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지내냐, 추석에 내려오냐, 라는 말에서 시작한 그의 이야기. 내가 먼저 전화나 문자를 한 적은 있어도 그에게 전화가 온 것은 처음이라 무슨 일일까 싶었다.
"내가 요즘 집 앞 학교에서 등하교 시간에 봉사를 하는데, 거기 특수학생이 있어서 특수반 선생님도 매일 보거든. 고생을 많이 하더라고. 니 생각이 많이 나서 전화했다. 니도 고생 많이 하제."
무뚝뚝한 경상도 남자의 표본인 선생님이었다. 웃고 있다는 얼굴에서 미소를 찾기도 참 어려운 그런 사람이었다.
선생님을 생각하면 참 죄송한 일이 많다. 내가 생각해도 나는 참 별로인 학생이었다. 사실 나는 학교 다닌 내내 선생님들에게 칭찬만 받았다. 전교 1등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느 정도 공부도 잘했고, 성실했다. 지금도 그렇듯 딱히 튀는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런 내 생활의 반대편을 알고 있는 사람이 우리 선생님이었다. 나를 항상 "참하고 예쁘고 열심히 하는 학생"으로 기억하는 선생님께 죄송하지만, 예민 of 예민이었던 고3 시절의 나는 평균 이상으로 예민했고 그것을 이런저런 방법으로 선생님께 털어냈던 것 같다. 왜 그랬을까. 그때만 생각하면 내가 참 부끄럽고 선생님께 죄송하다. 1년 내내 선생님에게 반항 아닌 반항을 참 많이 했다. 내가 살던 지역에서 가장 좋은 대학교에 원서를 쓰라 했지만 괜한 반항심에 쓰지도 않았다. 대학생 때 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생들을 만났을 때는 나도 우리 선생님에게 저랬겠지 싶어 그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와 동시에 선생님이 참 그리워졌다. 그래서 친구와 아이스크림 사 들고 그를 찾아가기도 하고 명절과 스승의 날에는 전화도 드렸다. 결혼 소식과 출산, 임용 합격 소식도 잊지 않고 알렸다. 그 사이 선생님은 퇴직을 하셨지만 여전히 학교에서, 학교 기숙사에서, 학교 앞에서.. 여러 방법으로 학교를 떠나지 못하고 계시다.
전화 끊기 전, 선생님에게 급히 말했다.
"선생님, 저 책을 썼거든요. 보내드리고 싶어서요. 주소 좀 알려주세요."
그때도 지금도 여전한 우리 선생님은 말했다.
"졸업앨범에 있는 주소 그대로다."
(무슨 책인지도 묻지 않음) (앗 선생님 저 졸업앨범 버렸어요.....)
"지금 안 가지고 있어요~ 문자로 꼭 보내주세요!"
"그래. 책 쓰면 돈은 좀 버냐?"
"ㅋㅋㅋ 그런 거랑은 좀 멀어요... 자기만족이요 호호"
"전에도 책 뭐 보내준다 하드만 안온거같은데... 아무튼 문자 보낼게. 명절 잘 보내라."
뭘 보내드린다고 했는지 기억도 못하는 이 제자는 어리둥절했는데, 생각해보니 남편 이야기가 나온 월간지 샘터 이야기였다. 잽싸게 링크를 보내드렸다.
앗 그러고 보니 선생님께 남편이 시각장애인이라는 말을 했던가? 선생님이 몰라서 몰랐던 이야기를, 아 나도 그의 삶에 관해 잘 아는 것이 없으니 어쩌면 모르지 않을 그 이야기를 전하러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