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야 Jun 11. 2023

오만해 질 수 밖에 없는 숙명

뮤지컬 데스노트 후기


나는 선과 악, 또는 정의와 같은 주제를 지니는 예술 작품에 흥미를 느낀다. 뮤지컬 < 데스노트 > 또한 유튜브에서 우연히 타이틀 넘버를 접했을 적부터 극이 올라오면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예매해야 겠다 싶었다. 그런 나의 기대를 충족시켜주듯, 작품을 관람한지 거의 일주일이 다 지난 지금, 아직 여운에서 헤어나오지 못했을 정도로 깊은 인상을 남긴 작품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오랫동안 고수해 왔던 신념을 정곡으로 뒤집는 메세지를 가지고 있기도 한데...

개인적으로 나는 형식적인 선과 악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드라마 < 장월신명 >에서 주인공 담태진이 마신이 되어 얻은 막강한 힘을 세상이 아닌, '악' 그 자체를 대변하는 자기 자신을 파괴시키는 데에 사용했듯, 특정한 행동이나 사람이 겉으로 보기에 어떻든 간에 중요한 건 본질이자 마음이라는 것이다. 

언젠가 아버지와 일제 강점기에 관하여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에도 나는, 만약 내가 그 시대에 살았더라면 친일파가 되기를 선택했을 것 같다고 했다. 사실 나는 내가 사는 국가의 이름이 한국인지, 일본인지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단지, 일제의 지배를 받으면, 힘 없는 백성들이 온갖 착취를 당해야 한다는 사실이 억울할 뿐이다. 그 때문에, 백성들을 향한 그 모든 만행을 막으려면, 그를 저지른 사람들과 동등한, 또는 그보다 뛰어난 권력을 가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천황에게 충성을 약속해야만 얻을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것을 나는 '악'을 선택할 수 있는 용기라 부른다. 

물론, 독립 운동가가 되면 떳떳하게 나의 양심에 거리낌 없는 일들을 해나갈 수 있을 테지만, 희생을 감수해야만 하고, 그것은 때로 자기 자신이기도, 가족이기도, 가까운 친구이기도 하다. 망설임 없이 그렇게 선택하셨던 역사적 위인분들을 존경하기는 하지만, 적어도 나에겐 사람의 목숨이 국가의 명패보다 중요하다. 

하지만 아버지는 내게, '떳떳하게 나의 양심에 거리낌 없는 일들을 해내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해서 이야기했다. 그것을 다른 말로 '명분'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물론, 친일파가 되면 그 권력과 재력으로 더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그 과정에서 저지른 모든 악행들이 자기 자신을 무너뜨리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결국, 자기 자신에게 정당한 명분을 주는, 특정한 '선'을 넘지 않아야만 한다는 것인데, 

뮤지컬 < 데스노트 >가 바로 그 선에 관하여 이야기하고 있었다. 

주인공, 라이토는 불공평한 법과 세상에 대항하여 오직 자기 자신에 의한 정의를 세우고 싶어하는 인물이다. 이름 만 쓰면 사람이 죽어나가는 데스노트를 이용해 자신이 생각하기에 이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악한 범죄자들을 제거하기 시작하는데...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그의 초심은 변질되고 만다. 단지, 범죄자가 아닌, 자신을 대항하는 그 모든 사람들의 이름을 데스노트에 적었던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라이토는 선을 넘나드는 인물이다. 그 선이란, 선과 악을 가로 지르는 선이기도, 인간과 신을 가로 지르는 선이기도 하다. 사람을 죽이는 일은 분명 '악'이지만, 세상을 구하고자 하는 목적을 가지고 있기에 '선'에 속해 있고, 인간으로 태어났지만, 다른 이의 죽음을 함부로 결정하는 신의 영역을 넘보았다. 

흥미로웠던 것은 그러한 라이토를 상대하는 안타고니스트, 'L' 또한 별 다를 것 없는 캐릭터였다는 사실이다. 그는 탐정, 즉 법에 속해있는 신분을 가지고 있지만, 법을 어기는 한이 있더라도 사건을 해결하고 싶어 한다. 

그러한 두 캐릭터의 각기 다른 양면성은 그들로 하여금 돌이킬 수 없을 만큼 무너지게 만들었다. 세상이 정해둔 '선'을 넘어 그 '선'을 자기 자신이 결정하려 한 순간부터, 그들은 오만해 질 수 밖에 없는 숙명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세상에는 그러한 오만을 단숨에 짓이길 수 있는 예외란 것이 존재하기 마련이고, 그것이 L 과 라이토의 이상하리만치 허망한 죽음을 대변한다고 할 수 있다. 

그에 반해, 미사와 같은 경우에는, 한 번 데스노트를 손에 넣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힘을 탐하지 않는다. 지극히 인간적인 선택인 '사랑을 위한 희생'을 했고, 그것이 그녀로 하여금 신의 영역으로부터 단숨에 멀어지게 만들었다. 그것이 그녀가 유일하게 결말에서 구원을 받을 수 있었던 이유이다. 

언제나 나만의 기준을 중요시했던 내게, 조금은 겸손해 질 필요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 작품이었던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왜 그런 희생을 했나요, 뭘 위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