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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떠도는 자의 노래 Dec 20. 2021

한국의 서낭당 - 쉬어 가는 글 ①

상징과 의미체계로 바라본 서낭당


문헌에 기록된 서낭당?


서낭당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서낭당이라는 말의 어원은 무엇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언제부터 서낭당(마을 제당)이 생겨났을까?


서낭당 : '서낭'이라는 마을 공동체 신앙의 신격을 모시고 제를 올리는 공간


이에 관해서는 많은 사람들이 제각기 여러 가지 설과 의견들을 제시하고 있지만, 실상은 모두 적당한 상상력과 추론에 근거하는 것들일 뿐이다. 문자로 기록된 서낭당의 기원과 유래에 대한 신뢰할만한 전거(典據)는 현재로서는 전무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나마도 가장 오래된 것이 이능화의 「조선무속고」라고 할 수는 있지만,「조선무속고」는 20세기初 일제강점기(1927년)에 간행된 서적이다. 유구한 역사를 가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서낭당의 내력에 비추어 보면, 사실상 '우리 시대'라고 뭉뚱그려서 불러도 과하지 않은 근자의 문건이다. 결정적으로 「조선무속고」는 서명처럼 '무속'을 근간으로 저술한 서적으로 민간 신앙, 공동체 신앙의 관점에서 저술했다고 보기에는 어렵다. 또한 「조선무속고」에서는 이능화 자신의 논지를 전개하거나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기 보다는 단순히 기존의 자료나 위서(僞書)를 짜깁기한 흔적이 역력하다는 흠이 두드러진다. 결정적으로 이 사람의 행적에는 친일행각이 다수 포함되어 있어서 조선무속고의 저술 취지마저도 의심스러운 지경이다.


혹자는 태백일사, 부도지 같은 전거를 들어서 서낭당의 유래와 의미를 풀어내기도 하지만, 근거가 확실치 않은 기록을 전거로 삼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르겠음'으로 남겨 놓는 것이 바른 태도라는 것이 나의 지론이다. 


근거를 찾을 수 있는 기록이 전무한 실정이라면, 현재 남아있는 서낭당(마을 제당)의 모습에서 읽히는 지표와 상징들을 바탕으로 그 발생과 기원을 추정해 보는 것이 차라리 의미 있겠다고 할 수 있다.




나무(서낭목)에서 읽히는 상징과 의미 체계


대부분의 경우에서 우리의 서낭당(마을 제당)은 수목(樹木) 신앙이 근간을 이룬다. 물론 바위, 석상, 장승, 돌탑, 아무것도 없는 공지(空地) 등에서 제의를 올리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나라 서낭당의 열에 아홉은 나무를 주신격으로 모시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나무'의 상징성을 먼저 살펴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나무를 바라보았을 때 직관적으로 느껴지는 형태적인 특징은 '수직성'이다. 수평으로 전개되는 경관에 反하는 수직(세로)의 존재는 필연적으로 '높다'는 개념을 수반한다. 그리고 그런 인식은 나무가 더 높고 거대할수록 강렬하고 효과적으로 작용한다. 고개를 들고 시선을 위쪽을 향해야만 바라볼 수 있는 '높은 나무'의 특질은 자연스럽게 숭앙과 숭배로 이어진다.


또한 나무는 봄에 잎을 틔우고, 여름에는 무성한 숲을 이루며, 가을에는 화려한 자태를 뽐내고, 겨울에는 마치 생명력을 잃은 듯 옷을 벗어던진 채 깊은 잠에 빠진다. 이것은 하나의 사이클을 이루며, 생성과 소멸을 상징한다. 즉, 삶과 죽음을 반복하는 동시에 역설적으로는 불사(不死)의 존재로서 윤회(輪廻)라는 화두도 던져놓는 셈이다. 


고대 스칸디나비아人들의 우주목(宇宙木)인 이그드라실(Yggdrasil)과 미륵 기반의 불교적 세계관 속의 수미산과 용화수(龍華樹)


조금 더 자세히 나무를 살펴보자. 나무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하늘로 가지를 뻗는다. 이는 우리가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에서 파악한 나무의 생장 형태일테다. 이번에는 시각을 달리하여 나무의 아래와 위를 뒤집어 놓고 바라보자. 나무는 어느 쪽에서 양분을 얻고 생명의 동력을 얻을까? 나무는 하늘로 자라나는 것일까 땅속으로 자라나는 것일까? 따지고 보면 나무는 중력의 영향을 받고 있을 뿐, 하늘과 땅 양쪽에서 양분을 얻어서 생명력을 발현하며, 하늘과 땅속 양쪽으로 모두 생장하고 있는 모양새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땅속의 뿌리를 상상해 보면 수평선을 중심으로 나무는 상하로 데칼코마니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각적으로도 원경의 산자락보다 근경의 나무가 더 높아 보인다.


나무는 땅(俗)과 하늘(聖) 양쪽 모두에 근거를 두고 양쪽을 연결하는 일종의 링크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무는, 땅에 발을 붙이고 살아야 하는 인간들의 하늘에 대한 열망과 희구를 상징하는 의미를 가진 존재로 치환될 수 있다. 물론 하늘에 대한 열망은 하늘을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새'로 대치되는 경우도 있지만, 한 장소에 뿌리를 내리고 고정된 삶을 사는 나무의 항상성은 일정 지역의 신격으로 오랜 세월 동안 숭앙되기에 적합하다고 할 수 있다.     


서낭당의 주된 구성 요소 중의 하나인 나무(우주목/세계수/신단수)는 그런 이유로, 영원불멸(계절마다 생사를 반복하는 특성), 유한성, 항상성, 하늘 등을 상징하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돌담, 원형(圓形)과 방형(方形), 금줄, 신체


나무와 돌은 생물과 무생물이라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있으며, 그 물성(物性) 또한 뚜렷한 특징(무름과 단단함)이 있다. 이렇게 확연하게 구분되는 차이점에도 불구하고 나무와 돌이 어우러져 이루어내는 조화미는 결국 생(生)과 사(死)는 상호 연결되어 작동하는 자연의 섭리를 상징하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서낭목을 보호하는 방호 목적의 재료를 선택하는 측면에서 돌이 선택된 것은 필연적인 것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의미적 측면에서는 위와 같은 이해가 가능하다.




원형(圓形)과 방형(方形)의 상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서낭당의 공간적인 구성이 내포하는 의미는 각별하다고 할 수 있다. 예부터 동아시아에는 천원지방(天圓地方)이라는 세계관이 지배적으로 받아들여져 왔다.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각지고 모나다 라는 인식구조인데, 이는 서낭당의 구조적인 외형에도 부지불식간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원형의 돌담은 하늘과 신성을 상징하는 성역(聖域)으로서의 공간임을 의미한다. 물론 드물게 방형의 돌담을 가진 서당당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미적인 필요성이나 지형적인 특수성 때문에 변형된 형태인 것으로 파악된다. 근본적으로 우리 서낭당(마을 제당)의 시원적인 형태에서의 성역을 구분하는 돌담은 원형이 지배적으로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원형의 돌담보다는 상징성과 함의라는 측면에서는 미미하지만, 방형의 당우를 원형의 돌담 안쪽에 건축해 놓은 모습에서는 전형적인 천원지방(天圓地方)의 구조를 감지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 당우는 실용적인 요구에 의해서, 서낭당의 조성에 비하면 훨씬 후대에 건축된 것이 대부분이므로 원형의 돌담보다는 서낭당의 의미에 작용하는 바가 깊지 않다. 오히려 방형의 제단이나 기단 석축 같은 것에서 천원지방의 인지구조를 찾아보는 것이 유의미할 것이다)  서양에서도 원형은 우주, 하늘, 신성을 상징하고 방형은 현세와 균형을 상징한다. 하지만 동양에서의 하늘과 땅을 구분하는 의미적 상징으로서의 기능은 그리 강하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서낭당에서 마을 제의를 올리기 전에 대부분 새끼를 꼬아서 금줄을 만든다. 금줄을 위한 새끼는 특별히 선출된 제관이나 마을의 어른이 꼬기 마련인데, 이는 금줄이 속(俗)공간과 성역(聖域)을 가르는 신성한 물건이라는 인식 때문이다. 이때, 새끼는 왼쪽으로 꼬기 마련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지점은 바로 왼쪽이라는 방향성이다.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심장은 폐정맥에서 받아들인 신선한 혈액을 좌심방과 좌심실을 통해서 온몸으로 방출한다. 생명력은 좌(왼쪽)에서 시작하여 온몸으로 전달되는 것이다. 또한 어머니의 자궁에서 생명으로 잉태되어 자라나는 태아는 왼쪽으로 꼬인 탯줄을 통해서 모태와 연결되고 있다. 우리가 발을 딛고 살고 있는 지구의 자전 방향 역시 - 북반구를 위에 놓고 보았을 때 - 왼쪽으로 돌고 있다. 중국의 천지창조 설화 주인공인 복희와 여와를 묘사한 그림에서도 두 신의 하체는 뱀(탯줄=생명)의 형상을 하고 왼쪽으로 꼬여 있다.  

투루판 출토, 복희와 여와圖. 국립중앙박물관. 필자 직접 촬영


따라서 왼쪽으로 꼬아놓은 새끼줄(금줄)은 생명과 우주의 속성을 상징하며, 부정한 것과 신성한 것을 구분하는 경계를 획정하는 것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이는 이 땅에 살고 있던 선대의 우리 조상들이 생명과 우주에 대한 수준 높은 인지구조를 소유하고 있었고, 성과 속에 대해서 뚜렷한 체계를 가진 정신세계를 가지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부분이다. 우리가 음습하고 기분 나쁘고 원시적이고 미개하다고 폄훼하는 민간신앙과 공동체 신앙의 기초에는 - 지금 그 일부분만을 살펴보고 있음에도 - 이토록 심도 깊은 의미가 신앙 구조의 기저를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서낭당에 모셔지는 신체(神體)는 형태도 여러 가지일 뿐만 아니라, 의미도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어서 한마디로 규정짓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다만 신체라는 것을 상정하고 모시는 의미 그 자체는 무형의 신격을 가시적으로 시각화시키기 위한 수단일 뿐, 세간에 회자되듯이 군더더기 같은 잡다한 의미 부여는 부질없는 짓이다. 당우 안쪽에 가장 많이 걸리는 신체의 소재는 바로 한지와 명주실이다. 근본적으로 깨끗하고 하얀 한지는 한 그릇의 맑고 깨끗한 정화수와 동일한 의미를 가지고 있다. 복잡하거나 다층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 않다. 상식적이고 단순하게 생각하면 된다. 또한 한지는 소지(燒紙)라는 의식을 통해서 제액과 발복의 재료로 사용되기도 한다. 명주실 역시 복잡하거나 별 다른 의미는 없다. 끊이지 않고 오래도록 사는 삶, 즉 무병장수를 기원하는 것이 명주실을 신체로 사용하는 의미적 기원이다. 


한 가지 오독에 주의해야 할 서낭당의 모습이 있다. 용인 민속촌의 초입에 가면 성황당이랍시고 조성해 놓은 공간이 있다. 노거수의 가지에 오색 천을 주렁주렁 매달아 놓은 흉물스러운 모습을 보면 누가 봐도 혐오스럽고 정신이 산만해지는 느낌이 들게 마련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 전통의 마을 제당이나 서낭당의 모습이 아니다. 무속인들이 기도터로 삼고 발복 하기 위해서 물색을 치렁치렁 걸어 놓은 것에 불과하다. 대부분 이런 모습을 하고 있는 공간은 무속인들의 기도터이거나, 무속인들에게 점유된 형태로 관리되는 극히 일부의 서낭당에 불과하다.   


2011년 국립민속박물관의 기획전「하늘과 땅을 잇는 사람들 샤먼」에 전시된 에벤키族과 부리야트族의 무속 유물. 본인 촬영.


흔히 바이칼湖 주변의 민간신앙처나 몽골의 어워, 티베트의 타르초와 흡사한 모습에서 이렇게 물색이나 지전을 치렁치렁 걸어놓은 것을 우리 서낭당의 원형(原形)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데, 친연성이 두드러진다고 해서 동일한 기원이나 습속을 지녔다고 단정 짓는 것처럼 우매한 일이 없을뿐더러, 노변 기도처와 불과했던 원래의 타르초나 어워 등을 마을 공동체의 성소(聖所)인 우리네의 서낭당과 동일시하는 시각 자체가 무지와 편의적인 사고방식에 기원한 것이다. 부리야트族이나 에벤키族등, 바이칼湖 주변의 샤머니즘과의 친연성은 우리 '무속'에서는 일부 찾을 수 있을지언정, 우리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서낭당(마을 신앙과 공동체 신앙)과는 현격한 거리감을 두고 바라봐야 하는 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또한 일부 민속마을이나 유명 관광지 주변의 서낭당 서낭목 주변으로 금줄을 두르고 소원지를 금줄에 꿰어 놓는 경우가 왕왕 있는데, 비록 관광 활성화의 일환으로서의 의미는 찾을 수 있겠지만, 그 본질에 대해서는 바로 알고 있어야 한다. 우리 땅에서 이루어지는 민간 신앙에서의 기원과 발복의 제의 절차로는 이와 같은 형태는 찾아볼 수 없다. 이렇게 소원지를 금줄에 꿰어서 서낭목 주위에 둘러놓는 것은 일본 신사의 에마(絵馬)와 시메나와(しめ縄)가 복합적으로 왜곡 변질되어서 수용된 것이다. 우리의 서낭제의에서 기원과 발복은 한지를 태움(燒紙)으로서 완성된다. 다만, 변화된 세태와 관광 활성의 일환이라는 관점에서는 전향적인 수용이 불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는 아름다운 민간신앙처, 서낭당   


서낭당에는 귀신이 살지도 않고, 더럽고 지저분한 곳도 아니다. 단지, 변화하는 시류에 저항하지 못하고 사람들의 관심에서 점점 멀어진 까닭에,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는 우리의 마을 제당은 다소 지저분하고 음산해 보인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기는 하다.


서낭당은 지난한 삶을 오롯이 맨몸으로 견뎌내야 했던 우리 옛 선조들의 간절하지만 소박했던 소망과 기원이 응축되어서 쌓인 자연 발생적인 신앙공간이자 성역(聖域)이다. 서낭당(마을 제당)에서 모셔지는 제신은 잡신이나 귀신이 아니라, 마을 주민 그 자체이자 사람이 성격을 정의한 제신인 것이다. 마을에서 서낭당을 짓고 조성했다고 어디 먼 산골짜기에서 산신이나 서낭신이 훌쩍 날아와서 좌정한 것이 아니라, 긴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주민들의 간절함이 그대로 서낭신이 된 것이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서낭당(마을 제당)은 정신적인 측면에서나, 서낭당을 구성하는 재료의 물성 그 자체를 보는 측면에서나, 가장 자연친화적이고 인간친화적인 신앙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람이 정주함으로써 발생하고, 사람이 떠남으로써 소멸하는 신앙 공간이라고 할 수 있다. 東아시아뿐만 아니라, 전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이렇게 아름다운 전통 신앙의 공간은 그 유래를 찾을 수 없는 것이다. 왜곡된 서구적인 사고방식에 철저하게 세뇌되어 버린 이 시대 사람들의 인식이 하루아침에 변화하기는 어렵겠지만, 기존의 인식 영역에서 한 발짝 바깥으로 걸음을 옮기면 우리의 서낭당에서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우리만의 미감을 발견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쉬어가는 글」다음 편에서는 왜 우리의 마을 제당을 '성황당(城隍堂)'이라고 표현하는 것은 오류인지에 대해서 다루려고 한다.


#이그드라실 사진의 원본 출처: 상징의 비밀/데이비드 폰태너

#용화수 사진의 원본 출처: 법천사지광국사비 탁본의 영인본 - 돌에 새긴 뜻그림/원주시립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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