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도 비가 온다.
제일 좋아하는 날이 무엇이냐 물을 때 야멸차게 비 오는 날이라 대답했던 과거의 모습은 온 데 간 데 없고, 비만 오면 풀어진 눈으로 창 밖을 시름없이 쳐다보는 게 일상이 됐다.
오늘도 비의 추적함에 함께 젖어들지 않기 위해 갖은 애를 쓰고 있다.
그 물냄새 가득한 공기를 들이마시는게 무엇이 그토록 흔연스러웠는지는 알 길이 없다. 그 마음을 되새김질 해보려고 가끔씩은 창을 열어 손을 내밀어본다, 오늘의 비가 긋기를 바라면서.
여전히 달갑지 않은 발걸음이라는 걸 알면서도, 매캐하게 시린 바람이 몰아치던 때도 빗속으로 뛰어들어가던 그 모습이 자꾸 생각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