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법은 근로자들을 보호하는 법으로서 노동법의 규제 정도는 나라마다 다른 데요, 대한민국은 ‘정당한 사유’가 없으면 해고가 어려운 점 등을 고려할 때 (특히 미국과 비교했을 때) 비교적 노동법의 규제가 강한 편입니다. 그런데 예를 들어 한국회사가 외국인을 채용하거나, 외국회사가 한국인을 채용하는 등 국경을 넘는 근로관계에서는 어떤 나라의 노동법이 적용되어야 하는지 의문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에 오늘은 국제 근로관계에서 그 기준이 되는 법을 정하는 것에 대해 써보려 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가 어디냐가 가장 중요한 이슈이며 그 국가의 노동법 등 강행규정은 적용된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계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적용되는 법을 준거법(Governing Law)이라고 하는데, 대한민국 국민이 외국 법인에 채용되거나 대한민국 회사가 외국인을 고용하는 근로관계는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로서, 외국적 요소가 있는 법률관계의 준거법을 결정하는 별도의 법을 “국제사법”이라고 합니다.
우리 국제사법은 원칙적으로 계약 당사자 사이의 명시적이거나 묵시적인 합의를 통해 준거법을 결정하도록 하되, 근로계약의 경우에는 특별한 규정을 두어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더라도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근로자가 일상적으로 어느 한 국가안에서 노무를 제공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는 국가의 법)의 강행규정에 의해 근로자에게 부여되는 보호를 박탈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제28조 제1항).
그리고 판례는 해당 규정이 강행규정인지 여부는 그 소속 국가의 법 즉 순차적으로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 또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는 국가의 법의 해석에 의하여 판단하여야 하며, 근로계약 자체에 관한 규정은 물론 산업안전과 보건에 관한 공법적 규정이 포함되는바, 부당해고, 영업양도에서의 근로자의 보호, 단체교섭, 근무시간 및 휴가, 미성년자, 임산부, 장애인 등 사회경제적 약자보호에 관한 조항이 이에 해당됩니다. 강행규정에는 법 규정은 물론 법규범적 성질을 가지는 단체협약규정, 취업규칙도 포함된다고 봅니다.
한편 당사자가 준거법을 선택하지 않은 때에는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법(근로자가 일상적으로 어느 한 국가안에서 노무를 제공하지 아니하는 경우에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는 국가의 법)을 준거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제28조 제2항)
어렵고 복잡한 이야기를 축약해드리자면, 근로자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가 어디냐에 따라 적용되는 법의 범위가 크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가 한국일 경우에는 준거법을 정하지 않은 경우에도 한국법이 준거법이 되며, 혹시 근로계약에서 준거법을 미국으로 정하는 경우에도 강행규정인 한국의 노동법규를 모두 준수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외적으로 위 근로자가 한국과 미국을 오가면서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가 어디인지 확인이 어려울 경우에는 사용자가 근로자를 고용한 영업소가 있는 국가의 법이 적용됩니다. 어찌됐든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의미가 가장 중요하지요.
문제는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의 의미에 대해 명확한 판례도 없고 견해도 통일되어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존 판례들은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가 어디인지 자체에 대해서는 논란의 여지가 없이 정해져 있는 상황에서 다른 쟁점이 문제가 되었을 뿐입니다.
우리 국제사법의 모태가 된 EU의 관련법 및 판례에 따르면 근로자가 사업에 편입된 곳, 영업활동이 이루어지는 곳, 여러 국가에서 근무하는 경우에는 영업활동의 중심이 되는 곳, 근로자가 대부분의 근로시간을 보내고 사무실이 있으며 사용자를 위하여 영업활동을 조직하고 외국 출장에서 돌아오는 곳, 근로자의 작업도구가 있는 곳 등을 의미하지만, 여전히 추상적인 요건들이어서 구체적인 판단은 실제 사안에서 판단되어야 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유럽사법재판소(Court of Justice of the EU)는 국제항공운송 승무원의 ‘일상적 노무제공지(The place where the employee habitually carries out his/her work)’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지에 관하여, ‘일상적 노무제공지’는 승무원이 근로의무의 핵심적인 부분을 수행하는 곳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 ①승무원이 운송 관련 업무를 수행하는 곳, ②승무원이 업무를 마치고 복귀하는 곳, ③승무원이 사용자로부터 지시를 받거나 업무를 조직하는 곳, ④승무원의 작업도구가 있는 곳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하여야 한다고 보면서, 운영자에 의해 승무원에게 지정되는 장소로서 승무원이 정상적으로 하나의 근무시간 또는 연속근무시간을 시작하고 끝내는 장소인 “Home base”를 일상적 노무제공지라고 판단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 최근 COVID로 인하여 화상 미팅이 활발해지는 등 근로의 풍경이 많이 변하면서, 특히 근로장소의 제약이 크게 줄어들었습니다. 이에 사용자가 근로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근로자가 100% 원격근로로 노무를 제공하는 경우에는 어느 곳을 “일상적으로 노무를 제공하는 국가”로 볼 것인지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 사업장이 없는 미국 회사가 한국인을 고용하되 근로장소를 특정하지 않은 경우, 한국의 근로자는 한국에 ‘거주’하면서 근로를 제공하지만 과연 근로자의 ‘일상적 노무 제공지’를 한국이라고 볼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판례가 언급하고 있는 요소들을 고려할 때에도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한국으로 보아야 할 것 같고, 어떤 측면에서 보면 미국이라고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즉, 명쾌한 해답이 있는 사안이 아니므로 향후 이와 관련한 분쟁이 발생하였을 때를 대비하여 학설상의 논의가 이루어져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끝까지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