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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Feb 09. 2023

AI에 대항하는 나의 무기


신기술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은 사실 어느 세대에나 존재하는 것이었다. 내가 어렸을때만 해도, 텔레비전을 바보 상자라고들 했는데, 요즘은 한 가족이 둘러앉아 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는 모습이 낭만적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여 그러한 걱정들이 전혀 유효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특히, 요근래 AI가 발전하는 속도는 평소 기술 발전에 관해 긍정적인 시선을 가지고 있던 나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이니 말이다. 창작은 인간의 영역이라고들 하더니, 이제는 글을 쓰고, 그림을 쓰는 로봇이 나왔다. 아마 조금만 있으면 그러한 AI를 이용하여 예술품을 찍어내는 회사조차 나올지도 모른다. 글을 쓰고자 하는 사람으로서,  그러한 변화가 달가울 리는 없다. 하지만 동시에, 과연 그들을 대항할 '나'의 무기는 과연 무엇일까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러면 일단, 인간이 왜 예술을 창작하고 소비하는지에 관하여부터 따져보자. 이번 학기에 내가 수강하게 된 영문학 수업에서 몇몇 학생들이 Chat - GPT ( OpenAI가 개발한 프로토타입 대화형 인공지능 챗봇이다 )를 이용하여 리포트를 작성하고 제출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교수님의 말을 인용하면, 예술의 의의는 결과가 아닌 과정에 있다고 한다. 어떻게 보면, 그러한 작품을 완성된 상태에서 소비하는 일반 대중들에게는 고개가 갸웃뚱해지는 말일 것이다. 특히 그러한 완성물이 얼마나 소비되느냐에 따라서 손익이 결정되는 오늘날의 시장을 생각하여 보면 말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예술가들이  창작할 때, 손익을 계산하지는 않는다. 만약 그들이 손익을 판단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성향을 지녔더라면, 그들은 예술이 아닌 경제에 종사했을 터이다. 예술가들은 작품을 만들어나가는 과정에 있어서, 자신의 창작물이 어떻게, 또는 어떤 형식으로 대중에 닿았으면 좋겠는가를 고민한다. 그것은, 예술이 소통에 의의를 두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게 고민하는 과정에서, 예술가는 자신의 고민을 계속하여 수정하고, 다듬는다. 마침내, 완성품이 만들어 졌을 때 그것은 단지 문법이나 붓칠등 기술의 집합이 아닌, 예술가의 철학 그 자체이다. 무언가 값이 매겨진다면 그것은 예술가가 보낸 고군분투의 시간이지, 글자 몇자, 또는 그림 몇장이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아무리 AI가 발전한다 하여도, 그러한 시간들을 대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든 그들은 단지 예술품의 겉모습을 흉내내는 것이지, 깊이를 가지고 있지는 않다. 만약 AI가 정말 발전하여 그러한 깊이까지 만들어낼 수 있다고 한들, 그 모든 예술품은 각기 다른 철학과 시간을 담고 있다. 애초에 우열을 가리기 힘든 그것을, 무언가가 대체한다는 사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물론, 소위 양판소 ( 양산형 판타지 소설 ), 또는 무언가 고민의 과정 없이 쉽게 만들어지고 버려지는 문화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다. AI는 그러한 과정을 보다 더 빠르게, 효과적이게 해낼 테니까.


하지만, 오늘날 내가 창작하는 과정에 있어서, 결과물에 집착하지 않고, 끊임없이 내 스스로를 다듬는 과정은 그 무엇도 대체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럼으로, 오늘 내일 당장 성과가 없는 것에 집착하지 말아야 겠다고 다짐한다. 내가 해야 할 일은 오직, 끊임없이 무언가를 생각하고 만들어내는 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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