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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이 Jun 29. 2022

안녕, 나의 사랑하는 고양이 3

3. 무지개다리 위의 나비


똑똑똑. 누군가 창문을 두드렸다.


나비는 귀를 쫑긋하며 천천히 눈을 떴다. 

평소라면 귀찮아서 모른 척 잠이나 계속 잤을 테지만, 오늘은 이상하게 누가 창문을 두드렸는지 궁금했다. 

사람들은 보통 문을 두드리지, 창문을 두드리진 않았다. 도대체 누가 창문을 두드리는 걸까?


나비는 고개를 길게 빼서 창문 쪽을 바라봤다. 

창문으로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벌써 아침인가? 하지만 조금 전에 잠자리에 들었는데. 시간도 모르고 잠에 푹 빠져들었던 걸까? 


하지만 나비는 마음속으로 무언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 

잠자리에 든 건 정말 10분 전이었고, 또 아무리 아침이라도 저렇게 밝은 빛이 창으로 들어온 적은 없었다. 


똑똑똑. 누군가 다시 창문을 두드렸다.


나비는 눈을 가늘게 뜨고 빛 속을 들여다보았다. 

빛 속에서 누군가의 검은 형체가 아른거리고 있었다. 

점점 빛이 옅어지자, 나비는 그제야 창밖에 있는 누군가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있었다. 

세상에 이럴 수가. 창 밖에 있는 건 노란 줄무늬 고양이였다. 

꼭 13년도 더 전에 같이 놀았던 길고양이 친구랑 똑 닮았다.


-나비야. 나비야.


창밖의 고양이가 나비를 불렀다. 나비는 귀를 쫑긋 세운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어떻게 저 고양이가 내 이름을 알고 있지? 혹시 정말 그때의 그 길고양이일까? 

하지만 그 고양이라기엔 시간이 너무 많이 지났다. 나비는 의아해할 수밖에 없었다. 

길고양이는 보통 나비처럼 오래 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너는 누구야?


나비가 노란 고양이에게 물었다. 노란 고양이는 기다렸다는 듯 그 질문에 대답했다.


-못 알아보겠어? 나야 나. 짧은 꼬리. 


노란 고양이는 몸을 돌려 나비에게 엉덩이를 보여줬다. 고양이 말대로 꼬리가 몽당연필처럼 짧았다. 

그 고양이는 정말 나비의 친구 짧은 꼬리가 맞았던 것이다. 

나비는 너무 반가워서 창문으로 뛰어갔다. 물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다. 


-짧은 꼬리야! 네가 여긴 웬일이야? 내가 여기에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 그동안 어떻게 지냈던 거야? 너 정말 건강해 보인다. 우리가 헤어졌던 바로 그 때랑 똑같아. 어떻게 그렇게 건강하니? 


나비의 질문이 끝없이 이어졌다. 하지만 짧은 꼬리는 나비의 말에 대답해주지 않았다. 대신 이해하기 힘든 말만 했다.  


-나비야. 시간이 없어. 나는 여기 너를 데리러 온 거야. 우리 어서 가야 해.


짧은 꼬리가 나비를 재촉했다. 나비는 짧은 고리의 말에 고개를 갸웃했다. 

도대체 어디를 가야한다는 걸까? 나비는 가고 싶은 곳이 없었다. 

나비는 그냥 항상 희나의 곁에 있고 싶었다. 


-어디에 가자고 하는 거야? 난 별로 가고 싶지 않은데.


하지만 나비가 거절해도 짧은 꼬리는 막무가내였다. 


-가기 싫어도 가야 해. 이젠 고양이 나라로 가야할 시간이야. 어서 창문을 열어.


고양이 나라라니? 나비는 이상한 느낌이 들었지만, 일단 나비가 말하는 대로 창문을 열었다. 그

런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창문틀에 눈부신 무지개다리가 이어져 있었다.

 일곱 빛깔로 빛나는 무지개다리는 길고 길어서 도저히 그 끝이 보이지 않았다. 


-놀랐지?


짧은 꼬리가 말했다. 나비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놀라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이건……. 이건 뭐야?


-무지개다리야. 


-무지개다리 너머엔 뭐가 있는데?


-고양이 나라가 있지.


나비는 계속 질문했다. 모르는 것투성이라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짧은 꼬리는 친절하게 나비의 질문에 대답해주었다.


-고양이 나라는 어떤 곳인데?


-아무런 걱정도 없는, 영원히 행복한 곳이야. 착한 고양이들만 갈 수 있지. 나비 너는 평생 다정한 마음으로 다른 고양이와 네 친구 희나를 대했지. 그래서 고양이 나라로 갈 수 있는 거야.


고양이 나라라는 곳이 있다니. 나비는 미처 몰랐던 사실이었다. 

짧은 꼬리의 말을 들어보니 고양이 나라는 아주 좋은 곳 같았다. 

하지만 나비는 아무리 좋은 곳이 나비를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도 떠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가고 싶지 않은 걸. 가고 싶으면 너 혼자 가.


-아니야. 나비. 넌 가야만 해.


하지만 짧은 꼬리는 계속 재촉했다. 그 태도가 너무 단호해서 매정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짧은 꼬리가 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나비. 안타깝지만 이 땅에서 네 시간은 모두 끝나버렸어.


-그게 무슨 말이야?


-뒤를 돌아봐.


나비는 뒤를 돌아봤다. 그렇게 뒤를 돌아본 나비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나비는 분명 여기 창틀에 서 있는데, 희나의 옆에 또 한 마리 나비가 있었다. 


나비는 자기의 앞발을 한 번 내려다보고, 또 고개를 돌려 침대 위의 나비 쪽을 바라보았다.

 그걸 몇 번이고 반복했다. 그러다가 결국 깨달았다. 


아. 나에게 주어진 시간이 모두 끝나버렸구나. 아마도 책장에서 떨어져 머리를 부딪쳤을 때, 그 때 뭔가 잘못됐었나봐. 


나비의 파란 눈에 천천히 눈물이 차올랐다. 그 눈물을 본 짧은 꼬리가 씁쓸한 기색으로 말했다. 


-이제 알겠지? 이젠 가야만 한다는 걸.


-하지만, 하지만…….


나비는 늘 마지막 순간이 오면 자기가 의연할 거라고 생각했다. 

살아오는 동안 모든 것엔 끝이 있다는 것을 수도 없이 배워왔으니까. 

하지만 막상 현실은 생각과는 달랐다. 무지개다리를 앞에 두고 도저히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다.


-안 돼. 나는 갈 수 없어. 희나를 두곤 떠날 수 없어.


-안 돼. 떠나야 해. 


-내가 떠나면 희나는 어떻게 한단 말이야? 부탁이야. 조금만 더 있게 해줘. 새로운 강아지가 올 때까지만, 그때까지만 희나의 곁에 있게 해줘.


-나비! 안 되는 걸 알면서 도대체 왜 이래?


짧은 꼬리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때였다. 갑자기 째깍째깍 커다란 시곗바늘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 건. 

그 소리를 듣자 짧은 꼬리는 다급해져서 억지로라도 나비를 끌고 가려고 했다.


-나비! 시계가 움직이고 있어. 저 바늘 소리가 끝나면 너는 무지개다리 위에 올라갈 기회를 영원히 놓치게 되어버려. 얼른 무지개다리 위로 올라와야 해.


-싫어! 그런 다리 따위 올라가지 않아도 좋아!


나비는 다시 침대 위로 뛰어올라갔다. 그리곤 희나의 팔에 매달렸다. 

나비는 조금만 더 희나의 곁에 있고 싶었다. 

욕심을 내려는 건 아니었다. 단지 새로운 강아지가 올 때까지만, 그 강아지와 희나가 좋은 친구가 될 때까지만, 그 때까지만 조금 더 희나의 옆에 있고 싶었다.


째깍, 재깍. 나비가 희나의 팔을 붙들고 버티는 사이에도 어디에 있는지 모를 시곗바늘 소리는 계속 울려왔다.

 짧은 꼬리는 아주 다급해졌다. 


-계속 버텨도 소용없어. 나는 널 억지로라도 데려갈 거야!     


짧은 꼬리는 나비의 꼬리를 이로 앙 물었다. 그리고 무지개다리 쪽으로 마구 잡아 당기기 시작했다. 

두 눈을 질끈 감고 젖 먹던 힘까지 다했다. 

나비는 희나의 팔을 잡고 있는 힘껏 버텼지만, 결국 나비는 짧은 꼬리에게 끌려 무지개다리 위에 올라가고 말았다.


재깍!


나비가 무지개다리 위에 질질 끌려온 순간, 시곗바늘 소리가 갑자기 조금 전보다 훨씬 더 크게 울렸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창틀에 닿아있던 무지개다리가 하늘 위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댕! 댕! 댕! 


밤하늘에서 커다란 종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나비는 그제야 눈을 뜨고 주위를 살펴보았다. 

무지개다리가 밤하늘 높은 곳으로 한없이 올라가고 있었다. 

그리고 밤하늘 곳곳에 나비가 올라탄 무지개다리와 똑같은 다리들이 떠오르는 게 보였다. 

나비와 같은, 시간이 다 되어버린 착한 고양이들이 타고 있는 무지개 다리였다.


짧은 꼬리는 힘껏 앙 물었던 나비의 꼬리를 놓아주었다.

 짧은 꼬리는 입속의 털을 골라내며 무심코 나비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그 순간, 짧은 꼬리는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나비! 너 그 애를 데리고 오면 어떻게 해!


그 비명에 나비도 곧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깨달았다. 무지개 다리에 희나도 타고 있었다. 

나비는 희나를 붙잡은 채 버티고 버티다가, 결국 희나와 같이 무지개 다리 위에 올라타고 만 것이었다. 


“으으…….”


희나는 금방이라도 깰 것처럼 얼굴을 찌푸리고 신음을 흘리고 있었다. 

나비와 짧은 꼬리는 너무 놀라서 입을 쩍 벌리고 희나를 바라보았다. 

무지개 다리에 올라타자, 희나는 평소와 다르게 아주 작아져 있었다. 

고양이들과 꼭 같은 크기였다. 하지만 지금 그런 건 중요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희나가 나비와 함께 고양이 나라에 가게 생겼단 거였다.


-이걸 어쩌면 좋아? 이걸 어쩌면 좋아?


짧은 꼬리가 초조하게 발을 동동 굴렀다. 나비도 어쩔 줄 몰라 코를 벌렁거렸다. 

희나가 무지개다리에 타 버리다니. 정말 이걸 어쩌면 좋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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