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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를 완성한 톨킨과 루이스

J. R. R. Tolkien 4.

by 최동민
작가를짓다_톨킨 4부.jpg




"모두 소진되고 말았어. 정신과 창조 모든 것이 말이야."


톨킨은 몇 달 동안 <반지의 제왕> 원고를 추가하거나 수정하기는커녕 들여다보지도 않았다. 가능하다면 언제까지고 그렇게 있고 싶었었다. 그러기 위해서 톨킨이 할 일은 <실마릴리온>을 책장 깊숙한 곳에 꽂아 버리고 펜은 서랍에 고이 넣어 버리는 것이었다. 출판사로부터 재촉 편지가 몇 장 날아오겠지만 난롯불에 던져 버리면 그만이었다. 그런 톨킨의 상태를 제일 먼저 눈치챈 것은 다름 아닌 루이스였다. 루이스는 진정으로 <반지의 제왕>의 탄생을 기원하고 있었다. 톨킨이 쓰고 있는 이 작품은 오래전, 자신의 사무실에서 신화를 이야기하던 밤들의 결과였고, 진정 좋아할 수 있을 만한 이야기의 탄생이었다. 그런 순간을 맛보기도 전에 불길이 사그라들게 할 수는 없었다. 루이스는 더없이 큰 응원과 격려를 보내기 시작했다. 루이스의 말 한마디에 톨킨은 몸을 일으켰고, 루이스의 편지 한 통에 톨킨은 떨어진 펜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톨킨은 무엇보다 친구 루이스의 격려에 답을 해야 했다. 그의 말을 듣고 그의 말에 답변하는 것은 전쟁 후 지금까지 톨킨이 가장 즐거워하는 일이었다. 그 즐거움을 놓칠 수는 없는 일이었다. 톨킨은 자신처럼 쓰러져 널브러져 있던 프로도를 일으켜 세웠다. 이제 다시 모험을 떠나야 했다. 모르도르의 불길 속으로 톨킨과 프로도는 함께 걷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목말라 오다가 큰 컵으로 물을 들이켠다면 이런 기분일까요? 당신이 이것을 위해 바친 오랜 세월이 드디어 정당화되었습니다."


1949년 마침내 <반지의 제왕> 마지막 장이 완성되었다. 톨킨은 정성스레 타이핑을 해서 원고를 루이스에게 보냈고 루이스는 단숨에 작품을 읽었다. 신화를 이야기하던 두 사람이 마침내 신화를 만들어낸 순간이었다. 루이스는 곧장 축하의 편지를 썼다. 어떤 지적이나 비평도 없는 순수한 축하의 메시지였다. 완성된 신화에 더이상의 글은 무의미했다. 긴 여행의 끝을 토닥여주는 손길 정도면 충분했고 톨킨은 비로소 짐을 풀고 다리를 쉴 수 있었다.


루이스는 <반지의 제왕>이 출간되기 전에 책의 추천사를 썼다. 거기서 멈추지 않고 <타임 앤드 타이드>에 서평을 남기기도 했다. 주변에서는 추천사에 서평까지 쓰는 건 너무 지나친 게 아니냐고 말했지만, 루이스는 개의치 않았다. 작품이 출간되기 직전 "출판이 두렵습니다.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나지 않고 비판을 들을 준비만 하고 있어요."라며 떨고 있는 친구에게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해주고 싶었다. 그 결과 루이스는 몇몇 비평가들에게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그런 비난쯤은 가볍게 넘겨도 좋을 만큼 <반지의 제왕>의 초판은 금세 동이 나버렸고 독자들은 <호빗>때와 마찬가지로 <반지의 제왕>의 마지막 장면을 만나기를 간절히 기다렸다. 새로운 신화가 시작되는 장면으로 적당히 소란스럽고 또 적당히 들뜬 모습이었다.




"내가 그에게 받은 갚을 수 없는 빚은 단순한 영향력이 아니었어요. 그것은 바로 완전한 격려였습니다."


톨킨은 언어와 신화를 사랑한 교수였다. 루이스를 만나기 전까지는 정말 그랬다. 그런 톨킨에게 루이스는 창조자의 역할을 일깨워주었다.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톨킨에게 있어 개인적인 취미였던 집필이 그 이상의 의미를 부여받게 된 것은 말이다. 그 결과 세계는 또 하나의 신화를 선물 받을 수 있었다. 그것을 가능하게 한 것은 당연히 톨킨의 노력과 능력이었을 것이다. 비중으로 따지면 99%가 모두 톨킨의 공이라 말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머지 1%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작가의 지친 손에 힘을 불어넣어 주고, 펜을 잡게 하고, 세계를 그리게 하는 격려일 것이다. 루이스는 톨킨에게 그런 격려의 1%를 전해준 인물이었다. 톨킨 스스로 "루이스가 없었다면 <반지의 제왕>을 끝까지 써내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밝힌 것처럼 루이스가 건넨 1%의 격려는 톨킨이라는 신화의 마지막 한 조각이었다. 그 한 조각이 없었다면 우리는 단순히 판타지 작품 한 편을 잃어버리는 것으로 끝나지 않았을 것이다.


그 한조각이 없었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세계를 잃은채 비좁은 거리를 헤매고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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