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찌해야 하는가? 지금의 유아교육을...
루소 에밀 ‘아동기’ summary
아동기의 특징은 말을 배운다는 것이다. 말을 할 수 있기 때문에 울음으로 더 이상 의사를 표현하지 않게 된다. 또한 아동기에는 어른들의 태도에 따라 그 행동이 좌우된다. 어른들이 어떤 문제 상황에 태연하면 아이들도 별로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버릇이 생긴다. 자연의 교육에 맡겨야 하는 것이다. 고통을 이겨낸다는 것은 어린이가 배워야 할 첫 번째 자연 교육이다. 또한 체력이 증진되면서 그 체력을 조절하는 지식도 발달한다. 자기 생활이 시작됨으로써 아이는 자기에 대한 의식이 생기는 것이다.
아동기는 미래를 위해 준비하는 시기가 아니다. 현재에 불행한 아이가 미래에 행복할지는 보장받을 수 없다. 우리의 능력은 한계가 있다. 그에 반해 욕망은 무한하기에 고통이 오는 것이다. 능력의 확대는 언제나 욕망의 확대를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에 참된 행복의 조건은 욕망을 줄이는 일이다. 인간의 끝없는 욕망은 상상력에서 비롯된다. 본래 있는 대로 만족할 때는 매우 강하나 인간 이상의 것을 욕심낼 때는 매우 약하다.
유아동기의 짧은 기간 동안 자유롭게 해야 한다. 어린이를 가장 불행하게 하는 것은 무엇이든 마련해 주는 것이다. 지나치게 엄격하여 복종의 경험을 주지 말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지나치게 관대해서는 안되며 필요한 만큼의 도움만을 주어야 한다.
인간에게 가장 늦게 발달하는 이성의 능력은 어린이에게 기대해서는 안된다. 어린이는 어른이 아니고 어린이 기를 바라는 것이 자연이므로 넓은 의미에서 유아기의 이기심은 자연적인 것이다. 그러니 어린이에게 도덕심은 경험으로 가르쳐야 한다.
12세 전까지는 아무것도 배우지 않아야 한다. 육체적 성장에 주력하고 감각 훈련에 힘써야 한다. 아이의 판단력이 생기기 전까지의 감정은 거의 외부의 자극에 좌우되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세히 관찰하여 타고난 재능이 무엇인지 먼저 알아야 한다. 이러한 것을 관찰하고 지원하는 교사는 먼저 그 자신이 인간으로 형성되어 있어야 한다. 교사의 권위는 미덕에서 비롯되어야 하며, 도시보다 농촌이 그 권위를 지킬 수 있다. 단순하고 신중하게 좋은 교육의 기회를 기다려야 한다. 그리고 그 기회가 관찰되었을 때, 경험으로 가르쳐야 한다. 직접 경험한 것은 잊어버리지 않기 때문이다. 자기의 행동 결과가 무엇인지를 직접 경험할 때, 인간관계나 인간의 행동의 도덕성에 대해 바르게 인지할 수 있다. 아동의 비도덕적인 행동은 비자연적인 환경에서 비롯된다. 자연에 따르는 교육은 거짓말이 필요 없다. 거짓말을 하게 되면 인생의 불행이 시작된다. 따라서 적절한 시기를 기다려 아이가 납득할 수 있는 일에 대해서만 약속을 해야 한다. 성급하게 약속을 강요하면 결국 거짓말을 하게 된다. 어린이에게 가장 적합한 하나의 도덕은 남을 해치지 않는 소극적인 덕이다.
어린이의 대부분의 지식은 모두 감각에서 끝나고 관념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어른들은 아이들의 일생을 통해 쓸모 있는 지식의 창고를 들어주는 것이 중요하다. 읽기를 가르치는 방법은 많지만 배우고 싶은 욕망을 일으키게 하는 것이 효과적이고, 우화의 숨은 뜻은 단순하지 않기 때문에 나쁜 쪽으로 인도할 우려가 있다. 따라서 지식의 창고를 여는 일은 신체 및 감각 훈련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신체와 정신은 동시에 사용되기 때문에 아이의 신체 단련은 그를 현명하고 이성적으로 자라게 하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최초의 이성은 감각적 이성이다. 생각하는 것을 배우기 위해서는 지성의 도구인 손, 발이나 감각기관을 훈련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이때 교사는 명령하고 복종하는 관계가 아니라 학생에게 자유를 주어야 한다. 이것은 때론 구속 이상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음과 같이 아동기의 자연 교육, 즉 신체 및 감각훈련 방법을 안내한다.
1. 건강의 중요성
①의복에 관한 것으로 우선 몸에 꽉 끼여서는 안 된다.
→어린이의 옷은 손발을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고 아무데서나 뛰어노는 데 전혀 지장이 없어야 한다.
②투텁게 옷을 입는 것보다 얇은 옷을 입는 것이 좋다.
③더위보다 추위에 더 강해져야 한다.
④목이 마를 때는 물을 데우지 말고 주어야 하는데 그전에 구분해야 할 것은 수질이다.
⑤어린이는 뛰어 놀기 때문에 긴 수면이 필요하다.
2. 감각 훈련 방법
-감각은 우리의 기본적인 능력이며 어린 시절에 완성해야 할 능력이라 다른 능력에 앞서 최초로 계발하고 훈련해야 한다.
3. 촉각
①잠들기 전까지 쉬지 않고 활동하는 감각으로서 우리의 몸 전체의 표면에서 우리 몸에 이상이 생길 때 이를 즉각 경고하는 감시의 역할을 한다.
②그 계발에 따라 상당한 정도의 시각적 지식을 얻을 수 있다.
③시각의 도움 없이 순전히 촉각으로 감지할 수 있는 밤에 장난을 하게 하라. 왜냐하면, 밤의 놀이는 어둠과 밝음의 차이를 서서히 없애주어, 공포심을 사라지게 해 준다.
④촉각의 판단은 다른 어떤 판단보다 불완전하고 조잡하다.
촉각을 사용할 때 시각과 함께 사용하고 대상 포착에 있어서 시각이 앞선다.
⑤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 수 없기 때문에 사람은 항상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신발에 의존하는 아이와 맨발에도 자유롭게 뛰어놀 수 있는 아이의 차이.
4. 시각
①시각은 우리의 모든 감각 중에 가장 오류가 많은 감각이다. 거리를 눈짐작으로 측정하는 일은 쉽게 되는 일이 아니다.
②어린이란 위대한 모방자이며 무엇이든 그림 그리기의 대상으로 본다. 눈을 정확히 하고, 손을 유연하게 하기 위해서다.
③어린이의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정확하고 균등한 선을 바르게 그려 정확성을 감상하는 일이다.
5. 청각
①청각에 자극을 주는 것은 공기의 진동에 의한 것뿐이다.
②사람은 세 가지 종류의 소리가 있는데, 말하는 소리와 음절이 있는 소리 그다음은 노래하는 소리와 곡조가 있는 소리, 또 감동적인 소리와 강조된 소리가 있다.
→어른은 이 세 소리를 섞어 낼 수 있으나 어린이의 언어에는 억양이 없다.
③어린이들은 아직 감정의 기복이 없기 때문에 단순한 말투로 이야기한다.
→간단명료하게 말하는 버릇과 음절이나 발음을 정확하게 해서 남이 잘 알아듣게 하는 습관을 지녀야 한다.
④노래할 때도 기교를 부리지 않고 박자와 하모니에 민감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어린이에게는 단순한 가 사가 좋다.
6. 미각
①적당한 음식을 고르기 위한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은 우리의 미각에 의존하는 방법이다.
→본래 인간에게 자기의 식욕보다 더 확실한 의사는 없다고 한다.
②어린이의 최초의 미각, 즉 단순하고 보편적인 미각을 오래 간직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렇지 않을 경우 좋은 음식과 먹기 싫은 음식이 구분되고 점점 더 까다로워지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이런 식의 생활이 자연과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까닭에 어린이의 식생활은 단순해야 한다.
③여러 감각 중에 미각은 강한 자극을 준다.
④어린이를 육식 동물로 만들지 말아야 한다.
→육식하는 사람의 성격은 채식하는 사람보다 잔인하고 흉포하기 때문이다.
7. 후각
①미각과 후각의 관계는 촉각에 대한 시각과의 관계와 같다.
→즉, 촉각 전에 시각이 앞서 알듯이 미각에 앞서 후각이 먼저 안다.
②후각으로 그 물질을 요구하거나 거부한다.
→후각은 신경과 뇌를 강하게 흥분시킨다.
③어린이의 대부분은 후각이 둔한 편이고 거의 마비상태라고 볼 수 있다.
8. 제6감
①제6감은 순전히 내적인 것으로 지각 또는 관념에 속한다.
②인간의 이성이란 여러 관념을 상호 비교하는 기술이다.
③지금까지 살펴본 감각의 세계를 통과한 다음에 오는 이성의 세계에 첫발을 내딛는 관문이 된다.
이러한 교육을 받은 12세가 된 에밀은 행복하다.
에밀은 결코 공식에 따르지 않고 권위에 대해서도 선례에도 굴하지 않는다. 그리고 자신에게 어울리는 행동과 말만 한다. 에밀에게 기대해야 할 것은 그럴듯한 꾸며진 언행이 아니라 언제나 그의 관념의 충실한 표현과 자연에서 나온 행동이다. 에밀의 눈에는 모든 인간은 평등하다. 그의 표현은 단순하고 간결하다. 그의 목소리나 눈치나 태도는 승낙을 받든, 거절을 당하든 어느 편이든 같다는 것처럼 보인다. 에밀은 노는 것과 일하는 것을 구별하지 않는다. 에밀은 이제 아동기의 성숙기에 도달한다. 에밀은 그의 나이에 알맞은 이성의 모든 것은 얻는 동시에 그는 그 체질이 허락하는 한 행복하고 자유로웠다.
루소 에밀 ‘아동기’ commentary
루소의 에밀 아동기 즉, 6세부터 12세까지의 시기로서 소극적인 교육의 특색이 가장 잘 나타나 있다. 이 기간은 루소가 말하는 「인간도 아니고 동물도 아닌 그야말로 어린아이」의 시기로서 전형적인 어린아이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루소는 이 시기에 감각기관의 훈련에 주력하여, 끊임없이 신체를 단련시켜 주의성 있게 감각을 교육시켜야 한다고 했다. 즉, 경험을 통해 기본적인 개념을 어린이가 전달받도록 놓아두고 어린이들이 잘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책들을 되도록 멀리하도록 한다. 만약 필요하다면 교사는 사실에 의해서 교훈을 가르치며 환경을 조성할 뿐이다. 또한 아이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자 아이의 자유로운 성장배경을 제시하였다. 아이의 성장을 위하여 아이가 뛰어다니려고 할 때에 이를 제지하여서는 안되며, 아이가 가만히 있으려고 할 때 이를 권장하여서도 안 된다고 하였고, 아이들이 뛰고 싶어 할 때는 뛰게 하고 소리 지르게 하고 싶으면 지르게 하는 것이 좋다고 하였다.
루소의 이런 본성에 따르는 자연 교육은 지금 여기, 위기에 빠져 있는 우리의 교육에 비춰봐야 한다. 루소가 말하고 있는 모든 교육 방법과 반대가 아닌 것이 없다.
첫째, 자기의식이 생기지 않도록 방해한다. 미리 챙겨주고 미리 예상하여 성장의 고통을 막아준다.
둘째, 선행학습은 이제 당연한 과정이 되었다. 초등학교를 가기 위해 유아기 때, 한글을 깨치고 중학교를 가기 위해 영어, 수학학원은 필수 과정이며 초등학생의 학원 교육과정은 이미 중학교 교과서를 넘어선다.
셋째, 도덕성의 본보기를 찾기 어렵고 경험이 아닌 말로 가르치려 한다. 과연 도덕을 책으로 언어로 가르칠 수 있다는 말인가? 몇 년 전에 내게 일어난 일을 예로 들어보자. 어느 날 초등학교 2학년인 첫째 아이의 담임교사에게 전화를 받았다. 점심을 먹지 않으려고 하는데 먹이지 않아도 되겠냐는 내용이었다. 그 짧은 통화 내용으로 ‘아! 학교에 옳고 그름을 가르치는 교사는 없구나!’ 하는 생각이 스쳤지만 다시 초등학교 2학년 담임교사의 마음이 이해가 되었다. 왜냐하면 얼마 전 점심 식사를 억지로 먹여서 학교폭력으로 고소를 당한 초등교사의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도덕교육을 할 수 없도록 이 사회가 조장하고 있으며 초등학교는 교사가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공무원이 가르치도록 하고 있다.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모두가 그렇게 되어 가고 있는 형상이다.
넷째. 몸의 기억, 즉 체험교육은 보여주기 식이다.
숲 놀이를 하는 유아들이 있다. 넘어져서 얼굴에 상처가 났다고 가정해 보자. 교사는 불안하고 두렵기까지 하다. 이 아이의 상처 때문일까? 아니다. 어떤 상황에서든지 유아의 사고의 책임은 교사에게 묻는다. 작은 상처라도 성형외과 진료를 받지 않으면 유아의 부모는 무섭게 항의할 수도 있다. 게다가 혼자 넘어진 것이 아니고 친구랑 놀이를 하다가 친구가 밀어서 넘어졌다면 그 상처를 나게 한 상대 유아를 가해자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요즘의 교육환경이다. 이러니 어떤 교사가 유아들에게 자유로운 체험 상황을 지원하겠는가? 환경만 그러한가? 요즘의 교사들은 자유롭게 뛰어놀았던 경험이 부족하기 때문에 맘껏 놀이를 계획할 줄도 모른다. 유아교육기관이 이렇다면 초등학교는 어떠할까? 인생의 가장 중요한 배움의 시기가 무너지고 있으니 앞으로의 미래사회도 매우 불안하다.
물론 교육과정은 매우 이상적이라 루소가 살아 돌아온다면 이 한국사회의 유아동 교육과정에 박수를 보낼 것이다. 하지만 현직 교사로서 묻고 싶다. 교육과정과 교실의 상황이 같은 방향을 바라보고 흘러가고 있는가?
유아동은 유능하다. 바르게 가르칠 수 없다면 최소한 방해하는 교육을 하지는 말자. 지원자가 될 수 없다면 그저 바라보고 기다리는 것이라도 해보자. 2021년을 살아가는 우리의 교육이 260년 전의 교육철학과 무엇이 다른가? 부모, 교사, 사회구조가 변하지 않는다면 우리 교육 사회의 미래는 매우 어둡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