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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차 Apr 22. 2022

좋은 엄마 그까이꺼

이제 겨우  만 18세를 넘긴 소녀가 있다.

이 소녀는 작년 가을 학교에서 운동을 하다가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을 입  그 이후로 그녀가 속한 세상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  난생처음 수술도 받아야 한다고 하고, 두 달 가까이 무릎 밑까지 올라오는 깁스를 하고 학교를 다녀야 한다고 했다

그녀의 엄마는 인생을 길게 볼 때 이런 건 별 일 아니라고 했고 더 나쁜 상황이 될 수도 있는데 이만한 것이 정말 다행이라고 했다.  

수술 후 통증은 소녀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심했고 소녀는 옆에 있는 엄마에게 끊임없이 짜증을 냈다. 소녀의 엄마는  진통제가 계속 들어가고 있으니 조금만 더 참으라고 했다.  

퇴원을 한 후 발목의 통증은 거의 가라앉았지만 또 다른 통증이 소녀의  마음속 깊은 곳에서 생겨났다.  기브스 때문에 하고 싶은 운동을 못하는 것이 신경질이 났고, 자꾸만 슬퍼졌다.  

차오르는 짜증을 참을 수가 없는데도 소녀의 엄마는 지금이 힘든 시기지만  조금만 더 기다리면 되니 참아보자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침대에서 나오는 사소한 일조차 힘들게 느낄 만큼 이 세상 모든 것이 무거웠는데도 엄마는 소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아빠도 아니고 엄마라면 딸의 마음을 다 알아야 하는 거 아닌가?  



이 가여운 소녀는 나의 딸이다.

지난겨울, 드디어 다리의 깁스는 풀었지만 딸의 마음은 더욱더 굳어져 버렸다. 의사 선생님은 운동은 절대 안 된다고 엄포를 놓았고, 엎친데 덮친 격으로 가장 친한 친구가 다른 나라로 이사를 가 버렸다. 활동량이 많았던 외향적인 성격의 아이가 감당하기에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자신의 몸과 마음 모두가 마치 작은 상자에 꼭꼭 갇혀진 기분이었을까? 아이는 결국  교도 가지 않겠다고 하고  늘 하던 아주 사소한 집안일도 하지 않아 나와 남편에게서 듣기 싫은 소리를 자주 들어야 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싶어 셋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대화를 해본 적도 많았다.  힘든 이 상황을 같이 헤쳐 나가 보자고 시작한 대화는 늘 딸이 울면서 아무도 자기를 이해하지 못한다며 방으로 들어가는 것으로 끝났다.  나는 딸에게 무엇이 힘든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아야 도와줄 수 있으니 말해보라고 했다. 문제가 생기면 늘 분석하고 해결책을 모색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나는 실제로 문제가 무엇이 되었든 사랑하는 딸을 위해 온 몸을 다해 맞닥뜨릴 준비가 되어 있었다. 마치 전장에 나갈 준비를 하는 용사처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거라 기대했던 이 문제는 점점 우리 가족 모두를 옥죄어 오기 시작했고 나는 딸이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아 괴로웠다.  마치 전장에 나갈 준비는 했는데 한 번도 싸워보지도 못하고 패배했다는 이야기를 듣는 것처럼 억울했었다.  아이가 그렇게 대화를 중단하고 방으로 들어갈 때마다 나는 마치 아이가  '딸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쁜 엄마'라는 이름표를 내 가슴에 붙이고 뛰어가는 것 같았다. 




작년 이맘때쯤이었나.  딸아이가 아무 말 없이 나에게 어느 웹툰의 한 부분을 카카오톡으로 보내주었던 적이 있다. 웹툰은 학교에서 온 딸이 엄마에게 공부할 게 너무 많아 힘들다고 투덜거리는 것으로 시작되었다. 빨래를 개키고 있던 웹툰 속 엄마는 그럼 다음엔 공부를 미리 좀 해놓으라고 말했다. 딸은 갑자기 눈물을 글썽거리며 그걸 몰라서 이러는 줄 아냐고 소리를 지르고 만화 속 엄마는 알면 다음부터 그렇게 하면 되지 뭐가 문제냐고 따진다. 그때 딸이 울면서 이렇게 말한다.


"힘들다고! 나! 지금! 엄청 힘들다고! "


딸은 이 웹툰을 우리 관계와 비슷하다며 장난 삼아 보낸 것이었지만 나는 그때 엄마의 촉으로 알아차려야 했다. 딸이 힘든 순간을 어떻게 캐치하는지 또 어떤 위로를 해 주어야 하는지. 

하지만 나는 그런 호사스러운 엄마의 촉이 없었고 그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든 겨울을 보낸 것만 같아서 죄책감마저 들었다.



시중에 돌아다니는 성격 테스트를 할 때마다 나는 늘 공감능력이 떨어지는 사람으로 나왔다. 

타고난 것인지, 어릴 적 부모와 충분한 애착을 형성하지 않아서 그런 것인지, 나이를 먹으면서 그냥 괴팍한 아줌마가 되어 버린 것인지 그 이유는 알 수가 없다. 나도 인간인데 기쁘고 슬픈 감정을 모를 리는 없다. 단지 상대를 안쓰럽게 여기고 도와주려는 마음을 표현할 때  상대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모색하는 것으로 조금 더 기울어지는 것뿐이다. 

나는 개인적인 문제가 생겼을 때 어떡하면 좋냐며 감정을 주체 못 하고 같이 울어주는 친구보다 그냥 차분히 옆에 앉아서 함께 해결책을 모색해주는 친구가 더 위로가 된다. 그가 내 힘든 마음을 정확하게 알고 있느냐 아니냐는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 나를 도와주고자 하는 마음, 내게 도움이 될 조언이 있다면 솔직하게 표현해 주는 그 마음이 내겐 더 소중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딸은 그렇지 않았고 나는 그녀가 나와는 많이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둔한 엄마였다. 


힘들구나.

너무 힘들어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구나.

얼마나 힘들면 그 알록달록했던 마음이 이렇게 구겨지고 찢어졌을까.

안 그래도 충분히 힘든데 엄마가 이해 못 해서 속상했구나.

다른 사람도 아니고 엄마가 니 마음 몰라줘서 마음이 아팠겠구나. 


어찌 보면  말뿐일지 모르는 위로들이지만 내 아이에게 필요한 것은 단지 이것뿐이었다.  

사랑하는 딸아이의 얼굴을 보며 이렇게 말해줬다면 나는 '좋은 엄마'라는 이름표를 받을 수 있었을까?  

그까짓 거 어려운 것도 아닌데 왜 나는 몰랐던 걸까. 그런데 '좋은 엄마'라는 등급은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만으로는 얻을 수 없는 것일까? 


아이의 우울감은 조금 낳아지는 듯하면 또 나빠졌고, 감정의 기복도 여전히 심했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전문 심리상담에 대해 조심스럽게 이야기를 꺼냈고 처음엔 부정적이었던 아이도 다행히 마음을 바꾸었다. 아이가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학교 상담 선생님께 사정을 설명하고 아이와의 상담을 부탁드렸다.  그 와중에도 내가 '이미 좋은 엄마'가 아니라 '좋은 엄마가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엄마'라는 느낌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아이였다. 




결국은 봄이 왔고, 상담의 도움으로 아이도 차츰 안정을 찾아나갔다.  어른이 감당하기에도 벅찬 일들이 한꺼번에 일어난 데다 졸업과 입학을 앞두고 있어 스트레스가 심했던 모양이다. 상담을 통해 본인이 생각보다 완벽주의 성향이 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아이의 얼굴에 생기가 돌고 웃음이 늘어나면서 '좋은 엄마' 이름표에 대한 나의 집착도 아이에 대한 원망도 자연히 수그러들었다.  '엄마표 촉'이 없는 둔한 나는 이제  '힘들었구나', '속상했겠구나'라는 말을 대신해  '오늘 하루는 어땠어?' '엄마가 뭐 도와줄 일은 없어?' 등으로 아이의 마음에 다가가려 한다. 이전보다 더 많이 사랑한다 말하려 노력하고 더 많이 안아주려고 노력한다. 


미안하고 창피하고 원망스럽고 답답했던 겨울은 어쨌든 다행히 가버렸고 꽃들이 활짝 피는 봄이 왔다. 

둔한 엄마의 딸이어서 가여운 이 아이의 마음에도 꽃이 어서어서 활짝 피었으면 좋겠다.

 '좋은 엄마'가 아니어도 딸의 마음에 꽃이 피기를 바랄 수는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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