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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냠냐미 Nov 04. 2023

01. 그래, 한 번 가보는 거야.

후회 없는 길을 선택하기

취업이 어렵다고 하는 코로나 시기에 운이 좋게 원하던 회사에 입사했다. 명함에 찍혀 있는 회사 이름을 보며 만족했고, 친구들과 명함을 교환할 때도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었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최소한 이 회사를 직급이 바뀔 때까지는 다녀야겠다는 생각이 있었다. 직무도 내가 하고 싶어 했던 것이기도 했고, 결과물이 명확한 일이라 일을 하면서 성취감으로 뿌듯한 적도 많았다.


직무와 업계가 워라밸이 보장되진 않는다는 것을 당연히 알고 입사를 했으나, 회사를 다니며 나는 돈보다도 워라밸이 중요한 사람임을 깨달았다. 한편으로는 이것저것 잘해야 하는 올라운더 직무도 좋지만, 보다 전문적인 기술을 갖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궁극적 이유는 오랜 시간 마음에 품고 살던 꿈이 되살아났기 때문이었다. 바로 조종사!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조종사들을 접할 수 있었고, 출퇴근일에도 매일 마주했다. 그럴 때마다 다는 조종사를 조용히 꿈꾸던 나를 떠올리며 그들을 동경해 왔다. 어디 비행을 다녀왔을까? 지금은 어느 공항으로 출근하는 것일까? 오늘 날씨가 좋으니 칵핏이 예쁘겠지? 비바람이 치는데 비행 힘드셨겠다! 매일 같이 혼자 궁금해하고 상상하며 더 갈망했던 것 같다.


아무튼! 하던 일이 좋았지만 나의 평생 커리어로 삼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견고해졌고. 경력을 조금 더 쌓고 나갈까 고민을 하다가 하루라도 어릴 때 내가 원하는 것을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실패를 해도 늦지 않았을 때이니까.


그렇게 항공유학을 찾아보았다. 코로나 때문에 최근 몇 년간은 조종사 채용에 관한 부정적 의견이 다수였다. 그럼에도 나는 항공시장이 괜찮아질 일만 남았으므로 흐린 눈을 해보기로 했다. 혼자 찾아보고 고민하며, 2022년 하반기를 마무리했다. 이때 살짝 가족한테 파일럿이 되고 싶다고 흘렸는데, 아무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같진 않았다. 하긴, 나라도 갑자기 그러면 엥? 스럽긴 것 같다.


하지만 난 누구보다 진심이었다. 내 계획을 brief파일로 정리하여 가족에게 어필하였고, 엄마아빠는 진지한 나의 생각을 받아들였다.


이 과정에서 내가 결정하고 어떤 루트로 꿈을 이룰 것인지를 계획하기 위해 현실적인 여건을 따져보게 되었다. 내가 항공유학을 쉽게 테야!라고 정하지 못했던 가지 요소가 있었다.


① 신체검사(정확히는 눈 건강)

②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비용



① 신체검사(정확히는 눈 건강)


화이트카드 (국내 항공 신체검사 합격증) 및 FAA 1급(미국 항공 신체검사 합격증)을 발급받아야 했다.

거금 들인 유학이 무의미해지지 않을 최소한의 요건이었기 때문이다.


난 청담에 있는 지정 병원에 가서, 국내/미국 항공 신체검사를 받기로 했다. 비용은 초검에 국내/미국 동시 진행이라서 28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결과부터 말을 하자면, 화이트카드와 FAA 1급을 발급받았다.

그럼에도 마냥 기쁘지는 않았다. 고도근시라서 별도로 안과에서 정밀 검진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특별한 이상은 없었고, 지속적인 관리 및 검진이 필요하다는 소견 정도만 있어 나는 신검 합격증을 손에 쥘 수 있었다. 당장 이상은 없다고 하더라도 지속적인 관리가 필요하다는 말은 곧 언제라도 눈 건강이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이었고, (물론 내가 눈 관리잘해야겠지만 운이 좋지 않다면) 그 시점이 항공유학을 마친 시점일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길바닥에.. 아니 하늘에다가 돈을 뿌리는 것이나 다름없다.


더하여, 또 다른 고민이 일단 국내 FSC(대한항공, 아시아나항공)에는 내부 신체검사를 진행하기 때문에 나 같은 상황은 사실상 입사가 어렵다는 것이었다. 화이트카드로 가능한 것은 진에어를 제외한 LCC인데.. 당장 LCC는 지원자는 넘쳐나고, 입구는 작으니.. 힘든 취업길이 될 것이 뻔했다.


물론, 비행기를 운항할 수 있는 다른 일들도 많을 것이다. 난 그냥 비행기를 몰고 싶은 것이니 다른 곳으로도 알아볼 수 있겠지만  얕은 정보로는 보통은 경력자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경력직 신입을 원하는 뭐 그런 거 아닐까.. ㅎ


해외로 눈을 돌려보자면 당장 미국 항공 취업시장이 좋다고 하지만  미국에서는 영주권 등을 지녀야 취업이 쉬워질 텐데.. 뭐 그런 난관이 또 있는 것이다.


왜 쉬운 것은 없을까... 신검만 걸리는 것 없이 완벽했다면, 투자해 보자! 결심하고 떠났을 것이다. 이 고민은 사실 아직도 내가 결심하지 못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부모님께 손을 벌릴 수밖에 없는 비용


내가 모아둔 돈이 분명 있지만 턱 없이 부족하다. 마냥 아빠엄마에게 마냥 기대기에는 나도 양심이 있는 사람이라.. 쉽게 결정할 문제는 아니었다. 물론 엄마아빠는 지원을 기꺼이 해주겠다는 입장이시지만 그걸 넙죽하고 받기에는 나는 20대 중반을 넘긴 자식이었으며, 거기에 동생은 아직 학생이라 돈이 나갈 일 밖에 없었다.


분명 내가 사회에서 나름 평이 좋은 회사를 다니는 동안 엄마아빠의 마음도 한결 편안했을 텐데, 미안한 마음이 컸다. 이 길로 들어섰을 때, 내가 잘 될 것이라는 확신이 아직 없는 상태여서 더욱 그랬던 것 같다. 확신이 있었더라면 조금은 가벼운 마음으로 지원을 받았겠지만, 리스크가 있는 길에 투자하라고 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인 것은 분명했다. 


3월 말까지 결정하기로 한 나의 결정은 5월이 되도록 결정되지 못했다.


그러던 중, 엄마아빠가 아래와 같이 말씀해 주셨다.

"너가 30대가 되고 40대가 되어서도 생각날 거라면 지금 도전해 보는 것이 맞다.

그래야 다시 돌아와도 늦지 않고, 나중에 후회되지 않기 때문이다"


내 결정에 결정적인 작용을 한 말씀이었다. 그래서 지금이 기회야! 그렇게 나는 수개월을 걸친 고민 끝에 유학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결정할 때마다 많은 요소를 고려하는 나인데,

이번 결정은 눈 딱 감고 낙하! 하는 기분으로 진행했다.

그래 가보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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