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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물푸레 Dec 08. 2021

고봉산을 지켜주세요!

숲학교 이야기

산으로 올라가는  초입에 두 노부부가 지나가는 등산객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있었다. 

백발의 칠십 노부부가 겨울 산바람을 맞으며 전단지를 나눠주는 모습이 

처음에는 죄송하고 안쓰럽게 느껴졌다.

독일에서 공부하고 오랫동안 살다오신 고00 교수님 부부는 독일에 거주하면서 일찌기 숲의 중요성을 절감하시다 집 주변인 고봉산에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다니 가만히 앉아있을 수 없어서 나왔노라고 하셨다. 자신들이 몇 개월째 하고 있지만 '이제 우리는 너무 힘에 부치니 누가 받아서 해주면 좋겠다.'고 숨 찬듯이 말씀하셨다. 다른 사람들 같으면 불평의 잔소리나 늘어놓다 말 나이에 전단지를 손수 만드시고 찬바람을 맞으면서 행인들에게 '고봉산을 지키자.'는 메세지를 전하고 계시는 모습이 너무나 멋지고 숭고해 보였다.


고봉산은 209미터밖에 안되는 낮은 산이지만 고양시에서 가장 높은 산이고 고양 시민들이 등산할 만한 유일한 산이라고 할수 있다. 등산로며 나무 뿌리들이 사람 발길에 닳아서 빤질빤질해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이용하는 곳이다.  작은 산이지만 시민들의 숨통을 틔워주는 '도심의 허파'같은  산이라 할 수 있다. 


물이 솟아나는  천연습지인 고봉산 습지가 매몰되면 습지에 살던 수많은 생명체들이 사라진다. 고봉산 습지는 갈대와 수생식물들이 자라고 천연기념물인 애반딧불이, 환경부 보호종인 물장군, 물자라 등 도시에서는 여간해서 볼 수 없는 생물 60여종이 서식하고 있는 생태계의 보고였다. 여름이면 와글와글 개구리의 합창이 산 중턱에 있는 영천사까지 울려펴져 밤새 잠을 이룰 수 없노라고 주지 스님이 말씀하셨다. 개구리가 많은 곳에는 뱀들이 많고 개구리의 먹이감도 많아 먹이사슬이 풍부한 곳이다. 가을이면 아름다운 단풍 나무숲길이 있고 멀리 교외로 나가지 않아도 아이들이 벼를 보고 추수 체험도 할 수 있는 곳이었다. 그 곳 논에서 어른 아아 모여서 벼를 키우고 추수를 해서 가래떡을 해먹기도 했다. 


품앗이 육아를 하던 엄마들이랑 지역주민들이 모여 '고봉산을 가꾸는 사람들'이란 단체를  만들었다. 거리에 나가 서명을 받고 시청 앞에서 농성도 하고 고봉산이 생태적으로 얼마나 중요한 곳인지 환경포럼을 열어 시장님을 초대했다. 참석하지 않자 우리가 가서 반강제로 모셔오기도 했다.. 고봉산 축제와 환경음악제도 열었다....7년동안 기나긴 싸움이었다.


꼭 새벽이면 나무를 벤다고 연락이 왔다. 아침에 일어나 등교 준비 출근 준비에 눈코 뜰새 없을 때 전화가 온다. 아마도 회원들이 움직이기 어려운 때를 골라 나무를 베는가 싶다. 어떤 집은 서너살 먹은 아기를 포대기에 들쳐메고 산을 올라왔고 어떤 집은  '당신 집이나 잘 가꾸라'는 남편의 험담을 들으면서 아줌마들이 모였다.

시청 공무원은 '논밭 좀 없애는 걸 가지고 왜 아줌마들이 시끄럽게 하냐'며  투덜거렸다. 아이들이 이 산에서 얼마나 즐겁고 행복한 지 아는 엄마들은  이 산을 포기할 수 없었다.


지금은...

고봉산 습지 자리가 안곡습지로 남아있다.주변 아파트 주민들을 위한 공원이 필요하니 공원 자리로 남겨졌다. 저수지가 있던 자리에 학교가 들어서고 아름답던 단풍나무 숲길은 도로가 되어버렸다. 바깥쪽으로 큰 대로가 있어 꼭 필요한 도로도 아닌데도 길을 내는 이유를 알 수 없었다. 그 길 가지고 또 싸워보았지만 허사였다. 습지는 생태공원이란 이름으로 습지 주변부만 남게 되었고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공원이 되어버렸다. 아이들과 관찰활동을 해보니 예전에 있던 생물종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그 곳에 아파트가 들어서지 않은 것만도 어디야! 

그래도 시민들이 애쓴 덕분에 습지는 남았잖아."


 그렇게 말하는 지인들도 있지만 봄이면 진달래가 만발하던 산자락이, 아이들과 논두렁에서 봄나물 캐던 추억이, 흙이 드러난 산자락에서 맨발로 뛰어놀던 아이들이 그립다. 

아이와 어른들이 모여서 컨테이너를 지키며 모닥불을 지피며 함께 지켜낸 고봉산을  바라보며 

그때 그 사람들을 기억한다.


자본주의의 물결은 도도하게 흐른다. 어디쯤에서 멈출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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