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올해는 앱 만들어 보려고요
올해가 시작하던 겨울, 교육 스타트업에서 첫 회사 생활을 마치고 한 VR 게임 스타트업에서 사업 전략 인턴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22살의 끝에서 바라보니 21살이나 22살이나 별 차이 없이 어린 나이라는 것을 느끼지만 당시에 나로서는 이제 마냥 방황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 또 어떤 길로 나아가고 싶은지 정해야 할 것만 같은 압박감이 나를 둘러싸고 있었다. 대학이라는 하나의 확실한 목표만을 맹목적으로 좇았던 고등학교 때의 관성이 남아있던 탓일까. 하지만 그때의 나에게 하나 분명한 것은 있었다. '수빈님은 올해 학교 돌아가면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묻는 질문들에 난 한결같이 이렇게 답했다.
'저 올해는 앱 만들어 보려고요.'
앱을 만들기로 결심한 이유는 크게 2가지다. 첫째로는 성장에 대한 갈증, 둘째로는 성취에 대한 갈망.
2번의 스타트업을 거치며 벤처 생태계에 대한 애정은 더 커졌지만, 동시에 무언가 알 수 없는 아쉬움, 배움과 성장에 대한 갈증도 마구 생겨났다. 인턴 경험으로는 한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스타트업이 팀원 개개인에게 높은 자율성을 부여하기에 나 역시도 적극적으로 많은 업무들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 프로덕트의 초기에는 내가 존재하지 않았다. 시장에 나올 프로덕트가 처음 만들어지던 기획 초기 단계를 경험하지 못했다는 건 채워지지 않는 공허감을 주었다. 물론 계속해서 검증을 해나가는 것이 스타트업이 일하고 시장에서 살아남는 방식이기 때문에 기존의 프로덕트를 지속적으로 성장시키기 위한 여러 기획 프로젝트를 진행했고 그로부터 얻은 배움도 무척이나 컸다. 그럼에도 아예 아무것도 없는 상태에서 프로덕트를 만들 때 얻을 수 있는 인사이트와는 분명히 다르다고 생각했다.
올해 앱 하나를 만들기 위해 좌충우돌 했던 시간들을 지나, 지금 되돌아보니 그때의 나는 참 제한적인 역할을 수행했던 것 같다. 프로덕트의 성장을 위해 제대로 몰입할 수 있는 것은 사실 마음만으로 되는 건 아니고 (냉정하게 말해서 그때는 내가 맡은 일들에 인볼브 됐다 생각했지만 지금 보니 한참 부족했다), 결국 프로덕트를 A에서부터 Z까지 직접 기획하고 실현해본 경험이 주는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또 하나의 아쉬움은 내가 했던 활동들을 포함해서 거의 모든 창업 프로젝트는 매번 비즈니스를 '기획하는 단계'에서 끝이 났다는 점이었다. 기껏해야 대면 인터뷰를 진행해서 잠재 고객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우리가 취했던 그나마 현실적인 액션이었다. 창업이 '누가 누가 장표를 그럴 듯하게 멋지게 만드는지'의 경쟁은 아니지 않는가. 시장에서 진짜 검증을 해보고 싶었다. 내가 만든 결과물로 진짜 고객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처절하게 실패하더라도 말이다. 머리 속에만 존재하는 건 모두 공상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각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라 생각했고, 나 역시도 모종의 두려움과 막막함이 기획에서 여러 프로젝트를 멈추게 했다. 이제는 두려움을 깨고 한 발씩 전진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 올해 내가 해야 할, 하고 싶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는 올해 1월 2일 동업자와의 첫 만남. 동업자와는 2년 전 대학에 입학해 처음으로 들었던 스타트업 교양 수업에서 만나 매년 창업 대회에 같이 출전해왔다. 짭조름하게 맛난 파니니를 먹으며, 서로의 근황을 가볍게 나누고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 이야기했다. 그리고 올해는 기획서를 넘어 가시화된 '진짜' 결과물을 만들고 싶다는 나의 제안에 같이 마음 도장을 찍었다.
목도리로 꽁꽁 싸매도 찬 바람이 코트 속으로 불어오던 추운 날씨었지만, 나의 결심에 확신을 가질 수 있어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도 가득한 열정으로 따뜻했다. 새로운 시작은 언제나 나를 설레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