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자지처럼 넓고 얇은 지식만 있어도 꾀부리지 않고 자료를 열심히 찾으면 웬만한 글을 쓸 수 있겠다... 글이란 것은 어떤 사실을 토대로 필자가 재구성하는 일이다. 감각적인 글발을 발휘하는 게 아니라 탄탄한 자료로 내실 있게 글을 써야 한다는 감을 알았죠.
- 은유 <글쓰기 상담소> 중에서
모르는 세계는 쓸 수 없다
어제 백일백장 24화 '일기가 빅데이터로 모인다면'을 쓰면서 체득했다. 빅데이터, 알고리즘, AI... 실제 내 경험 세계와는 거리가 좀 있는 용어들이다. 아는 것이 별로 없으니 멈추었다 찔끔 쓰고, 멈추었다가 조금 쓴다. 결국 더 이상 한 글자도 나아갈 수 없는 순간이 찾아왔다. 잠시 덮었다.
다음 날은 반드시 써야해서 마냥 기다릴 순 없었다. 유발하라리 <호모 데우스> 문장에서 출발했으니 다시 이 책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필사 문장을 읽었다. 문장들의 의미를 곱씹고, 책 속의 문장들과 내 머릿속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문장들을 조합하여 꾸역꾸역 썼다. 억지로 마무리는 할 수 었었다. 내 마음에 들지는 않았다. 끝낸 것에 만족하면서 손을 털었다.
기자의 감각
"이거 이야기 좀 되겠는데."
기자는 감성이 아닌 감각으로 글을 쓴다고 한다. 기자는 표면 안에 스토리가 숨어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감각을 가졌다.
기자 출신의 소설가 장강명은 조지오웰과 공통점을 기자라는 점을 꼽고 있다. 기자가 진실(팩트)에 집착한다고 믿지만, 완전한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 사실을 인정한다면 기자의 역할은 결국 자신이 생각하는 진실을 믿게 만드는 글을 쓰는 사람이다.
기자 출신(또는 기자의 사고 방식을 가진) 소설가는 이 점에서 기자가 글쓰는 방식과 맥락이 같다. 거짓말 이야기를 그럴 듯하게 설득하는 힘이 필요한데 그것은 자료에서 나온다.
자료는 글쓰기를 풍부하게 한다. 자신의 직업 세계를 바탕으로 쓴 에세이나 계발서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는 작가의 직업적 경험이 깊이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그들에게는 경험이 자료이며 실제 좋은 자료를 많이 가지고 있기도 하다. 이런 류의 글이나 책들은 일회적으로 소모되고 마는데 자신의 경험을 일갈하여 쓰고 나면 다음 쓸 주제가 고갈된다.
자료로 소설쓰기
글을 지속적으로 쓰는 전문작가(주로 소설가)은 새로운 주제를 찾아 끊임없이 공부하고 자료를 모으는 작업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발로 뛰는 걸 멈추면 발이 닿지 않는 허방다리를 위에서 공허한 이야기를 해야하는 난감한 상황에 부딪힌다. 상상과 허구의 세계를 쓰는 소설가들이야말로 자료에 집착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좋은 작가는 발로 뛰며 글을 쓰는 사람이다. 작가의 부지런함은 공부에서 나온다. 잘 읽고, 꼼꼼하게 조사하고, 사람을 만나 대화와 인터뷰를 하고, 자료를 모으고 정리해야 비로소 글을 쓸 준비가 된다. 자료의 힘으로 꾸며낸 스토리가 핍진성과 개연성이 있는 소설이 된다.
공감과 감동은 추상계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구체적으로 아는 것에서 나온다. 작가는 비효율적인 일을 하는 사람이다. 글쓰기는 효율(들인 노력과 결과의 비율)을 따지지 않아서 매력적인 일이다. 독자 감동시키기는 '형용사나 감탄사'에 있지 않고 '동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