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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버풀 Feb 02. 2023

대기업을 퇴사했다

여러 번의 퇴사 결심, 그리고 결국 퇴사를 실행한 계기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라는 생각을 이번에 처음 한 것은 아니다. 누구나 그렇듯 369의 법칙에 맞게, 3개월 차부터 '때려치워야지'라는 생각을 했었다. (누가 3년, 6년, 9년이랬나? 요즘은 5G 시대라서 '개월' 단위로 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퇴사를 실행에 옮기게 된 것은 이전의 '퇴사 고민'과는 결이 달랐기 때문이다.





가장 처음의 퇴사결심 - 업무가 맞지 않아서


가장 처음 퇴사 결심을 했던 때는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이다. 각종 신입사원 교육이 약 3달간 진행되었기에, 배치 후 3개월 차에 퇴사를 생각하지 않았나 싶다. 이때 퇴사를 결심하게 된 이유는 '직무에 대한 불만'이었다.


대기업은 주로 공개채용 방식을 통해 신입사원을 뽑는다. 그렇기에 대직무를 중심으로 신입사원을 채용하고 교육기간 중에 내가 실제로 업무를 수행할 부서가 결정된다. 문과생으로서 가장 보편적인 영업/마케팅 직무로 지원했던 나는 '마케팅'직무에 관심이 있었기에 입사 후 당연히 TV에 나오는 광고를 담당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배치받은 부서는 영업관리 부서였다. 


영업관리 부서는 내가 직접 고객에게 영업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숫자에 대한 압박, 즉 매출 압박이 있다. 매 달 우리 부서의 목표 실적이 있고, 관리하는 매장의 규모나 상황 등에 따라 영업담당에게도 목표 실적이 주어진다. 낯을 가리는 성격이고 내가 제대로 알아야만 말을 할 수 있는 편이라, 영업정책이나 제품, 시장 상황에 대해 내가 잘 모르는 상태에서 매장 사장님들을 어르고 달래 내 실적을 채우는 것은 쉽지 않았다. (ISFJ에게 영업직이란..) 차라리 맡은 매장이 없는 채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물건 까대기(진열할 물건을 상자에서 꺼내고 비닐을 벗기는 것을 의미한다)를 하던 때가 몸은 힘들어도 마음은 편했다. 매 월 말, 3시간 단위로 날아오는 마감실적 안내 문자에서 내 이름 옆에 적힌 50% 미만의 진척률을 보며 '내가 이렇게 쓸모없는 사람이었나?'를 느꼈다. 


다행히 부서 선배들은 모두 좋은 분들이라, 내가 채우지 못한 실적을 대신 채워주시고 격려해 주셨다. 또한 부서장님도 나를 다그치거나 혼내기보다는 나의 고충을 이해해 주고 고생했다는 말을 건네주는 좋은 분이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일이 즐겁게 느껴지지 않았고 하루하루가 스트레스였다. 그래서 매일 퇴근길에 아버지와 통화를 했다. 더 이상은 못하겠다는 나의 말에 아버지는 '딱 1년만 해봐라'라며 어르고 달래주었다. 아버지는 1년을 더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못 참고 이곳저곳에 지원했다. 대기업 공채로 입사해 회사에서 지정해 주는 부서에 배치받아 하고싶지 않은 일을 하다 보니, 급여가 조금 적더라도 내가 원하는 일을 하거나 혹은 워라밸이라도 좋은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었다. 토익도 다시 보고(역설적이게도 이때 보았던 토익 점수가 이전에 취업준비할 때 받은 점수보다 높았다), 퇴근 후 자기소개서를 쓰고, 1차 결과발표가 나올 때까지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것이 그 시절의 낙이었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아무 곳에서도 1차 통과를 하지 못했다.



그렇게 맞지 않는 옷을 입은 채로 간신히 하루하루를 버티며 년 반 정도 지났을 즈음, 우연한 기회에 바로 옆 부서로 이동하게 되었다. 조직개편으로 새롭게 신설되며 새로운 자리가 생겼고, 그 자리에 추천을 받아 이동하게 되었다. 그 업무의 담당자는 내가 처음이었기에 맨 땅에서 체계를 잡아가는 역할을 고작 2년 차, 만 1.5년을 다닌 사원급이 진행하게 되었다. 경비 승인과도 연관 있는 업무라 결재서류의 합의자로 들어가 있기도 했는데, 까마득한 선배들이 프로세스에 맞지 않게 올린 품의를 반려해야 하는 어려운 일도 맡았다. 그럼에도 내가 한 것이 바로바로 성과로 보여져서 즐겁게 일했던 기억이었다. 


그래서 그 후로는 채용공고를 들여다본 적 없이 무난하게 일을 했고, 그 이후로도 두어 번 더 부서를 이동하며 익숙해질 만하면 새로운 환경, 새로운 업무에 적응하며 나름 지루하지 않게 회사생활을 했었다.





가장 마지막의 퇴사결심 - 이렇게 살고 싶지 않아


퇴사를 결심하게 된 부서는 입사 후 다섯 번째로 일을 했던 부서였다. 전혀 모르는 분야의 업무였고 나의 커리어패스로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직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상위 부서라는 메리트가 있었다. 또한 당시 팀원과의 성향 차이로 스트레스를 받고 있던 때라 이동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그 결정이 회사생활에서 가장 잘못된 결정이었다.


부서를 옮기며 전혀 새로운 지역,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일을 하게 되었다. 거의 새로운 회사에 입사한 느낌이었다. 걸어서 10분 거리의 회사를 다니다가 출퇴근버스를 타고 1시간을 이동해야 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새로운 공간의 시설과 지리, 보안사항을 잘 모르는 것도 하나의 스트레스였다. 또한 일하던 층에 워낙 임원급이 많다 보니 눈치 볼 사람이 많은 점도 괜히 나를 힘들게 하는 요소였다. 

무엇보다 크게 스트레스를 받는 요소는 나는 이 일이 처음인데 상위 부서라는 이유만으로 온갖 질문에 '해답'을 줘야 하는 역할이었다는 점이다. 나도 모르는 사항인데 '이렇게 해도 되나요?'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받다 보니 스트레스가 날로 심해졌다. 워낙 일이 많은 부서라 선배들도 바빴기에, 옆에서 하나하나 친절하게 알려줄 수 없는 상황이라 혼자 자료를 뒤적이고 네이버를 검색하며 답을 하는 날들이 이어졌다.



그러한 날들이 쌓여서 우울증이 왔다. 출근이 너무 싫었다. 길을 건널 때면 '차에 치어서 그냥 어디 실려갔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이 기대되지 않았다. 늘 지쳐서 들어오는 내가, 회사에 대한 스트레스로 자주 눈물을 보이던 내가 걱정되었던 남편은 나에게 상담받아볼 것을 권했다. 

다들 이 정도 감정은 있지 않나? 예전에도 비슷하게 힘든 적이 있었는데 적응하니까 괜찮았는데?라는 생각에 대수롭게 넘겼다가- '그냥 이대로 생을 마감해도 괜찮을 것 같은데, 이대로 사라지고 싶다'라는 생각이 드는 나를 발견하고 상담을 받기로 했다. 상담과 함께 약 처방을 받고, 무너진 마음의 근육을 다시 키우는 것에 집중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채용공고를 다양하게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약의 함량은 줄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어김없이 나를 닦달하는 유관부서의 통화를 끝낸 뒤, 스트레스를 참지 못하고 핸드폰을 집어던지고 회의실에 들어가 펑펑 울고 나온 날이 있었다. 그 이후로도 눈에 눈물이 고인 채 이 악물고 일을 하는 때가 있었다. '나 힘들어요'를 호소하고 싶어서 나온 눈물이 아니고, 분노와 스트레스가 가득 찬 상황에서 해소가 불가능해 악에 받쳐 나온 눈물이었다. 그 후 불안장애 약이 추가되었다. 이렇게 사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었다. 내가 생각하던 커리어패스도 아니고, 내가 하고 싶은 일도 아닌데 워라밸은 무너졌다. 그 어느 때보다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그래서 퇴사를 결심했다.




늘 참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하며 30여 년을 살아왔지만, 한 번쯤은 참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다른 직장을 구하지도 않은 채 퇴사를 먼저 질렀다. 그리고 퇴사를 이야기한 후, 홀가분해진 마음과 함께 불안장애 약도 더 이상 처방이 필요하지 않았다. 그리고 새로운 직장을 찾을 때에는 '내가 하고 싶었던 일, 내가 행복한 일'을 1순위로 생각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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