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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사야 Jan 31. 2023

에코페미니즘에 관해

이야기를 시작하기에 앞서,


우리나라에서는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상당히 부정적인 어감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나도 뉴스나 인권 단체에서 작성한 칼럼 등을 읽으며,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체감한 적이 있었다. 나는, 적어도, 일반 대중을 설득시키지 못하는 이념은 실패한 이념이라고 생각한다. '저'들 끼리의 주장만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더 많은 사람들을 공감시키고, 제도를 통해 세상을 바꿔야지 의미가 생기는 것이다.


나는, '페미니즘'에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일반 대중에게 조차, 우리 사회에 '에코페미니즘'이 왜 필요한가에 관하여 설득하고자 한다. 만약 나의 논리에 허점이나, 비약이 있다면 댓글로 명시해주시길 부탁드린다. 적어도 나는, 이 세상에 절대적인 이념은 없기 마련이기에, 많은 사람들의 의견을 수용하며 변화하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럼, '에코페미니즘' 이 어떻게 생겨 났는지 부터 거슬러 올라가자.



때는 1459년, 이탈리아 출신의 탐험가,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인도를 향한 여정에서 대서양을 건너다, (신)대륙을 발견한다. 지구의 크기를 잘못 측정한 것에서 비롯된 오류로, 일본을 실제 위치보다 14000km 가까운 것으로 그렸다고 한다. 당시 콜럼버스는 고국으로 향하는 편지에 자신의 여정을 여성의 '가슴'에 비유 했는데, 이것이 후에 다른 여러 유럽의 남성들로 하여금 미지의 땅을 향하여 성적인 메세지를 부여하는 것의 시초가 되었다.  


탐험가들은 그 미지의 땅을 처녀지 ( virginland ) 라고 불렀다. 또한, 그 '처녀'를 소유하고 가꾸는 것이 '우월한' 남성들에게 주어진 의무였다. 동시에, 그들은 대륙의 원주민들을 두려워 했다. '식인종' 이라는 표현이 바로 여기서 비롯된 것인데, 직관적으로 사람을 먹는다는 것이 아닌, '인간성'을 잡아먹는다고 이해해야 맞을 것이다. ( 물론, 아메리카 소수의 원주민들이 식인 문화를 가지고 있었던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아주 소수였다 ). '처녀'를 탐하는 것은 남성의 본능인 동시에, 그것을 과하게 탐하게 되면, 죄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처럼, 탐험가들은, 원주민과 교류하고 그들의 문화를 향유하는 것이 자신의 우월성을 박탈 시킨다고 믿었다.


이것은 당시 유럽에 만연하게 퍼져있던 데카르트의 '이원론'에 근거한 주장이다. 이원론은 육체와 영혼이 각각 독립적인 성격을 가지고 있는 동시에, 영혼이 육체보다 우월한 것임을 믿는다. 그것은 즉, 육체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인종, 하층민, 자연, 동물 등을 원시적인 것이라 생각한 셈이다.


그들에게 있어 원시적인 것은, '백인 남성'의 손에 의해 개화되어야 했다. 마침, 동시대에 시작되었던 자본주의에 의해 이용되어, 육체적인 성격을 가진 여성, 백인을 제외한 다른 모든 인종, 하층민, 자연, 동물 등은 착취되어야 마땅한 존재가 되고 말았다.



그렇게 발전한 것이 오늘날의 서구 중심 사회이다. 끊임없이 착취하고, 발전하여 '부'를 만들어냈고, 화석 연료를 사용한 산업화로, 현재 전지구는 기후위기를 겪게 되었다.


[ 여기서 끊임없이 논란이 되고 있는 기후 위기의 진위 여부에 관하여는 다른 포스팅에서 다룰 것이다. ]


에코페미니즘은,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이전의 지구 곳곳의 '원주민'들이 가졌던 모계 사회의 가치를 지향한다. 그것은 가부장주의의 '지배적인' 성격에 벗어나, '어머니'의 보살핌, 사랑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동시에 '여성'의 아이를 낳고, 기르는 노동에 관한 가치를 재평가할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이는, 자연을 단지 자원이 아닌, 우리의 어머니, 가족, 친척으로 생각하는 것이며, 기후위기를 대하는 인류에게 있어서 필요한 사고 방식일 것이다.


나는 이 세상에 옳고 그름이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절대 다수가 이익을 보는 사람이라면, 소수가 착취되는 상황이 무조건 나쁜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분명, 그러한 선택이 필요한 상황 또한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 날의 자본주의는 소수가 다수를 착취한다. 여기서 '소수'란 화석연료 중 3/1 가량을 사용하는 상위 20개에 불과한 기업을 의미한다. 바로 그들이, 전지구적인 '기후 위기'를 일으킨 원인이다.


따라서, 미래 인류의 생존을 위해서라면, '자본주의' 또는 지배주의 성향의 '가부장주의' 대신 '에코페미니즘'이 사회를 구성하는 이론이 되어야 하지 않나 싶다. 이것은 단지 옳고 그름에 관한 문제가 아니다. 다만, 필요에 따라 움직여야 할 때가 왔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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