌치프레스로 만든 커피를 시음했다), 그렇게 해야 커피와 공기를 함께 입에 넣으면서 향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커피 시음을 할 때마다 허튼 농담이 있었다. 시향을 하면서 어떤 향이 느껴지냐고 물으면 보통 "꽃", "레몬" 등 그 커피에서만 나는 특유의 향을 언급하는데 그 대답으로 "커피"의 향이 느껴진다고 하는 거였다. 그런 농담 있지 않나. 한 번 들었을 때는 흥미로웠는데 자꾸 나오니 지겨운..
이런 리츄얼을 지속하는 이유는 회사의 경영철학이나 문화를 지키기 위한 것이다. 사람, 고객, 이웃 커뮤니티를 소중히 여기고 커피가 중심 비즈니스라는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스타벅스에서 원하는 인재상은 이러한 회사의 핵심 철학을 몸소 실천하는 사람이었던 듯하다. 다행히도 나는 이런 문화가 적성에 잘 맞았고 회사에서 진행하는 여러 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이런 꿈같은 직장생활 중에도 물론 굴곡이 있었다. 결국 퇴사를 하게 된 것도 나름대로 드라마틱했고.
앞으로 풀어나갈 이야기들이 나조차도 기대가 된다. 직장생활에 작별을 고하고 앞으로 나아가는 디딤돌이 될 글을 써 나가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