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루시아 Nov 30. 2023

ISFJ가 ISFJ를 써봤다.

지난달에 글쓰기 모임에 참여했다. 무엇에 대해 글을 쓸까 한참을 고민 고민하다 나에 대해 쓰는 것만큼 쉬운 일이 없다는 생각에 나의 mbti(ISFJ)에 대해 써보았다. 글을 썼고, 어느 저녁 글을 쓴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만나 서로가 쓴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받은 피드백을 정리해 보자면 ISFJ에 대한 글을 ISFJ처럼 쓰고 말았다.. 는 것이다.


망했다. 또 ISFJ처럼 살았다. 그리고 그것을 들켜버렸다. 내가 ISFJ라는 것이 직장의 일처리에서도, 말하는 것에서도, 글을 쓰는 것에서도 여실 없이 나타났다. 같은 성향의 사람들은 내 글에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갸우뚱하는 나의 글 그리고 나의 삶. 도대체 ISFJ는 무엇이고, 무엇이 나를 ISFJ로 살아가게 했던 걸까?



몇 년 전 어느 날, 처음 mbti와 마주했지만 크게 관심이 없었다. 만나는 사람들마다 mbti가 어떻게 되냐 물을 때마다 나는 캡처해 둔 내 검사결과를 보여주기 바빴다. 알파벳 4개인데 외우기가 왜 그리 어려운지. 그러다 유튜브 알고리즘에 <ISFJ 팩폭>이라는 영상이 떴다. 이제 겨우 알파벳 4개를 다 외웠기에 나의 mbti라는 <ISFJ>가 어떠한 것인지 그제야 궁금해졌다. 첫 번째 영상을 보고 줄줄이 뜨는 다른 영상들을 보고 또 봤다. 영상 속에 나오는 사람들이 설명하는 그 사람이 딱 나였다. 나를 보고 만든 건가? 싶을 정도로. 댓글을 확인하니 나 같은 사람이 엄청나게 많았다. 댓글마다 '와 소름.. 내 이야기임.'이라고 달려있었다. 누가 머리를 한 대 때린 것 같았다. 내가 지우고 싶던 내 모습도, 장점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던 내 모습도 내 고유한 성격이 아닌 그저 성향이었고 나만 이런 것이 아니었다니. 이 영상을 시작으로 나는 나의 ISFJ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알파벳 4개에 위로받았고 또 위로받고 있다.


나는 살면서 항상 누군가를 부러워했다. 물질적으로 가지지 못한 것을 부러워한 적은 거의 없었다. 내가 부러워한 것은 <성격>이다. '왜 나는 저렇게 하지 못하지? 저 사람은 정말 잘한다, 나였다면..?' 35년 내 인생의 절반 이상은 '비교와 자기 비하 그렇지만 그러지 않은 척하기' 그 자체였다.


나는 보수적인 지역에서 삼 남매 중 둘째 딸로 태어났다. 장남인 아버지는 그의 부모와 여동생(무려 5명)에 대한 책임감으로 살아왔다. 그 옆에서 그 길을 함께 갔을 나의 어머니의 힘듦을 직, 간접적으로 보며 살았다. 우리 집 경제가 걱정되어 학원도 안 가겠다 한 적도 있었고, 남동생만 주목받는 상황이 싫어 샘이 났던 적도 있다. 엄마를 잘 돕는 나를 보고 고모들은 '콩쥐'라고 불렀다.(그렇다고 우리 언니가 팥쥐였던 것은 아니고) 나는 그렇게 불리는 것을 즐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다. 나는 콩쥐만큼 착하지 않은데... 이처럼 착하다! 는 평을 끊임없이 듣는다. 하지만 그 말에 늘 죄책감을 느낀다. 난 착하지 않은데. 이 또한 세상의 ISFJ들이 많이 듣는 말이자, 그 말을 들었을 때의 감정이다.



사람들 앞에 서서 말하는 것만큼 괴로운 일이 없다. 전체 직원 앞에서 연수를 진행해야 했던 몇 년 전 그날의 회의실 풍경은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서 끔찍하다. 마이크 잡은 손이 덜덜 떨리고 목소리는 염소 같았다. 목감기에 목소리까지 갈라졌고, 연수를 거의 울부짖음으로 끝냈다. 손에 꼽을 수 있는 나의 흑역사.. 그때를 생각하면 부끄러워 너무 괴로워져서 고민을 하던 중 나름의 해결책을 찾았다. 많은 사람들 앞에 서서 말을 해야 하는 순간이 왔을 때 나는 주문을 외운다. "사람들이 아니다... 무밭의 무들이다.. 배추밭에 배추들이다.. "



나는 사람들과 시끄럽게 어울리며 잘 놀았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혼자 고요한 시간을 가지는 것을 더 좋아한다. 그 시간에 누군가가 동행을 요청했다면 그것만큼 힘들고 싫은 일이 없다. 중고등학교 시절에도 학교와 집이 친구들에 비해 조금 멀리 떨어져 있었는데, 하루를 보내고 집으로 향하는 고요한 시간을 가장 좋아했다. 혹시나 누가 같이 가자고 한다면 거절하진 않지만(못하지만) 너무나 괴롭고 힘들었다. 나에게 혼자 있는 시간이란 에너지를 회복하는 시간. 하루는 약속이 취소가 되었는데 기분이 좋았다. 상대는 약속시간 직전에 파투를 내서 정말 미안하다며 연락이 왔지만, 나의 반응은...? '오히려 좋아! 야호!' 참 아이러니하게도 친한 사람들과 있으면 말이 많아지며 활발해진다. 누군가에겐 "E"성향인 줄 알았다는 말까지 들었다. 아마 그 사람이 편했나 보다. 그런 얘길 몇 번 듣고 나니 내가 정말 E가 된 걸까...? 하는 설렘에 검사를 몇 번 다시 해보았지만 나는 뼛속까지 I였다!


아이를 키우며 직장을 다니면서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아무래도 어려웠다. 이대로라면 말라죽을 것 같아 정신적 에너지를 회복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바로 새벽. 신체적 에너지를 잠으로 보충한 후에 가지는 이 시간, 하루 24시간 중 지금처럼 아무 말하지 않고 조용히 글을 쓰는 시간이 가장 좋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자취방에서 조용히 혼자 지내다 땅굴 파고 들어가서는 우울증이 왔던 시기도 있다. 이게 참 웃긴 것이 혼자 지내고 싶다가도 다른 사람의 관심을 은근슬쩍 원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놓고 그러다가 주목을 받으면 그것만큼 힘든 일이 없으니 다가올 누군가를 목 빼고 기다리기만 하다 땅굴을 파고 들어가 버리는 것이다.



나는 감정적인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렇지 않을 때가 많았다. 몇 번을 검사해도 나는 F성향이라는데.. 내면적으로는 저건 아닌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불쑥 튀어 오르지만 드러내는 건 감정적 표현이었다. 나의 내면과 표현이 다르니 난 왜 생각한 것을 당당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걸까? 하는 자괴감을 가지기도 했다. 가까운 사람(a.k.a. 남편)에겐 나의 내면을 모두 드러냈기에 의도치 않게 상처를 주기도 했다. 그런데 ISFJ가 감정형 중에서도 가장 사고형(T)에 가까운 편이라고 한다. 외향 감정과 내향 사고의 조합으로 다른 사람의 관점에서 상황을 논리적으로 바라보려는 경향이 있으며, 논리와 감정 사이에 매우 갈등하므로 까다롭거나 우유부단하다는 말을 듣기도 한단다. 논리적으로 안 맞는 부분을 빠르게 알아차리지만 상대방을 불쾌하게 할까 봐 즉시 지적하지 않는다. 이렇게 내가 또 까발려졌다. mbti를 맹신하고 싶지 않다가도 이런 걸 보면 물 떠다 놓고 절을 해야 할 것만 같다.



직장에서 나는 완벽한 J형 인간이다. 업무수첩과 책상 위 달력은 항상 빡빡하게 채워져 있다. 기한을 넘긴 적은 단 한 번도 없으며 오히려 그 날짜보다 며칠 일찍 제출한다. 너무 일찍 제출하여 그 사이에 수정사항이 생겨 다시 작성하는 일이 있어도 그 편이 마음이 편하다. 생각해 보니 아주 어릴 적에도 그렇게 학교생활을 해왔다. 내 인생에 벼락치기란 없었다. 그렇다고 공부를 아주 잘한 거 아니라는 것이 함정.



하지만 이런 100%에 가깝던 J형 인간을 망친 것이 바로 육아이다. 어느 영화에 나오는 "나를 망치러 온 나의 구원자"라는 표현이 내 육아에 딱 맞는 표현이었다. 육아란 내 계획과 상관없이 흘러가는 일이다. 특히 돌 이전 아이의 육아는 내가 어찌하겠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요구와 컨디션에 따라 달라지는 일이 많았기에 내 의지는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그것에 적응하는 1년이 참 힘들었다. J형은 계획적인 사람이다.. 라기보다는 상황을 통제하려고 하는 성향이 강한 사람이다. 그렇기에 계획을 세워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끊임없이 만들어낸다. 그것을 하나하나 완성해 가며 쾌감을 느낀다. 그렇지만 육아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상황을 계획해 두었다 해도 그 모든 것을 해내지 못할 때도 있으니 J형 인간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까.



ISFJ자녀로서 성실하고 순종적으로 자라왔다. 나의 부모는 날 키우기 수월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ISFJ부모로서의 나는 어떠할까? 내 아이는 자신의 알파벳 4개를 스스로 찾아 나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떤 알파벳으로 스스로를 표현할 수 없다 해도 괜찮다. 그조차도 아이의 모습일 테니.







글을 쓰면서 내 지난 삶들을 천천히 생각해 보았다. 하나씩 떠오르는 장면에서 내가 왜 그랬을까? 싶었던 부분 모두 결국엔 내 성향을 잘 알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타인과 끊임없이 비교하고 그러지 못하는 나를 질책하며 살아온 지난 인생이 너무 아쉽고 안타깝다. 어린 시절 나를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여전히 그렇게 살아오고 있는 지금의 나도 마음 깊이 안아준다. 더 이상 알파벳 4개에 애쓰지 말라고. 내 mbti가 조금 바뀐다 한들 그것도 그것대로 좋을 것 같다. 그러니 나는 그저 나대로 살아가면 되겠다.



나 같은 유형은 끊임없이 자신에 대해 긍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끊임없는 자기 검열로 매일매일을 살아가고 있으니 말이다. 최근에 직장에서의 내 일에 대해서도 고민이 많았는데 이 글을 쓰며 실마리를 찾았다. 원래 내가 그렇기에 애쓰지 않으려 한다.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을 더 잘 활용해야지. 더 이상 땅굴 파고 들어가지 말자!





tmi가 가득한 글을 고치고 또 고쳤지만 결국엔 또 ISFJ가 ISFJ 했다. 그래도 만족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종이접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