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신 패스 혹은 정신줄 패스?
2022년 1월 8일 토요일 장날.
백신 패스가 도입되고 주말 장날 전, 단단히 마음먹었다.
엄마 가게 손님들은 시장에 장을 보러 오시는 대부분 60대 이상의 손님이 가장 많다. 나이 드신 분들이 백신 큐알코드를 핸드폰에 가지고 다니 실지 걱정이 되었다. 그러나 막상 내 걱정과는 다르게 실제로 연세가 많으신 분들도 주민등록증에 접종 완료 스티커를 붙여서 소지하고 계셨고, 백신 패스 큐알코드를 열어서 보여주시는 분들도 많았다. 그날 그렇게만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손님 중에는 백신 패스가 무엇인지도 전혀 모르시는 분들도 있었다.
70대 어르신 부부가 오셨다. 주말 장날이고 점심시간까지 겹쳐서 아마도 줄을 15분 정도는 서서 기다리셨을 듯했다. 백신 접종 완료 확인서를 요구하자 처음 듣는 단어인 듯 두 분이서 나를 쳐다보셨다.
"어르신~ 백신 맞으셨어요?" 차분하게 물었다.
"어! 백신 3차까지 맞았지!" 남자 어르신이 당당하게 대답하셨다.
"네, 그럼 백신 맞으신 접종 확인서를 보여주셔야 합니다. 혹시 주민등록증에 스티커나 큐알코드 있으세요?"
도통 모르겠다는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두 분이서 나를 쳐다보셨다.
"백신 확인증이 없으시면 식사를 못하세요." 안타깝고 답답한 마음이 함께 올라왔다. 식사하시기 위해서 추운 겨울날 줄을 서서 기다리셨는데, 무지로 인해 식사를 못하고 나가셔야 하는 일이 생기니 속상한 마음이 함께 올라왔다.
"난 그런 거 모르는데... 어제도 식당 가서 먹었는데 아무 소리 안 하던데?" 어르신은 백신 패스에 대해서 전혀 모르시는 눈치였다. 그냥 눈 꼭 감고 나만 모른 척하고 식사를 드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옆에서 대화를 듣고 있던 일하시는 이모가 답답하셨는지 다가와 어르신들에게 평소보다 열 톤은 더 높은 목소리고 대화를 낚아챘다.
"어르신! 백신 접종 확인서 없으세요?"
"어! 없어!." 어르신도 큰 목소리로 답하셨다. 큰소리에 다른 손님들이 일제히 우리 쪽을 쳐다봤다. 이미 다른 손님들이 대화를 들은 이상 우리만의 비밀로 하고 식사를 대접하는 것도 물 건너갔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어르신들을 빈 위장으로 그냥 돌려보내야 했다.
그때부터였다. 계속 뒷 통수가 따가웠다. 마치 나쁜 짓이라고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 뒤로 백신 패스로 손님을 최소 10분 이상은 그냥 보낸 것 같다.
"씨발!" 나가면서 소리 지르며 욕을 하시는 남자 손님이 있었다. 정체모를 어플을 보여주시면서 백신 패스 인증이 맞다고 소리 지르며 우기는 중년의 아주머니, 백신인증 확인서를 사진으로 캡쳐 해서 보여주는 사람들, 백신 맞은걸 자랑해야 하는 것도 아니고 이걸 왜 보여줘야 하냐고 따지는 손님, 다른 식당은 안 하는데 왜 확인하냐고 저항하는 사람들, 끝도 없이 피로감이 몰려왔다.
백신 접종 확인을 철저하게 해야 하는 게 맞는 건지, 오히려 내가 바보 멍청이가 된 기분이었다.
백신 패스를 확인하고 테이블도 치우고, 무겁고 뜨거운 뚝배기를 서빙하며 주문도 받고 설거지도 해야했다. 시장 안의 식당들은 장날마다 일손이 늘 모자라기에 할 일은 1분 1초가 아깝게 넘쳐난다.
여러 일을 동시에 처리하다 보면 백신 패스를 확인했는지 안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을 때도 있어 손님에게 정중히 물어보면 "아까 했잖아요!!!"라고 꽥하고 고함소리가 들려왔다. 그러다가 순간 "어! 저분은 안 하신 분인데?"라는 기억이 올다오면 내 안에서도 쓸데없는 오기가 올라왔다.
"손님? 죄송해요. 아까 보여주신 인증이 만료돼서 확인을 못했는데 다시 보여주시겠어요?"
"아까 보여줬잖아!!!" 여전히 큰 소리부터 나왔다.
손님이 당당하게 내민 핸드폰에서 인증서를 확인하니 그대로였다. 개인정보 입력을 안 해 아직 인증이 완료되지 않는 상태다. 거짓말을 모면하기 위해서 큰소리로 위장하였던 것이다.
"손님, 본인인증을 완료하셔야 해요." 내 말이 끝나기 무섭게 또 한 번 듣기 싫은 고음이 터져 나왔다.
"다른 식당은 아무 데도 안 하는데, 왜 여기만 이렇게 요란을 떨어?! 어?!!!" 아주머니가 찌렁찌렁한 목소리로 정부가 내린 백신 패스 결정에 영향력이라곤 0.0000001도 없는 나에게 항의했다.
그때 갑자기 내 안에 꾹꾹 눌러왔던 화가 분수처럼 터져나왔다. 큰 소리로 화를 표현했는데, 이 글을 적으면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뭐라고 말을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아마 빨리 잊어버리고 싶어 한 내 안의 방어기제가 기억삭제 기능을 작동한듯하다.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이라곤 전혀 느껴본 적 없어 보이는 그 중년의 아주머니는 내 큰소리에 더 자극받아 식당 안 모든 손님에게 쩌렁하고 짜증스러운 목소리가 닿도록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기 시작했다.
나는 더 이상 상대하고 싶지 않아 자리를 피했다.
결국 우리 쪽에서 본인인증을 도와 쌀 한 톨 남기지 않고 깨끗하게 소머리국밥을 비우셨다. 영업장에서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도 아무일 없었다는 듯 일행분과 웃으며 대화하고 식사하시는 그 손님이 미웠다. 크게 심호흡을 여러 번 해보았다. 여전히 내가 만든 그 밉고 뾰족뾰족한 못난 감정이 배출 되질 않고 내 안에서 부글불글 곯아가는 것이 느껴졌다.
사실은 나 자신에게 가장 화가 났다. 교양 없고 타인에 대한 배려라곤 없는 아주머니 때문에 왜 내 감정이 휩싸였는지가 너무도 화가 났다. 처음 본 그 아주머니가 미운 게 아니라 다른 사람의 감정에 내 감정을 조절하지 못한 내가 미웠던 것이다. 나 자신에 대한 실망감이었다.
나의 본업인 번역일을 할 때면 키보드를 두들기며 사람을 만나기에 타인에 의해서 내 감정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분노받는 일은 거의 없다. 물론 온라인에서도 무례한 사람이 가끔씩 있긴 하지만, 시장 안에 있는 식당에서 마주한 무례한 손님들과는 비교하기가 어렵다.
손님과 언성을 높이며 감정을 표출하는 내 모습은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다. 평소 보지 못한 나의 모습을 보는 것에 화가 났고 당황스러웠다. 내 밑천이 들통난 것 같아 수치스러움도 느꼈다.
일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와서도 가게에서의 일이 내내 머릿속에 맴돌았다. 식사를 못하고 돌아가셨던 그 노부부의 굽은 등이, 욕을 하고 돌아서는 중년의 아저씨가 신고 있었던 흙 묻은 더러운 등산화가, 나의 인내심을 단번에 무너트린 아주머니의 찢어지는듯한 고함 목소리가 나를 하루 종일 괴롭혔다.
무거운 뚝배기를 나르느라 팔도 아프고 허리는 지끈거려 빨리 잠들고 싶은데 잠은 오질 않고, 침대에서 뒤척거리며 새벽 3시까지 뜬눈으로 지새웠다.
다음날 기분 전환하기 위해 자주 가는 산으로 향했다. 산에서 좋은 공기를 마시고, 고요한 공간에 있으니 기분이 한결 편안해졌다. 집에 와 옷을 벗는데 어라 뭔가 이상하다. 오른쪽 겨드랑이 아래에 뭔가가 느껴졌다. 종기가 난 것이다.
태어나서 종기는 처음 생겨본다. 다음날 바로 병원 가서 종기 수술을 받고 여전히 치료를 받는 중이다. 왜 이런 염증이 몸속에 생겨났는지, 아무리 생각해 봐도 그날의 극심한 스트레스가 속에서 곯아 몸으로 터져 나온 것이라 생각한다. 칼로 째서 짜낸 염증 덩어리의 고름처럼, 나의 곯았던 마음도 시간과 함께 치유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