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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연 Mar 05. 2024

태명에 담긴 의미

모리에게 쓰는 첫번째 편지

  사랑하는 내 딸 모리야, 안녕?

  아직은 ‘내 딸’이라는 말도, 이렇게 너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낯설기만 하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들이 떠오를 때마다 이렇게 편지로 적어 차곡차곡 모아두면 좋을 것 같아 오늘 드디어 마음을 먹고 책상 앞에 앉았어. 오늘 이 첫 번째 편지에서는 너에게 왜 너의 태명이 모리가 되었는지 알려주려고 해. 모리야, 너는 모리라는 이름이 마음에 드니? 엄마와 아빠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어 하루에도 몇 번씩 “모리, 모리, 모리야~” 노래를 흥얼거려. 단어 자체가 주는 느낌이 귀엽고 발음이 단순해서 부르기가 편한 것도 참 좋아. 그리고 모리라는 말이 몽골 말로 ‘말’이라는 뜻인 것도 좋아. 지난여름의 즐거웠던 몽골여행과 그때 가장 좋았던 말타기가 떠오르거든. 모리는 기억할지 모르겠지만, 그때 모리도 함께였단다. 지금부터 그때 이야기를 한번 해보려고 해. 그리고 어쩌다 모리라고 태명을 짓게 되었는지도 말이야.


  지난 여름휴가를 맞이하여 엄마와 아빠는 몽골여행을 떠나게 되었어. 몽골은 사실 엄마가 어렸을 때부터 가보고 싶었던 곳이야. 어릴 적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엄마는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몽골의 초원을 떠올렸었어. 왜 그렇게 그 초원이 가보고 싶었던 걸까. 매일 학교-집을 반복하며 공부, 성적, 미래의 성공에 목을 매던, 내 마음 안에 무엇이 있는지 들여다볼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매일 끊임없이 불안감으로 채찍질하며 달려가던 하루하루가 아마 버거웠던 것 같아. 누군가 그렇게 몰아세운 것도 아닌데, 그때 엄마는 스스로를 몰아세우고 틀 안에 가둔 채 앞만 보고 달려가고 있었지. 그게 너무 숨이 막혔나 봐. 인터넷으로 우연히 보게 된 몽골 사진에 별안간 빨려 들어갈 듯 마음을 빼앗겨 몽골에 가고 싶다고, 반드시 가겠다고 다짐했었지. 초원 위에서 자유롭게 뛰노는 말처럼, 그 말과 함께 바람을 맞으며 마음껏 달려보고 싶다고.


  그렇게 간절히 꿈꿨으면서 막상 어른이 되고 나니 그 기억을 잊었다. 대학에 가고 또 직장을 가고 결혼을 하고 하루하루 눈앞의 일들에 집중하며 살다 보니, 생활에 여유가 생기고 꼭 그렇게 어딘가로 도망치고 싶던 마음도 잦아들었지. 그러던 어느 날, 모리 아빠의 친구가 몽골에 같이 갈 사람들을 구한다는 얘기를 들었어. 몽골…. 굉장히 오랜만에 듣는 단어였지. 그 말을 듣는 순간, 어릴 적 엄마가 은밀하게 소망했던 몽골의 초원이 떠올랐어. 너무 오래 내버려 둬 진득하게 먼지가 내려앉을 정도로 까마득히 잊힌 소망이었지만, 그 낡은 책이 갑자기 화르륵 펼쳐진 듯 그때의 마음이 떠올랐지. 그래서 냉큼 가고 싶다 말했어. 아주 어릴 적부터 늘 몽골에 한번 가보고 싶었다고.


  그렇게 아빠친구 커플과 아빠, 엄마 이렇게 넷이서 몽골여행을 가게 되었다. 여행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부터 엄마는 몽골과 너무 잘 맞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밤 11시에 출발하기로 예정되었던 비행기가 4~5시간이나 지연되어 공항에서 잠을 잘 수밖에 없었는데, 원래는 집이 아닌 어느 곳에서든 쉽사리 깊은 잠을 자지 못하던 엄마가 그날 공항에서는 세 시간도 넘게 숙면을 취했거든. 누가 잡아가도 모를 만큼 깊은 잠을 잤어. 너무 개운할 정도로. 몽골에 도착해서도 이상하게 마음이 편안했어. 거미가 기어 다니고 흙먼지가 흩날리던 게르 안에서도 매일밤 깊은 잠을 잤어. 낮에는 뜨거운 태양이 살을 찌르고 대지를 달구다가 해만 지면 습기 없는 날카로운 한기가 게르 안에 가득 차 온몸을 파고들고 콧속이고 입 안이고 바짝 마르게 했는데도 어째서 이리 잘 잘 수 있는 건가 매일밤 의아했지.


  아주 가까운 듯 낮게 떠가던 흰구름, 끝없이 이어진 평원, 자유롭게 무리 지어 돌아다니는 동물들, 그리고 자유롭게 무리 지어 피어나고 자라나고 흔들리던 식물들을 보고 있으면 왠지 원래 있어야 할 곳으로 돌아온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어. 원래 인간은 이렇게 자연과 가까웠을 텐데, 이렇게 자유롭게 사는 게 자연스러운 삶일 텐데, 난 도시에서 뭘 하고 있었던 걸까 싶었지. 초원을 한참 달려야 만날 수 있게 아주 드문드문 있던 게르들은 대체로 물이나 전기 공급이 원활하지 못했어. 딱 씻으려 할 때 물이 졸졸 나오다 끊겨버린다거나 물이 잘 나와도 앞에서 누군가 따뜻한 물을 다 써버리면 뒤에 씻는 사람은 찬물로 씻을 수밖에 없었지. 그런 것들이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었지만 그냥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어. 여럿이 다 같이 살아가는 이 자연 속에 얹혀사는 존재로서 이 정도의 불편함은 당연히 감수해야 할 일처럼 여겨졌지. 그곳의 사람들은 그런 자연 속에서 살아서 그런지 바싹 마른 모래 바람에도, 갑자기 몸속을 파고드는 한기에도 의연한 눈빛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 굳은살 박힌 살갗 너머에서 너무도 맑은 마음이 문득문득 새어 나오곤 했지. 그곳의 아이들은 더 맑고 순수했고 이상하게도 엄마를 잘 따랐어. 엄마가 평소에 그렇게까지 어린아이들의 사랑을 받는 편은 아닌데 이상하게 여행 내내 아이들이 잘 따라서 엄마는 엄마의 외모가 이곳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모인가, 역시 몽골과 너무 잘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지.

 

   여행 중 어떤 날은 말타기 체험을 했어. 말을 타고 다듬어지지 않은 거친 숲 속을 거닐고 바다처럼 큰 호수 옆을 달렸어. 그때 엄마는 갈색의 조금 작고 어린 말을 타게 됐는데 소리를 잘 듣기 위해 귀를 이리저리 쫑긋거리며 묵묵히 숲을 구경시켜 주던 그 말의 꿈틀거리던 다리 근육의 움직임, 따뜻한 온기, 아주 곧고 강인하지만 너무도 부드럽던 털의 감촉이 좋았다. 말의 목덜미를 살며시 어루만지고, 말의 키만큼 높아진 시야로 주위를 둘러보며 엄마의 심장은 설렘과 고마움으로 두근거렸지. 너무 행복한 순간이었어.


  그렇게 즐거웠던 몽골여행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후, 엄마는 모리 네가 엄마 뱃속에 들어있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언제부터였던 걸까 짐작해 보니 몽골여행 직전부터였지. 아, 그래서였구나. 모든 게 너를 중심으로 이해되는 지점들이 있었어. 아기가 뱃속에 이제 막 생겼을 때 엄마들은 피곤함을 많이 느끼게 된다는데 그래서 공항에서 숙면을 취했던 걸까, 그래서 춥고 건조했던 게르 안에서도 그렇게 푹 잘 수 있었던 걸까. 어린아이들은 임신한 사람을 알아보고 더 잘 따른다는 속설이 있던데 혹시 그래서 몽골 아이들이 엄마를 그렇게 좋아했던 걸까. 예쁜 들꽃을 꺾어 그보다 더 예쁜 미소와 함께 엄마의 손 위로 건네주던 몽골의 한 아이는 모리 네가 엄마 뱃속에 생긴 것을 알아보고 축하해 주려던 것이었을까. 마치 태몽을 실제로 겪은 듯 꿈같이 예쁜 순간이었지.


  모리, 너의 존재를 알고 나서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 당황하면서도 동시에 밀려오던 벅찬 감정, 너는 알까? 그 감정은 무엇이었을까? 이제 막 뚝딱뚝딱 엄마의 자궁 안에 자신의 집을 지어놓고 우리 눈에 보이지 않지만 저 나름의 계획대로 빠르게 분열하고 형태를 갖추어가고 있을 너를 생각하며 눈물이 났다. 이렇게 엄마를 품고 낳았을 엄마의 엄마, 또 그 엄마의 엄마…. 그 모든 이들의 사랑이 왈칵 쏟아져 눈물의 형태로 불쑥 솟아오른 느낌이랄까. 아주 신비한 감정이었지. 벌써부터 너를 너무 사랑한다는 말이 선뜻 나오긴 어려웠지만 그건 분명히 사랑이었어. 엄마는 조금씩 너를 사랑할 준비를 하고 있었던 것 같아.


  갑작스러운 일이었지만 너를 잘 받아들이고 키워내기 위해 육아책도 구매하고 앞으로 뭘 준비하고 어떻게 생활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공부하는 날들이 이어졌지. 그러던 어느 날, 뱃속에 있는 너와 다정히 대화도 하고 태교도 하기 위해 태명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뭐가 좋을까. 뭐가 되었든 몽골과 관련된 태명을 짓고 싶다 생각했지. 네가 시작된 그즈음 우리가 몽골에 있었으니까. 말 위에서 느껴지는 수직의 흔들림, 몽골의 비포장도로를 달리던 푸르공의 덜컹거림에도 꿋꿋이 엄마 몸속에 집을 짓고 커나간 네가 대견스럽기도 했고 그곳의 광활한 대지와 맑은 하늘, 자유롭고 힘찬 동물들의 기운을 네가 한껏 받기를 바라던 마음이기도 했어. 그래서 고민 끝에 ‘모리’라고 짓기로 했단다. ‘모리’는 몽골 말로 ‘말’이라는 뜻이야.


  모리야, 네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어떤 일들을 겪어나갈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힘든 일을 겪더라도 너 자신을 그 불행의 틀 안에 가두지 않았으면 해. 틀 안에서 불행은 영원히 반복될 것처럼 너를 끊임없이 괴롭힐 테지만 사실 그 틀이라는 것은 너 자신이 만든 것일 때가 많단다. 네가 너를 몰아세우지 않는다면 언젠가 흘러가버리지. 언제 그런 틀이 있었냐는 듯이. 그러니 그저 힘차게, 자유롭게 살아라. 야생의 자연을 자유롭게 뛰노는 저 말들처럼. 가꿔지지 않은 들판은 멀리서 보이는 것처럼 언제나 평화롭거나 풍요롭지는 않아. 때론 불편하고 배고프고 고통스러운 것들로 가득 차 있는 듯 보일 때도 있어. 하지만 한걸음 한걸음 네 힘으로 나아가다 보면 더 넓은 세상에서 자연스러운 너 자신으로 충만하게 살아갈 수 있단다. 우리는 온전히 우리 자신일 수 있을 때 행복할 수 있어. 엄마는 네가 행복을 아는, 행복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 모리라는 이름에 이 모든 마음을 담아본다. 모리야, 뱃속에서도 즐거운 하루 보내렴.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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