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상냥한 김선생님 Jun 21. 2022

마흔 즈음에

오랜 친구를 만나러 가는 길다.

굴이 가물가물 해질 만큼 꽤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다. 스무 살에 만난 친구는 마흔이 넘어서도 스무 살 그 무렵의 마음으로 만나게 된다.  졸업을 하고, 취직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잔잔한 주름살이 걱정인 나이들이 되었지만 마음만은 늙지 않아서  주책맞게 싱그러워진다.  스무 살 즈음에 흉보던 그 아줌마들의 모습이 지금 우리의 모습인데 그러든 말든 우리끼리 즐겁다. 누구 아들은 공부를 잘하고, 누구 딸은 어떻고, 시답지 않은 자식 놈들 자랑에 미혼인 친구들은  괜히 휴대폰만 만지작 거리고, 안 듣는 척 하지만 중간중간 피식 웃는다. 편 흉을 보는 척, 결국은 자랑하는 친구에게 '넌 진짜 결혼 잘한 거다. 감사하고 살아라.' 등짝을 때리기도 하고, 이제는 주머니 사정들이 여유로운 나이가 되었으니 대학로 주점에 앉아 술보다 안주를 더 많이 시킬 수 있다. 술값보다 다음 숙취가 더 무다. 누군가 테이블 옆 담벼락에 적어놓은 유치한 낙서들에 손발이 오그라들다가(예를 들면 선희, 종구, 미희 forever 같은) 이십 년이 넘었을 그 낙서에 괜히 숙연해다. 우리 그렇게 마흔 언저리다. 오래된 친구가 좋은 이유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 만나게 되어도 어제 만났던 듯, 편하고 반가워서다.

 먹고사는데 바빠서라는 흔한 계로 하루 이틀 미루던 만남은 이제 더 이상 미룰 수 없었다.  전날 야근에, 출장에 정신없는 와중에도 무덤덤하게 지하철을 타고, 기차를 타고,  '서울 많이 변했네! ' 감탄도 잠시, 또 다른 스무 살들이 북적거리는 싱그러운 대학가를 지나가다가 문득 사는 게 별거 없단 생각이 들었다.

'이러다 또 10년이 가고 20년이 가는 거겠구나.'

약속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와서 기다리는 친구들도 있고, 이 만남을 있게 한 친구의 환하게 웃는 모습이 너무 반가워서 눈물이 났다.  안녕? 잘 지냈어? 인사할 겨를도 없이 눈물이 자꾸만 기어 나왔다. 오늘 급히 이뤄진 만남의 드레스 코드는 블랙, 친구의 남편에게 절을 하고, 하얀 국화를 한송이 올려주고. 다시금 웃고 있는 얼굴을 천천히 올려다보았다. '우리 왔어. 이 와중에 너 참 해맑다.' 오래 앉아있을 수가 없어 도망치듯 급하게 돌아 나왔다. 꺼이꺼이 눈물이 나지도 않았고, 아주 사무치게 슬프지도 않아서 이게 맞는 감정인가 의아했다. 같이 갔던 친구들과 또다시 일상적인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돌아오는 길, 삶에 대한, 사는 것에 대한 생각이 계속되었다.  이렇게 허무하게 일찍 떠난다는 것을 알았다면  그 친구가 그렇게 열심히 학위를 받고 매번 치열하게 살아냈을까? 웃음이 너무 해맑고 예뻐서 장례식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던 그 영정사진이 자꾸만 떠올랐다. 그리고 뜬금없이 치렁치렁 눈물이 났다.

누구나 맞이하게 될 순간이지만, 그저 모른 척 살아가게 된다. 그 순간을 인정하고 기억하며 살아갈 때 삶이 더 의미 있어진다고 했던가. 나는 내일 또 출근을 하고, 먹고사는 일에 바빠질 것이다. 순간순간을 그저 성실함으로 채워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그것이 남겨진 우리가 그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최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흔 즈음이 되면 꽤 근사한 어른이 될 줄 알았는데......

나는 여전히 두려운 것이 많고, 어리석다.

그래도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묵묵히 채우다보면

지금보다는 더 깊이있고 여유로운 어른이 되어있지 않을까


노력할게.

안녕, 우리 다시 꼭 만나. 보고싶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