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감각기관은 참 효율적이죠. 지속적인 자극이 반복되면 그걸 그냥 배경 잡음으로 처리해버리니까요. 소음이 지속되면, 소음 자체를 감각처리 기관에서 음소거해버리는 셈이에요. 냄새도 마찬가지고요. 아마도 이곳 사람들은 이 냄새의 존재를, 그리고 어떤 소리의 존재를 느끼지 못할 거예요. 그것과 함께 너무 오래 살아왔으니까요. 하지만 그 배경 잡음은 절대 사소하지 않아요. 그건 이곳이 어떤 곳인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는지에 대한 진실을 알려주죠. 그리고 때로 그것은 여행자의 시선으로만 포착될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오랜 시간을 살아온 사람의 시선 대신에요."
그것은, 유안이 감당하기 힘든 비밀일지도 모르지만 레오가 말한, 여행자의 시선으로만 포착할 수 있는 어떤 비밀을 알고 싶었다.
- 김초엽 <므레모사> 중에서
공기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있어서 그것을 인식하지 못하는 환경을 나는 종종 '공기'라고 표현한다. 공기는 무색(보이지 않음), 무취(냄새가 안 남), 무촉(피부로 느껴지지 않음), 무미(맛이 없음), 무음(소리 없음)이다. 이것은 착각이다. 공기는 투명한 색으로 가득 채워져 있고, 특정 공간의 공기는 특유의 냄새를 품고 있다. 입자의 파동으로 소리가 발생하고, 공기의 이동(바람)으로 존재의 감촉을 느낀다. 공기는 존재 없음으로 존재한다.
감각은 쉬지 않고 작동하지만 의식하지 않으면 잠잔다. 의식은 감각을 깨우는 도구이고, 수시로 깨워놓지 않으면 감각은 죽어간다. 감각이 빈사(瀕死:반쯤 죽은) 상태에 이르면 자아는 분열하기 시작한다.
환경 속에서 인식이 살아 있으려면 감각이 깨어있게 훈련해야 한다. 자신이 속해 있는 환경이 어떤 냄새와 소리를 품고 있는지 집중해야 한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을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환경 속에 관계하고 있는 모든 것들을 끌어안고 느껴야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다. 환경 속에서 자신의 원점이 정해져야 자아가 분열하지 않는다.
가족
가족은 가장 은밀한 공기를 공유하는 집단이다. 가족 안의 공기는 너무 익숙해서 쉽게 '배경 잡음' 처리된다. 소리들이 매일 아우성 치고 있지만, 감각은 효율적으로 음소거 해버린다. 집안에 늘 배어 있어서 냄새인지도 모른 체 살아간다. 친구 집에 놀러가면 그 집만의 특유의 냄새가 난다. 집 거주자는 맡지 못하는 그들만의 냄새.
예민한 집주인은 냄새를 지우기 위해 인공의 향수를 쓰기도 한다(사람들은 좋은 냄새-행복해 보인다-가 난다고 모르는 소리를 하기도 한다). 향수는 집안의 악취를 감추기 위한 임시적인 방편에 불과하다. 영원히 악취를 숨길 수는 없다. 대대적인 공간 이동(이사)이 일어나거나 가정의 생활방식 전체를 획기적으로 바꾸지 않는 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는다.
외부와의 공기가 차단된 폐쇄적인 집일수록 냄새는 강하다. 냄새가 배경 처리되면 구성원들은 각자 불행으로 오염된 상태로 살아간다. 가족 안의 공기는 주기적 환기가 필요하다. 타인의 삶을 직간접적으로 관찰하고 관심있게 살펴봐야 한다.
여행자
남의 가족 공기에 타인은 관심이 없다. 오염된 공기 안에서 살던 구성원이 가족 밖에서 문제가 돌출될 때 상황은 달라진다. 가족의 공기를 무시할 수 없는 직업이 있는데, 내가 종사하고 있는 교육업이 그렇다. 학생 개인의 문제는 개인만의 것이 아니라 대부분 관계의 문제에서 터져 나온다. 그것을 중재하고 해결하는 교사의 입장에서 아이 개인의 문제만으로 접근하면 해결책이 안 보인다. 가족 구성원들은 좀처럼 인식하지 못하는 오염된 공기가 바깥 사람들에게는 분명하게 보인다.
가족을 벗어나지 않고서는 자신이 감각하고 있던 공기를 인식하기 쉽지 않다. 집을 떠나보면 알게 된다. 자신이 미처 모르고 있었던 멍에와 같은 굴레, 무의식 깊은 곳에 새겨진 상처를 만난다. 가족 구성원에게 당연하게 받았던 배려와 희생이 가족을 떠나면 비로소 보인다. 가족이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이기 시작한다는 건 두려운 경험이다.
자기 스스로가 여행자가 되어야 한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익숙했던 시공간의 의미를 돌아본다. 절대적 믿음의 안개가 걷히는 경험은 고통이다. 그것을 성장통이라 한다. 자유로운 여행자는 성장한다. 여행자는 위험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