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사야 Sep 12. 2023

도시라는 이름의 거대한 철창

네팔에서의 봉사활동에 다녀오고


해외 봉사는 내게 있어 대학교에 간다면 한 번은 꼭 해봐야 할 버킷 리스트였다. 중학교, 고등학교 그리고 대학교까지 해외에서 보내며 여러가지 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익숙한 나지만, 자본주의적 원리로 움직이는 부유한 국가에서만 살아봤기 때문이었다. 아직 세계에는 종교나 기타 믿음이 중심이 되고, 가난과 기술의 부족 등으로 개발도상국이나 최빈국이라 여겨지는 국가가 많다. 그러한 국가에서는 어떻게 사람들이 살아가고, 또 부유한 국가에서의 사람들과는 무엇이 다른지 체험해 보고 싶었다. 학년이 올라가면 취업 준비, 자격증 등으로 바빠질 것을 생각해 1학년을 마친 후 바로 지원하였고, 운이 좋게 네팔에 2주간 살아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이번에 내가 가게 된 곳은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서 하루 이상 차를 타고 산을 올라가야만 하는 Okhaldunga에 위치해 있었다. 지형적으로 고립되어 있는 곳이라 그런지, 음식이며, 물, 기타 자원까지 충분한 것이 없었다. 나는 그곳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다. 수학, 과학, 영어 등의 주입식 교육에 익숙한 아이들에게 미술, 체육, 놀이 등 예체능 형식의 교육을 제공하여 주는 것이 역할이었다. 

아이들은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열악한 곳에서 배우고 있었다. 학교는 꼭 콘크리트 가건물과 같이 생겼는데, 책상이나 의자 모두 다듬어지지 않은 나무로 만들어져 딱딱하고, 위험해 보였다. 낡은 칠판에 컴퓨터나 모니터등 전자 기기는 상상할 수조차 없었다. 제대로 된 교육 과정 또한 없어서 아이들이 나이 상관 없이 같은 것을 배우고 있었다. 선생님들은 꼭 우리나라가 80년대에 그랬던 것처럼 강압적이었다. 아이들에게 손찌검을 하고 거칠게 미는 모습이 조금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그 아이들은 가장 낮은 계급의 카스트를 가지고 있었다. 참고, 억눌려 사는데 익숙할 터였다. 아이들은 꿈을 꾸기도 전에 꿈을 접는 법을 배운 것 같았다. 연예인, 군인, 또는 대통령 등의 미래를 상상하는 우리 나라의 아이들과는 다르게, 꿈을 물어보니 모두가 묵묵대답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복해 보였다. 

이유는 모르겠다. 내가 생각하기에 행복할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음에도 모두가 행복해 보였다. 2주 간의 봉사는 그 사회의 어두운 내막을 파악하기에는 부족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 확실한 것은, 아이들이 하나같이 아이다웠다는 사실이다. 

요즘 우리 나라의 아이들을 보면 아이들이 아이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때가 많다. 미디어를 통해 막대한 양의 정보를 접하고, 그 모든 것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고 있음에도, '아는 척'을 하는 것이 가능해 졌기 때문일까. 아이들이 어른 흉내를 내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 인터넷 방송을 따라 거친 용어와 삶을 비관하는 짤이나 밈등을 사용하는 모습을 보면 마음 한구석이 답답해져 온다. 

더군다나 그 아이들은 어린 나이부터 갖가지의 스트레스에 노출되어야 한다. 경쟁 사회가 심화되어감에 따라 초등학교에서도 방과후 활동이나 학원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그저 놀 수는 없는걸까. 그 나이에는 노는 것이 공부일 텐데. 나는 놀면서 배웠는데. 어린 나이부터 학원 뺑뺑이를 돌리는 부모님들이 납득이 되지 않다가도, 직장 생활을 하는 그들이 방치되어 있는 아이들을 맡길 수 있는 곳이 방과후 활동이나 학원 말고 또 무엇이 있겠는가 싶기도 하다. 

아이들은 아무것도 없는 공터에서도 해맑게 놀 수 있는 존재라고들 한다. 네팔에 있는 아이들에게는 우리나라 아이들이 가진 자원이 없었지만, 순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놀 수 있는 권리. 어쩌면 그것이 아이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주요한 요소일지 몰랐다. 

행복해 보이는 것은 단지 아이들 뿐이 아니었다. 

어른들 또한 선진국의 사람들이 잃어버린 무언가를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한편으로는 그것이 카스트 제도와 관련이 있지 않나 싶었다. 물론 태어나서부터 위치가 정해지는 것이 반인권적인 시스템이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다. 하지만 그러한 위치가 단지 카스트 제도 안에서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 속에서도 돈의 유무를 통한 구분이 존재한다. 한가지 다른 점은, 자본주의는 신분 상승에 대한 여지를 준다는 것이고, 카스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신분 상승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마냥 좋게 느껴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을 다른 말로 하면 희망 고문이다. 소위 금수저, 은수저, 흙수저라고 불리는 것을 뛰어넘으려면 일단 가지고 태어난 이들보다 배의 노력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게 평생을 애를 써서 노력해도 성공할 가능성이 그다지 높지 않다. 성공한다 해도 이미 위에는 더 많은 사람들이 있다. 끊임없이 비교하며 위로 올라가 최고가 되면 자리를 노리는 하이에나들과 떨어질 곳 밖에는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그 얼마나 허망한 삶인가. 

네팔의 사람들은 태어났을 때부터 계급이 정해지고 받아들이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꿈을 꾸는 대신 내게 주어진 것을 받아들이고 사는 것. 무엇이 옳은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무엇이 더 편안해 보이는지는 알것 같았다. 

더군다나 그들은 가진 사람들의 삶을 몰랐다. 전자 기기를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니고, 도로가 좋지 않은 탓에 외국은 커녕 도시에도 가보지 못한 사람들이 많았다. 그래서 그들은 무엇이 더 나은, 풍요로운 삶인지 몰랐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비교하고 끌어내릴 필요도 없었다. 아는것이 힘이기도 하지만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인터넷은 우리에게 거대한 정보망을 제공해 주지만, 그 정보망은 우리가 끊임없이 의식해야만 하는 몫이기도 하다. 그러다 보면 어느샌가 자기 자신은 잃어버리기 마련이다. 

그것이 어쩌면 도시에 살아간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산다는 것은 그저 산다는 것 그 자체인걸, 무엇이 더 나은 삶인지, 그리고 옳은 삶인지 끊임없이 눈치를  봐야만 한다. 먹고 마시고, 먹고 마시는 것을 걱정하는 것 이외의 걱정이 너무 많아진 나머지 먹고 마시는 것조차 중요하지 않게 되어 버리고...꼭 동물원에 사는 동물이 된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된다. 동물원에 사는 동물들은 삼시세끼 충분한 밥이 주어지고, 놀잇감은 물론 건강 관리까지 받는다. 그럼에도 그들은 끊임없이 자유를 갈망하고 상동 행동을 보이는 등 정신질환을 앓게 된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 또한 도망가고 싶은 마음을 안고 산다. 도시에서 태어나고 자라도 마음 한구석에는 "고향"이라는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리움이 있고, 그것은 그저 먹고 살기에 집중해야만 하는 자연 그대로의 본능을 대표하는 것인지 모른다. 자연과 자유에서 멀어진 사람은 행복할 수 없다. 네팔에서 2주간의 생활은 내게 "고향"이라는 실체를 알려준 기회였던 것 같다. 

그렇다고 그곳에서 평생을 살 자신은 없지만 말이다. 

벌써 도시라는 철창이 만들어낸 족쇄에 의존하게 된 모양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AI에 대항하는 나의 무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