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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Quat Dec 18. 2024

빠름이 선호되는 세상, '기다림'은 귀해졌다

기다려주는 사람이 드물어지는 세상


사회가 예전에 비해 '각박해졌다'고들 한다. 개인적으로는 사람들의 인내심이 많이 줄어든 것 같다. 운전을 할 때 차선을 변경하려면 어떻게 해서든 비집고 들어가야만 한다. 깜빡이가 마치 싸우자는 신호인 것 마냥, 무서운 속도로 달려오는 뒤차를 본 적도 많다. 누군가 던진 질문을 듣고 고민을 하는 것조차 시간낭비인 듯 행동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빠른 것은 효율적이고 좋은 것이며, 느린 것은 어리석고 답답한 것이라 여겨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많은 사람들이 빠르고 효율적으로 살기 위해 노력한다. 하지만 나를 포함해 선천적으로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꽤나 많다. 타고난 성향이 느리고 둔하지만 그것이 '뒤처짐'으로 여겨지는 시대를 살고 있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부족한 부분을 키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흥미로운 건 사회가 빠른 것을 선호하면 할수록, 오히려 관계적인 부분에선 '느린 사람'의 인기가 치솟고 있다. 원하는 것이 있다고 해도 재촉하지 않고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 말이다. 그렇다고 해서 마냥 느린 것만을 바라는 것도 아니다. 사람들이 관계에서 바라는 느림이란, 자신이 무언가를 원하거나 바라지 않는 상태일 때 느려지는 '반쪽짜리'라 할 수 있다. 어쨌거나 우리는 대체적으로 빠름이 옳다고 여기는 동시에, 사적인 관계에서는 느림을 추구하는 역설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관계에서 느림을 선호하는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그것은 바로 느린 사람들은 빠른 사람들보다 '마음을 헤아려주는 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빠름을 타고난 사람들은 관계를 맺고 이어나갈 때도 그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는 편이다. 자신의 기준으로 상대의 마음을 읽으려 하고 그것을 기정사실로 만들어버린다. 상대방에 대해 궁금해하기보단 자신이 얻은 정보를 바탕으로 분석하고 그로 인한 결론을 도출해 내는 과정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딱 보면 알지" 관계에서 빠름을 추구하는 이들이 자주 하는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과거에 비슷한 사람을 여러 명 만나봤을지라도, 그들로부터 얻은 정보로 새로운 사람을 모두 파악한다는 건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사람을 잘 본다'라고 자칭하는 사람들이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그들의 능력이 탁월한 것도 사실이지만, 예측이 맞아떨어질수록 점점 더 빠르게 판단을 내리게 되고 그로 인한 부작용 또한 커질 수밖에 없으니까 말이다. 결국 그들의 판단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나도, 그들은 툭 한 마디를 던질 뿐이다. "살다 보면 한 번쯤은 실수할 때도 있지"라고.


 




느린 사람들은 앞서 말한 '마음 읽기'를 함부로 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들은 상대방 그 자체에 온전히 집중한다. 과거에 만난 사람과 겹쳐 보이는 부분이 많더라도, 어디까지나 그러한 정보들은 참고만 할 뿐이다. 누군가를 알아갈 때 다소 시간이 걸리다 보니, 상대방의 입장에선 자신에게 관심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다. 그렇게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누군가와 멀어지는 경우도 다수 발생한다.



하지만 한 번 친해지게 되면 그 관계는 꽤나 오랫동안 이어지게 된다. 친해졌다고 하더라도 느린 사람들은 계속해서 상대에 대해 알아가려고 한다. 그들은 곁에 많은 사람들을 두려고 하지 않는다. 한 사람을 알아가는데도 많은 시간을 쏟다 보니, 친한 사람들을 여럿 두는 것이 그들에겐 에너지 소모가 큰 것이다.



누군가를 알아갈 때와 마찬가지로, 멀어질 때도 이러한 두 부류의 차이는 확연하다. 빠른 사람들은 가까워지는 속도만큼 멀어지는 속도도 빠르다. 다만 감정이 식기도 전에 거리를 두다 보면, 그만큼 멀어졌던 이들과 어떤 계기를 통해 다시 친해지는 경우도 생긴다. 그러나 느린 사람들은 그렇지 않다. 단지 한 순간의 감정으로 누군가와 거리를 두지 않는다. 다만 멀어지기 시작하면 예전처럼 관계를 돌리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 후회가 없을 만큼 나름의 최선을 다했기에 가능한 일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어떠한 사람이라 정의 내리지만, 그러한 정의가 평생 가지 않는다는 걸 알아야 한다. 자신이 바라보는 '나'와 타인이 바라보는 '나'가 다른 경우도 많지 않은가. 자신만 해도 그런데, 누군가에 대해 자신이 쌓은 정보로 '저 사람은 이런 사람이야'라며 빠르게 판단한다는 건 불확실성이 너무나 큰 행동이다.



그 사람의 마음을 읽고 파악하려 드는 것보다 훨씬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마음을 헤아려주는 것이다. 힘들 때 팔을 붙잡고 억지로 일으켜 세우는 것도 중요하지만, 때로는 곁에 앉아 함께 쉬어주는 게 더욱 필요할 때도 있다. 모르면 내 판단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물어보면 된다. 잘못된 방향으로 빠르게 가는 것보다 조금 느리더라도 함께 천천히 걸어가는 게 현재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더욱 필요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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