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꽂이를 배울 결심.
어느새 벌써 세 번째 수업시간이다.
아침 요가수업을 듣고 부랴부랴 서둘러 챙겨 주차장에 주차를 하니 함께 수업을 듣기로 한 지인이 보인다. 주말 동안 십 대 사춘기에 접어든 첫째 아이와 씨름했던 하소연을 속사포처럼 발사하며 강의실로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앞에 도착하니 꽃을 한 아름 들고 계신 꽃꽂이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과 꽃을 나눠 들고 있는 수강생 한 분이 함께 보인다. 수업시간에서 3분가량 지난 상황이라 살짝은 진땀이 나지만 일단 인사를 드려본다. 반갑게 인사를 받아주시는 선생님, 수강생 한 분과 함께 강의실에 들어선다.
처음에는 낯설기만 했던 강의실이었지만 세 번째 수업에 접어든 만큼 조금은 익숙해진 발걸음으로 함께 수업을 듣는 또 다른 지인이 있는 책상을 향해 부지런히 걸음을 옮겨 앞치마를 두르고 원예 장갑을 끼며 꽃꽂이 수업 준비를 한다. 수업 시작 시간이 되면 바로 수업을 시작했던 다른 날들과 달리 오늘은 떡과 커피가 준비되어 있었고 꽃꽂이 수업을 진행하시는 선생님께서도 앞에 놓인 커피를 반기시며 담소가 오고 간다.
내향형의 기질로 낯선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쉽지만은 않지만 함께 수업을 신청한 지인 2명과 함께 있으니 마냥 어렵지만은 않게 스몰 토크를 나눌 수 있었다.
마흔이 되기 전에는 꽃에 대한 별다른 감흥이 없었다. 아, 생각해 보니 다른 사람에게 꽃선물을 하는 건 좋아했던 것도 같다. 하지만 꺾인 꽃들을 병에 꽂아두고 보는 것은 한편으로는 꽃에게 못할 짓 같아 이기적으로 느껴지기도 하고 왜인지 허영이 느껴지기도 하는 느낌에 그다지 꽃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가끔 꽃 선물을 받더라도 주변의 누군가에게 주고 말았다.
그런데 허리디스크를 기점으로 지친 직장생활을 정리했던 즈음이었던 것 같다. 퇴사 이후 집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는 와중 코로나를 맞닥뜨리며 그동안 상상하지 못했던 전무후무한 상황이 펼쳐졌다. 아이들도 학교에 가지 못했다. 첫째 아이도 둘째 아이도 친정엄마의 도움을 받아 출산휴가 3개월 후 바로 출근하며 쭉 직장생활을 했던 나는 아이들과 그렇게 한 공간에서 긴 시간을 함께 있었던 경험이 처음이었다. 그에 더해 코로나라는 이름도 생경한 질병은 누구도 경험해 본 적이 없는 상황을 매일 맞닥뜨리게 하며 한 치 앞을 예상할 수 없어 더욱 몸과 마음을 움츠러들게 했다.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집에서 지내는 시간이 길어지던 중 우연찮게 꽂아둔 작은 꽃다발이 발하는 생기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종종 2~3송이의 꽃을 사다 꽃병에 꽂아두고 아침저녁으로 꽃병의 물을 바꿔주는 정성을 기울이며 힘든 날에는 꽃병의 꽃에게 위안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은 심지어 꽃꽂이 수업을 받기에 이르게 되었다. 아주 편한 사이의 지인들은 아니지만 알고 지내던 지인들과의 대화 중에 꽃꽂이 수업을 신청했다는 말을 듣고 아주 많이 망설였지만 나답지 않게 덥석 수업을 신청한 것이다.
날이 갈수록 뚜렷하게 나태해지는 재택근무의 낮은 업무집중도에 대한 자괴감, 십 대 사춘기에 접어든 두 자매의 교육과 육아의 정신적 고단함과 무력감, 성격 급한 죄로 대부분의 집안일을 결국 혼자 도맡아 하는 것만 같은 억울함... 박준 시인의 <운다고 달라지는 일은 아무것도 없겠지만> 제목을 보자마자 주문했던 이 시집의 제목은 과거의 나, 그리고 크게 달라지지 않은 요즘의 나를 위한 문장인 듯했다.
나는 생각이 많고 쉽게 공감(또는 과잉공감까지)하며 다른 사람의 시선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편이다. 생각이 많아 한 가지 사건을 두고두고 곱씹으며 괴로움에 빠지지만 나의 괴로움을 상대방에게 표현해 불편한 기류를 견디느니 속으로 삭이고 마는 소심한 성격이라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자리를 힘들어하고 혼자만의 시간을 통한 재충전이 필요한 사람이다. 단 한 사람을 만나고 와도 일부러 기억해 내려고 노력하지 않지만 거의 자동반사처럼 그 사람과 만남의 시간 동안의 나의 행동들을 복기하며 엄격한 자기 검열을 하고 있으니 여러 사람을 만나야 하는 자리를 다녀오는 날이면 에너지가 남아나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나를 알기까지 많은 수업료를 지불했다. 그 수업료는 실제 현금이기도 했지만, 괴로워했던 시간들, 잃어버린 사람들이기도 하다. 나는 왜 이렇게 쓸데없이 예민해서 스스로와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는 것인지 자괴감에 빠지기도 하고 그러다 내게 가장 소중한 사람들-특히 가족들-을 공격하고 다시 자괴감에 빠지는 악순환의 시간들을 지나왔다. 지금도 그 시간들을 생각하면 많이 속상하고 후회스럽다. 하지만 이미 지나온 과거들이 나의 소중한 현재와 다가올 미래까지 계속 망치게 둘 수 없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리고 여러 시행착오들을 거쳐 감정일기, 모닝페이지 등 글쓰기를 통해 나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짐으로써 조금은 편안해질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꽃꽂이 수업을 시작하는 것도 나에겐 수많은 고민 끝에 큰 용기를 낸 결과이다. 이 역시 글쓰기를 통해 나를 성찰함으로써 용기를 낼 수 있었다. 퇴사 이후 매일매일을 너무나 바쁘게 움직이지만 하루가 지나가고 나면 막상 눈에 보이는 성과는 없는 허무함. 생각이 많은 예민한 기질의 사람은 자극을 줄일 수 있도록 생활의 단순화가 필요하다는데 새로운 사람도 만나야 하고 해야 할 것이 하나 더 추가되는 게 나를 더 괴롭게 하지는 않을까 오만가지 고민이 있었다.
하지만 생각이 너무 많아 실행력이 1도 없는 나를 후회하는 요즘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을 떠올리며 일단 Go! 그리고 Connecting the dots라며 20년이 넘은 지금까지, 또 앞으로도 두고두고 회자될 멋진 문장을 남긴 스티브 오빠에게도 내 용기에 절반의 지분을 넘겨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