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임병원에 가다
나는 내 자궁에 자신이 있었다.
작년 결혼을 앞두고 검사했을 때, 자궁나이를 측정하는 amh 수치가 3.5로, 나이로 치면 25세로 내 실제 나이보다 열 여섯이나 젊었고, 조영술로 들여다본 나팔관도 깨끗했으며, 누구나 하나씩 있다는 작은 물혹하나 발견되지 않았던 것이다. 다만 문제가 되었던 것은 한국나이 41세라는 내 생물학적나이였다. 자궁이 아직 20대인 것도 생물학적 나이 41세 앞에서는 별 소용이 없었다. 난임병원 의사들이 늘 보여주는 표가 있는데, 생물학적 나이 40세를 기준으로 임신 가능성과 불가능성의 수치가 역전되는 그래프이다. 내가 항상 내 젊은 자궁으로 자신만만해 하면, 의사들은 어디서 다같이 구했는지 토씨하나 다르지 않은 그 표를 들이밀며 내 기를 꺾어놓았다.
나는 회사에서 만난 남편과 8년 연애 끝에 결혼을 했다. 회사의 일은 해도 해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산더미였지만, 나는 그래도 일이 재미있었다. 혼자 살다보니 어느정도 목돈이 모아졌고, 이대로 하고픈 것 하면서 평생 살아도 상관없다고 생각했었다. 지금도 혼자 사는 삶에 대한 동경은 변함없지만, 결혼이 나에게 가져다 준 것에 신비로움을 느낀다. 결혼해서 느끼는 삶의 감각은 전혀 다른 차원의 것이었다. 기쁨도 더 크게 느꼈고, 슬픔도 더 깊이 느꼈다.
그 중 하나가 가족들과의 사이에서 느끼는 감정이었다. 결혼 후 평생 풀릴 것 같지 않던 가족과의 관계가 의외로 쉽게 풀린 경우가 많았다. 우리 둘에게 포기하고 있었던 것들을 충족받기 때문인지, 양가에서는 우리가 조그만 것 하나를 해도 너무나 기뻐 하셨다. 그런 가족들을 보면서 나는 어쩌면, 어릴 때 부터 어딘가 소외되고 부족했던 가족의 일원으로서 내 영역을 채워가고 있다는 안도감을 느꼈다.
나는 평생 같이 할 든든한 동료가 생긴 것이 좋았고, 우리 둘이 한 팀이 되어 삶의 문제들을 하나씩 클리어 해 나갈 수 있겠다는 믿음이 생겼다. 현재도 좋았지만 앞으로의 삶이 더 기대 되었다. 늦게 결혼하기는 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결혼이 주는 삶의 다양한 감정은 이전의 삶보다 훨씬 더 큰 만족감을 느끼게 했다.
그래서 더 아이가 갖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이가 줄 수 있는 감정도 느껴보고 싶었다. 사실, 아이 없는 삶을 한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나는 나같은 아이 한 명만 낳아서 평생친구이자 분신을 삼아 알콩달콩 살고 싶었다. 하지만 그 꿈은 쉽게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고, 가지기 힘든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자 더 간절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난임병원을 찾게 된 것은 별로 어렵지 않은 선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