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동정하거나 연민하거나 증오하는 것, 발전하고 개혁하는 것, 철학을 품고 종교를 만드는 것, 순전히 유흥과 재미로 타인을 조종하는 것, 단순히 재미로 다른 생명을 해치며 즐기는 것… 긍정적인 일이든 부정적인 일이든 마찬가지다. 도덕과 윤리를 기반으로 한 감정 발화와 행위는 오직 인간만이 가능하다는 말을 본 적이 있다.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생태계에는 도덕이나 윤리라는 개념 또한 존재할 수 없다는 것이다. 사자가 토끼나 사슴을 불쌍히 여겨 그냥 지나치는 일이 없듯이. 포식자가 피식자를 연민하지 않듯이 말이다.
나 역시 일부는 그렇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는데, 가만히 생각하면 '정말 그럴까?' 싶은 의문이 드는 것이었다. 이토록 넓은 지구의 자연계에 배려심이나 도덕심, 악의적인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물이 진짜 인간밖에 없다니. 감정과 정서가 인간의 전유물이라는 건 너무 좁은 시야에서 태어난 인간중심주의적 사고가 아닌가. 인간만이 지성과 이성과 도덕을 갖추었고, 인간만이 감정을 느끼고, 그렇기에 인간이 다른 생물들보다 특별하고 귀중하다는 말은 인간 사회에서만 통할뿐 생태계에서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바닷속에서 살지만 아가미가 아닌 폐로 호흡하는 고래들이 몸이 아프거나 부상을 입어 수면으로 올라가지 못하는 다른 고래를 몸으로 밀어 올려준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인간이 아닌 생물에게도 동료애, 가족애, 배려심, 공동체 의식 등이 존재한다. 동물들에게도 제가끔 장례 의식이 있다. 친구와 만나면 인사를 하고 오랜만에 가족과 재회하면 뜨거운 해후의 기쁨을 나눈다. 얼마 전에는 침팬지가 마치 종교의식처럼 나무에 열매나 돌을 쌓아두는 모습이 포착되어 외국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정말 신앙심을 가지고 하는 행동인지 다른 목적이 있는 건지 아니면 그냥 아무 의미 없는 행동인지는 명확하지 않으나, 인간이 아니라고 '초월적인 존재'에 대한 호기심이나 믿음이 없다고 단언하기엔 인간 역시 그들에 대해 모르는 것이 너무나도 많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과연 얼마나 될까? 동물의 세상에서는 서열이 중요하다. 무리 생활을 하는 동물일수록 우두머리의 능력이 무리의 생사를 가른다. 부와 권력의 소유 정도 혹은 육체적이거나 사회적인 조건으로 계급이 나누어지는 인간 세상과 별반 다를 게 없다. 생존과 직결되지 않았더라도 오로지 재미나 흥미만으로 무언가를 할 수도 있다. 맹수가 재미 삼아 먹잇감을 사냥한 후 바로 먹지 않을 수도 있는 것이다. 동물들도 종족 번식의 본능만이 아니라 육체적 쾌락과 성욕 해소를 위해 짝짓기를 한다. 거시적으로 보자면 인간이 전유하고 있는 감정이나 정서는 생각보다 많지 않은 것이다.
물론 자세히 따지자면 인간만이 도로를 만들고, 언어를 글로 표현하고, 스마트폰과 노트북을 만들고, 우주선을 만들어 우주를 연구한다. 이성과 지성에 개념을 매기고 인간 사회를 고찰하고 철학을 연구하는 존재도 인간 밖에 없 ― 다고 지금은 알고 있 ― 다. 고양이는 포장도로를 만들 수 없고, 코끼리는 코로 글을 쓸 수는 없다. 돌고래는 스마트폰을 만들 수 없고, 갈매기는 노트북으로 사이트를 해킹할 수 없다. 침팬지는 우주선을 만들 수 없고, 늑대는 우주복을 입고 우주에 나갈 수 없다. 그러니까 인간과 동물을 가르는 가장 큰 기준은 결국 '이성'과 '지성', 그리고 '기술의 발달'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으로서의 조건을 이성과 지성과 기술의 발달로만 정의하는 건 곤란하다. 애초에 그것은 적절한 기준이 되지 못한다. 넓게 본다면 맞는 말이기도 하지만, 인간은 거시적인 관점으로만 모든 것을 판단하지 못한다. 나 역시 인간이기에 어떤 정의가 하나 생기면 반드시 세부 항목을 만들고 미시적으로 파고들어 따지는 습성이 있다.
세상에는 이성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하는 인간이 있고, 올바른 지성이나 감성이 지나치게 결여된 인간 또한 많다. 어찌나 이성이 발달했는지 짐승보다도 도덕심과 배려심이 없는 인간도 자주 볼 수 있다. 지능이 인간과 동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면 지적 장애인이나 발달 장애인은 인간의 범주에 넣지 않겠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 실제로 장애인 혐오자들은 이렇게 생각할 것이다 ― , 과학이나 의학 기술의 발달이 더딘 개발 도상국민이나 속세와 극히 동떨어져 사는 원시 부족민들 역시 인간에 해당되지 않게 된다.
결국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연을 파괴하고 환경을 어지럽히면서도 인류의 발전과 비약을 위한 기술의 집합체를 만드는 것이 된다. 이면을 바라보면 씁쓸한 일이다. 인간만이 할 수 있는 일은 지구와 자연에 큰 피해를 안겨준다는 점이, 분명 인간도 자연의 품속에서 살아가는데 그것을 제 손으로 파괴하며 파멸을 앞당기고 있다는 현실이 말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이 할 수 없는 일도 있지 않을까? 사냥감을 목덜미로 물어 죽이고 생고기를 뜯어먹는 일, 날개로 하늘을 날아 지구 반대편으로 가는 일, 몇 시간 동안 심해를 헤엄치며 바다를 유영하는 일…. 엄밀히 따지자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인간은 매년 수백 마리의 짐승을 잡아먹고, 비행기나 헬리콥터를 타고 하늘을 자유롭게 날며, 잠수함으로 바닷속을 몇 시간 동안 탐방할 수도 있지 않은가! 인간이란 이토록 무서운 존재다. 다른 짐승들에 비해 한없이 부족한 신체적인 약점을, 오로지 기술의 발명과 발전으로 보완하여 지구의 먹이사슬 최상위권이 되지 않았는가. 심해부터 밀림까지 전부 뒤집어도 인간만큼 무서운 생명체는 없을 것이다.
인간만이 할 수 없는 일이 무엇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이 많은 만큼 할 수 없는 일도, 혹은 하지 않는 일도 많다는 것은 안다. 내가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자'라고 매번 말하는 것은, 사실 내가 사랑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좋은 사람을 만났을 때 생기는 인류애보다 나쁜 사람을 만났을 때 사라지는 인류애가 훨씬 큰 것과 같다. 내가 가진 사랑과 이해심보다 내가 잃어버린 사랑과 이해심이 훨씬 많고, 마음이 수분을 잃어버릴수록 괴로운 것은 결국 메마른 내가 되기에, 그래서 나는 무언가를 사랑하고 누군가를 이해하는 마음을 잃지 말자고 늘 생각한다. 그러다 보면 필연적으로 미워하는 존재가 생기기도 한다. 결국 신도 온전한 아가페를 실현하지는 못했다. 어쩌면 '박애(博愛)'라는 것은 애초에 인간이 다다를 수 없는 영역의 사랑을 지칭하는 게 아닐까.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은 모든 존재를 동등하게 사랑하는 것이다. 나는 그것을 알고 사랑과 이해, 증오와 몰이해를 동시에 행한다. 어떠한 생명체도, 어떤 방식으로도 완벽하게 정의할 수 없다. 특히 인간이라면 더욱 그렇다. 인간은 수백 년 동안 인간을 연구했지만 인간의 실체와 본질을 제대로 밝혀내지는 못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인간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존재도 인간이고, 인간이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존재도 인간이니까.
앞으로도 나는 아주 조금씩이라도 인간에 대해, 그리고 인간이 만든 사회에 대해 천천히 공부할 생각이다. 애초에 내가 인간이고 인간 사회에서 살고 있으니 그에 관련된 지식을 공부하는 게 과연 쓸모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인간을 '공부한다'라는 말 자체가 생뚱맞은 표현인지도 모른다. 머나먼 외계 행성에서 온 외계인처럼, 나는 지구인을 습성과 문화를 탐구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그러다가 결국 포기하게 될 수도 있지만, 어쨌든 인간에 대한 공부와 탐구와 분석은 멈추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야 우리가 사는 세상도, 우리 인간들의 모습도 지금보다는 조금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