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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Mar 28. 2023

그럼에도 불구하고

더 글로리 후기


남들은 진즉에 정주행하고도 남았을 테지만, 바쁜 현생에다가 시청하고 있던 다른 드라마까지 있었던 나는 이제야 뒷북을 치게 되었다. 중간에 기다리기 싫어서 일부로 시즌1과 시즌2를 몰아서 봤는데, 오히려 둘로 나누었으면 늘어지는 느낌없이 더 흥미진진하게 시청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었다. 개인적으로는 그 중간 부분이 살짝 지루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김은숙 작가님의 위력과 한국 드라마의 연출력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었다. 메세지 또한 확실한, 보기 드문 수작이었다.


사실 나는 엄벌주의나 복수에 무게를 두는 관점을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요근래 인터넷에는 마치 모두가 판사라도 된 양 가해자를 비판 더 나아가 비난하는 경향을 보인다. 번듯한 말로 꾸며내고 있기는 하지만, 나는 그것이 정말 피해자들을 위한 것인지 의문이 들 뿐이다. 자신의 피해 사실이 그 수를 셀 수조차 없이 많은 사람들의 입에서 오르락 내리락 거리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는 이들도 결코 적지 않을 것임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아무 생각 없이 내뱉은 한마디가 누군가에게는 나쁜 기억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트리거가 된다는 뜻이다. 어떻게 보면, 네티즌들의 화풀이에, 그리고 정의롭고자 하는 본능에 이용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한 본능을 주제로 하는 작품 또한 마찬가지이다. 시청할 순간에는 시원하지만, 우리의 삶에 있어서 깨달음을 주지는 못한다. 성공적인 복수란 동화 속의 이야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우리는 잊고 살아가야 한다. 쉽지 않을 테지만 말이다. 복수라는 명목 아래서, 존재하지 않는 권선징악을 바라는 것은, 나쁜 기억이 만들어낸 구렁텅이일 뿐이다. 그 집착은 언젠가 우리의 삶을 통째로 집어 삼킬 것이다. 극 중 동은이가 18년이라는 세월 동안, 건축가라는 꿈이 아닌, 오직 복수를 하기 위해 선생님이 된 것처럼 말이다.


내게 있어서 < 더 글로리 >는 그렇게 스스로 만들어낸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었다.


생각해 보면, 극 중 동은이가 복수를 위해 한 일은 사실 그렇게 많지 않다. 단지, 그들을 자극해 스스로를 파멸에 이르게끔 했을 뿐이다. 나는 그것이 단지 피해자들 뿐이 아닌, 가해자들에게 또한 그 기억이 그들 자신의 인생을 망가뜨릴 가능성을 상징한다고 보았다. 사실 연진이는 이미 동은이가 예솔이의 학교에 등장했을 때부터 벌을 받았다. 줄곧 불안감에 휩싸여야만 했기 때문이다. 그 불안감이 또다른 범죄를 낳았고, 결국에는 그 범죄에 발이 빠져 벗어나오지 못하게 되었다.


혹자는, 대부분의 경우, 가해자는 가해자이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연진이 또한, 동은이가 곁에 나타나지만 않았어도, 안정적인 삶을 계속해서 살았을 테라고 말았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연진이는,정말, 아무런 죄책감을 느끼지 못할까? 나는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죄책감을 느끼기 때문에, 과민 반응을 하여 스스로를 더 악한 모습으로 망가뜨린다고 말이다. 악한 사람이 악한 일을 저지르기도 하지만, 악한 일이 악한 사람을 만들기도 한다. 아무 생각 없이 저지른 가해 사실을 변명하는 과정에서, 이미 벌어진 일을 바꿀 수는 없으니 자신을 그럴 만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 < 더 글로리 >에서 또한, 동은이가 연진이에게 용서받을 기회를 주었을 적에 끝까지 뻔뻔한 태도를 유지한데는, 단순히 자신은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닌, 용서받는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러한 확신이 있었다면, 애초부터 불안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흔히 있는 다툼에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인데, 넌 왜 그렇게 반응해?" 하고 말하는 것처럼 말이다.


요근래 느낀 것이 있는데, 아무리 잔인한 세상 착하게 살면 안된다고들 하지만, 그래도 착하게 사는 것이 행복하구나 싶다. 모두를 긍정적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긍정적이게 대하는 것은, 누군가는 손해라고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손해가 아닌 것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이 세상에 절대적인 가치란 존재하지 않고, 삶을 해석하는 것은 개인의 몫이다. 세상을 삐뚤어지게 바라보고, 삐뚤어지게 대하면, 그 삐뚤어진 세상에 서 있는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이다.


그러니, 본인을 악하게 만든 그들 가해자는, 악한 세상에 살게 될 것이다. 가해자 5인방이, 18년이나 지나서도, 고등학교 일진의 습관, 생활 방식을 버리지 못한 것처럼 말이다. 그들이 단지 원하지 않아서가 아니다. 연진이는 딸을 통해 안정적이고 선한 삶을 향한 욕구를 내비쳤다. 동은이가 평생을 다시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들, 그녀는 그 꿈을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자기 자신부터 그런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건, 평생을 연기하며 살아갔겠지. 그것을 행복이라 부르고 싶지는 않다.


그에 반해 동은이는, 복수라는 목적을 통해 가해자의 탈을 썼지만, 인간적인 세상을 살았다. 현남, 여정등 믿을 만한 사람들이 주위에 있었고, 그들과의 상호작용이 그녀로 하여금, 피해 사실, 그 이후의 삶을 꿈꿀 수 있게 만들었다. 극 마지막에서, "이제야 비로소 시간이 흐릅니다" 라고 말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것은 단지 복수를 마쳤기 때문이 아닌, 그녀에게 주위에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 사람들이 없었다면 그녀는 계획했던 것처럼 자살로 모든것을 마무리했을 것이다. 그녀에게 미래를 만들어준 것은 가해자 5인방과는 다른, 상대를 진심으로 대하는 그녀 자신의 선함이었다.


결국, < 더 글로리 >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사람다워야 하는 이유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들에게 되갚아 주기 위해 그들과 같은 사람이 되었지만, 결국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아마, 그러한 요소가, < 더 글로리 >를 단순한 사이다 활극이 아닌, 묵직한 군상극으로 만들었던 것 같다. 잊을 수 없는 비극을 겪은 피해자들에게, 일종의 방향성을 제시해 주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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