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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이 Jul 23. 2021

기괴하고 이상한 이야기 - 3. MISSING CAT

하얀 털, 파란 눈의 중성화한 5kg짜리 수고양이를 잃어버렸습니다.

<MISSING CAT>




고양이를 잃어버렸다.


우리 가족은 고양이를 찾는 포스터를 만들었다. 문제는, 우리에게 잃어버린 고양이를 찍은 사진이 한 장도 없다는 것이다. 그 고양이는 쥐를 잡기 위해 길고양이 센터에서 입양해 온 것으로, 솔직히 그다지 사진을 찍고 싶어질 마음이 생길만큼 귀여운 생김새는 아니었다. 여섯 살 배기 내 딸은 고양이를 몹시 좋아했지만, 그 애에겐 고양이를 찍을 휴대폰도 카메라도 없었다. 결국 사진이 없는 우리는 글자로만 이루어진 포스터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를 찾습니다.


흰 털, 파란 눈, 분홍 코와 발바닥의 5kg짜리 중성화 된 수고양이.」




솔직히 좀 빈약한 포스터이긴 했지만, 고양이를 찾는 데는 무리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동네에 흰 털을 가진 고양이는 드물었으니까. 아니, 애초에 고양이 자체가 드물었다. 자연에서 영감을 얻는다는 예술가 남편이 지은 우리 집. 산 아래 홀로 외로이 서 있는 이 집에선 고양이는커녕 사람도 보기 힘들었다. 사람이나 고양이보단 차라리 꿩이 많았다. 나는 이곳으로 와서 처음을 꿩이 어떻게 우는지 알게 되었다. 꿩은 꿩꿩 하고 운다. 내 딸은 꾸엉 꾸엉 하고 운다고 말하긴 하는데, 아무튼 대충 그런 느낌으로 우는 것이다. 신기하지 않은가? 꿩이 진짜 꿩하고 운다니.


잡소리가 길었는데, 내가 하고 싶은 말은 고양이는 멀리 가지 않은 이상 금방 찾을 수 있을 거란 것이다. 그 하얀 털의 동물은 어찌되었든 눈에 띄었으니까. 포스터는 그냥 딸의 성화 때문에 만든 것뿐이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냥 집 앞에 고양이 간식 하나 뜯어놓고 고양이가 돌아오길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하지만 고양이는 쉽게 돌아오지 않았다.


딸은 나날이 갈수록 히스테릭해져갔다. 밥 먹다가 숟가락을 던지고 울거나,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려고 하는 날이 많아졌다. 나는 딸이 걱정되어 새 고양이를 입양해 와야 하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딸은 포스터가 너무 대충이라며 붙여놨던 포스터를 몽땅 떼어와 그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귀엽게도, 잃어버린 고양이의 그림을 그리면 사람들이 더 쉽게 찾아줄 수 있을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나는 살그머니 딸의 뒤로 가서 딸이 그린 그림을 구경하려고 했다. 우리 딸이 그림을 얼마나 잘 그리나 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딸이 그린 고양이가 뭔가 이상했다.


고양이가 집채만 했다. 고양이 옆에 그려진 집과 사람은 레고 인형처럼 보일 정도였다. 또 고양이의 두 눈은 무슨 등대처럼 빛이 쫙 뻗어나가 바닥을 비추고 있었고, 입에서는 하얀 안개가 나오고 있었다. 잠깐. 저거 얼음 안개인가? 입김 속에 하늘색 알갱이가 보이고 있는데.


나는 어린아이의 상상력을 부정적으로 보는 그런 부모는 아니다. 오히려 어릴 때는 상상력이 자라도록 아이를 적극적으로 응원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딸의 그림은 조금 부적절하게 느껴지는 구석이 있었다. 왜냐면, 딸이 그리는 그림은 고양이 찾는 포스터의 그림이었으니까. 고양이를 정말 찾고 싶다면, 딸은 그림을 좀 진지하게 그릴 필요가 있었다.


“우리 딸. 포포를 그린 거야? 정말 잘 그렸구나!”


대놓고 고치라 그러면 딸이 상처를 받을까봐 나는 슬그머니 밑밥을 깔기 시작했다.


“엄마도 도와줘. 이거랑 똑같이 그리면 돼.”


딸은 내 칭찬을 들은 척도 하지 않고 아직 그림을 그리지 않은 다른 포스터를 내 쪽으로 밀어 건넸다. 나는 내 쪽으로 온 포스터를 잠깐 빤히 쳐다보다가, 은근슬쩍 그걸 아이 옆으로 쓱 밀어내버렸다.


“물론 엄마가 도와줘야지. 그런데 말이야. 엄마가 생각하기에 이런 고양이 찾는 포스터는……. 좀 진짜와 같이 그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그렇다고 딸 그림이 이상하다는 건 절대 아니고. 좀 고칠 필요가 있지 않을까…하는 거지.”


“그게 무슨 소리야?”


딸이 작은 눈을 찌푸리며 내게 되물었다. 이렇게까지 말했는데도 알아듣지 못하다니. 역시 미취학 아동에게 은근한 권유는 잘 통하지 않은 모양이었다. 나는 조금 더 직접적으로 말할 필요성을 느꼈다.


“그러니까. 진짜 포포처럼 그리라고. 이렇게 커다란 괴물처럼 그리지 말고.”


“난 제대로 그리고 있어.”


딸이 반항적인 목소리로 대꾸했다. 제대로 그리고 있다고? 나는 표정이 구겨질 뻔한 걸 겨우 미소로 바꾸었다. 하지만 억지 미소가 그다지 보기 좋을 수는 없을 터였다. 내 미소를 보는 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민망함에 입술을 요리조리 움직여 다시 표정을 재정비한 뒤 이번에야말로 인자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음. 있잖아. 일단, 포포는 이렇게 크지 않아. 여기선 집보다도, 사람보다도 크게 그려졌잖니?” “아냐. 포포는 이만해.” “그래? 그러니?”


아이들의 고집이란. 나는 속으로 콧방귀를 풍 뀌었다. 어디까지 우기려나 한 번 보려는 마음으로 나는 계속 그림의 틀린 점을 짚어냈다.


“그럼 그렇다고 치고. 아. 이것 봐라. 포포 입에서 뭐가 나오고 있네? 조금 이상하지 않아? 포포는 입에서 안개를 뱉어내지 않아. 얼음도 뱉지 않고.”


“아냐. 포포 입에선 정말 얼음 안개가 나온다고.” “이야. 그것 참 대단한데? 그럼 눈에서 불도 나오겠네?”


“응. 눈이 자동차 불빛처럼 번쩍 번쩍 빛나고. 아. 하나 빼먹었다. 우리 포포는 손톱도 참 길지.” 딸은 내 목소리의 못마땅한 기색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크레파스 상자에서 회색 크레파스를 새로이 집어 들었다. 그리고 그걸 고양이 발바닥사이에 길게 그어놓기 시작했다. 음. 무슨 만화캐릭터도 아니고, 그렇게 길고 두꺼운 손톱을 가진 고양이는 세상에 없을 게 분명했다. 나는 애꿎은 입술만 집게손가락으로 몇 번 두드리다가, 결국 딸을 설득하는 걸 포기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애가 좀 상상력이 지나친 감이 있긴 했다. 그런데 그건 분명 남편 탓일 터였다. 남편이 그림쟁이라고 만날 초현실주의인지 뭔지 알 수 없는 그림만 그리니까 애도 이러는 것이다. 나는 남편에게 애 그림 좀 보라고 하기로 했다. 상상화도 좋지만 상황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아이가 배워야할 것 같았다. 나는 조금 쿵쾅거리는 발소리를 내며 남편의 작업실로 갔다.




나는 남편에게 오늘 딸과 있었던 일을 털어놓았다. 하지만 이야기가 끝난 뒤, 남편이 내게 보인 반응은 내 예상과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그거 알아? 사실 나도 우리 집 포포가 내 생각보다 좀 많이 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


“뭐라고?”


“그게 있잖아. 우리 그 고양이 제대로 본 적이 없지 않아? 지금 생각해보면, 난 항상 포포의 흔적만을 보고 듣고 있었던 것 같아.”


“자기 지금 잠꼬대하니? 아니면 내가 자고 있는 건가?”


나는 남편의 머리를 한 대 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진짜 치면 삐질 테니 실행하지는 않았다.


“고양이가 커봤자 고양이지! 집채만한 고양이가 어디 있어? 그리고 사실 집채만한 고양이는 그렇게 큰 문제가 아니라고. 원래 그 또래 애들은 실제 비율 같은 거 신경 안 쓰고 다 자기가 멋대로 그리니까. 문제는 고양이 입에서 나오는 얼음 안개랑 강철 손톱이야! 얘가 환상이랑 현실을 구분하지 못하는 거면 어떡해?” “그게 또 생각해보면 어쩐지 가능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남자 진심인가? 이 집에서 정상인 사람은 나밖에 없는 거야? 나는 머릿속이 멍해지는 기분을 느꼈다. 내가 내 짜증의 표현으로 눈알을 위로 굴려 눈을 흰 자로 채우자, 남편이 내게 진정하라는 몸짓을 취하며 나를 작업실 한 구석으로 끌고 갔다.


“이것 보라고. 여기 발톱 자국을.”


남편이 내게 보여준 것은 작업실의 책장 옆면에 난 발톱자국이었다. 고급 원목가구에 깊게 패인 발톱자국을 보니 순간 머리가 아찔해졌지만, 나는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다. 물건을 영원할 수 없는 거다, 그것이 내 지론이었다. 세월이 지나면 결국 스러질 물건에 조금 일찍 흠이 생겼을 뿐이었다.


“그래. 확인했어. 포포가 만들어놓은 손톱자국이네. 난 전혀 몰랐어.”


“이상한 걸 모르겠어?”


남편은 의아한 듯한 목소리로 내게 질문했다. 그의 목소리가 심상치 않았기에 나는 두말 않고 다시 책장을 살펴보았다. 고급 목에 난 스트레치는 꼭 내 마음에 난 스트레치처럼 느껴져 계속 보기 힘든 것도 있었지만 그래도 꾹 참고 유심히 살펴보았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나는 남편이 무엇이 이상하다고 말하는지 깨닫고 말았다.


이 손톱자국, 고양이가 낸 것치고는 너무 깊은 거 아닌가?


나는 조심스레 나무에 난 손톱자국에 내 새끼손톱을 넣어보았다. 손톱이 적어도 0.5mm는 넘게 들어갔다. 움푹 들어간 상처! 집고양이 발톱이 가구에 이렇게 깊이 상처를 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우리 집 고양이가 아니라 다른 짐승이 집에 들어와 가구를 할퀸 것은 아닐까? 뭐 너구리라던가, 족제비 같은 것들 말이다. 근처에서 그런 걸 본 적은 없지만, 아무튼 그런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난 항상 머리 위에서 고양이가 우는 소리를 들었었거든. 지금까지는 고양이가 책장 위에 올라가서 울고 있는구나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었어. 그런데 이것보라고. 우리 책장 높이는 180cm를 훨씬 넘는다고. 그리고 우리 책장 옆에는 발받침이 될 만한 게 하나도 없고. 고양이가 높이 뛴다지만 어떤 게 이만한 높이를 한 번에 뛰어 책장에 올라가겠어?”


나는 미간에 힘을 빡 준채 책장의 높이를 가늠해보았다. 내 남편이 더도 덜도 아닌 딱 180이었는데, 책장은 그런 남편보다 손바닥 하나 만큼은 더 컸다. 남편 말대로, 고양이가 아무리 높이 뛴다지만 이 정도 높이를 발판도 딛지 않고 한 번에 올라오는 건 무리일 것 같았다. 게다가 포포는 길고양이 센터에서 입양해 올 때부터 관계자가 너덧 살은 넘었을 것, 이라고 말했었던 중년 고양이였다. 젊은 두 살 고양이라면 혹시 또 몰라도, 너덧 살도 넘은, 어쩌면 지금 예닐곱 살일지도 모르는 고양이가 이 높이를 뛰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남편은 항상 머리 위에서 포포의 울음을 들었다고 했다. 남편이 거짓말을 치는 걸까? 아니, 그런 걸로 거짓말을 칠 이유가 어디 있단 말인가. 순간 내 머릿속에 남편이 처음 했던 말이 떠올랐다. 어쩌면 포포가 우리 생각보다 좀 많이 클지도 모른다는 말. 포포가 보통 고양이보다 많이 크다면(그러니까 대충 집채만 하다면) 포포의 소리를 항상 위에서 들었다는 게 말이 되었다.


“포포가 어떻게 생겼었지?” 나는 그제야 나 스스로에게 질문했다. 우리 집 고양이, 포포가 어떻게 생겼었지? 제대로 기억이 나지 않았다. 흰 털, 파란 눈, 뾰족 귀를 가졌다는 것 밖에. 전단지에 적은 5kg도 입양해올 때 관계자가 해주었던 말로, 그 이후로 단 한 번도 포포를 저울에 올려 그 무게를 확인한 적이 없었다.


“내 말이 그거야. 포포가 어떻게 생겼었냐 이거야.”


“이상해. 기억이 안나.”


“나도 기억이 안나. 늘 걔가 집을 돌아다니는 기척을 느꼈었던 것만 기억나.”


우리의 대화는 바보 콘셉트 개그맨들의 콩트 같았다. 기억이 안나, 기억이 안나. 근데 정말 기억이 안 나는 걸 어쩌란 말인가. 포포가 어떻게 생겼는지 아무리 해도 떠오르지가 않았다. 이것에 대해 생각하기 전까진 난 분명 내가 포포의 생김새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는데, 그건 착각이었던 것 같았다.


포포는 일반적인 고양이 크기였나? 아니, 그것보다 더 컸던 것 같기도 했다. 송아지만한 크기였던 것 같기도? 포포의 숨결에선 정말 얼음 안개가 나오지 않았었나? 글쎄? 가끔 잠을 자고 있는 내 얼굴을 킁킁대던 그 숨결이 좀 지나치게 차가웠었던 것 같기도? 나는 그 어떤 것도 확신할 수 없어졌다. 우리 부부는 떨리는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보았다. 이렇게 서로의 눈을 바라보는 것이 로맨틱한 감정 때문이 아니라 공포와 혼란의 감정 속에서라는 게 약간 아쉬웠다.


“있잖아. 우린 정말 고양이를 기르고 있었던 걸까?”


“어쩌면 포포 찾는 전단지는 떼버리는 게 낫겠어.”


“그래. 그러자. 포포는 돌아오지 않는 편이 행복할지도 몰라. 뭣보다 자기 발로 나간 거니까 말이야.”


우리들은 포포가 집으로 돌아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논의를 했다. 포포가 무엇인지 더는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런 논의를 하기 전에 조금 더 신중할 필요가 있었다. 그러니까, 주변에 우리 얘기를 듣는 어린애가 있는지 없는지 먼저 확인할 필요가 있었다는 말이다.


“엄마, 아빠. 도대체 지금 무슨 말을 하고 있는 거야?” 한창 포스터를 떼버리고 고양이를 찾지 말자는 얘기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문 쪽에서 딸의 목소리가 들렸다. 우리는 깜짝 놀라 어깨를 흠칫 떨며 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리 딸! 거기 있었니? 엄마가 과자 구워줄까?”


당황해서 나는 어떻게든 상황을 무마시키려고 했다. 일부러 높고 요란스런 목소리를 내며 딸의 정신을 빼놓으려고 했지만, 나이에 비해 영리한 내 딸에게 그런 얕은 수는 통하지 않았다.


“포스터를 뗄 거라고? 포포를 찾지도 않을 거고?”


“음. 어. 네가 잘못 들은 거야. 음. 우리는 그런 말을 한 적이 없단다. 아. 정말이야.”


음. 어. 아. 오. 딸의 따지는 소리를 들은 남편이 이상한 소리들을 계속해서 내며 거짓말을 했다. 정말 티 나는 거짓말이었다. 분명 3 살배기 아기도 남편이 지금 거짓말을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을 터였다. 남편의 거짓말을 들은 딸의 얼굴이 시뻘게졌다. 우리가 자신을 속이려고 한다는 것을 확신한 모양이었다.


“포포를 버리려고 한다니! 엄마 아빠 너무해!”


“아니야! 아니라니까!”


딸은 더는 우리의 변명을 듣지 않고 저 멀리로 뛰어가 버렸다. 우리는 멍하니 딸의 뒷모습을 쳐다보았다. 우리가 바로 뒤쫓아 가지 않은 이유는 지금 쫓아가봤자 아이에게 그럴 듯한 변명을 할 수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었고, 또 딸이 어차피 저녁 시간엔 집에 돌아올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는 그냥 딸에게 조금 시간을 주기로 했다. 아이의 시간은 빠르다. 딸은 금방 포포에 대해서 잊어버릴 것이었다. 만약 잊어버리지 않는다면 그냥 복슬복슬한 새끼 고양이를 펫샵에서 하나 사주면 될 것 같았다.




딸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틀렸다. 딸은 우리가 포포를 버렸다고 굳게 믿고 우리에게 반항을 하기 시작했다. 내 딸은 정말 영리한 아이였기 때문에, 부모님들에게 말대꾸를 한다거나 장난감을 어지럽히는 귀찮고 짜증나지만 사소한 방식의 반항은 하지 않았다. 그 애는 우리에게 가장 효과적인 반항의 방법을 선택했다. 바로 밥을 먹지 않는 것이었다.


“엄마 정말 화낸다. 하나, 둘…….”


나는 손을 허리에 얹은 채 아이를 향해 위협적으로 손가락을 펴기 시작했다. 그러니까, 이건 이런 방식의 훈계다. 부모가 하나, 둘, 셋을 셀 때까지 아이가 부모가 원하는 것을 하지 않는 다면, 아이에게 그에 합당한 벌을 주는 방식의 훈계. 하지만 딸은 눈앞에서 세 개째의 손가락이 펴지는 데도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나는 짧은 비명을 지르고는 아이의 어깨를 잡아 아이를 생각 의자에 앉혔다. 나는 돌아버리기 직전이었다. 애가 밥을 먹질 않았다. 아이 아버지랑 내가 혼도 내보고, 달래도 보고, 애원 해봐도 소용이 없었다. 벌써 이틀 째였다. 애가 물밖에 먹지 않는데 이러다가 큰 일 날까봐 겁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아이에게 밥을 먹일 수 있는 방법은 딱 하나 뿐인 것 같았다. 잃어버린 고양이 포포를 찾아오는 것. 그래서 오늘 새벽부터 남편과 내가 번갈아 가며 온 동네와 그리고 집 뒤의 산까지 싹싹 뒤져보고 있는데도, 그 어디에서도 포포의 털 한 가닥 찾아볼 수가 없었다.




“포포 찾았어?” “아니. 못 찾았어. 그것도 그런데, 창고에 다시 쥐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 같더라.”


“뭐? 포포 없어진지 이제 겨우 이주 정도 지났을 뿐이잖아. 벌써 다시 쥐가 나온다고?”


“그러게 말이야. 포포가 있을 땐 쥐 같은 거 찾아볼 수도 없었는데.”


늦은 밤,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밖에서 세 시간이나 포포를 찾다가 들어온 남편을 맞이했다. 포포를 찾지 못한 것도 문제였지만, 창고에서 쥐가 다시 나오기 시작한 것도 문제였다.


쥐! 그 징그럽고 조그만, 찍찍대는 회색 짐승들!


그것들은 창고 안의 물건들을 모조리 갉아먹고 있었다. 부모님이 보내주신 포대에 담긴 감자도, 내가 수리 맡기기 전에 잠깐 들여놓은 자전거의 안장도, 이제는 안 쓰지만 추억이 담긴 라디오의 전선도 그 놈들이 다 갉아먹었다! 포포가 있는 동안에는 깨끗하게 사라졌던 놈들인데, 포포가 사라지자마자 무슨 재주로 알고 바로 다시 돌아왔는지 모를 일이었다.


“포포. 우리가 포포의 소중함을 너무 간과하고 있었던 것 같아.” 나는 조금 기가 죽은 채로 입을 열었다. 그래. 확실히 포포는 좀 수상한 구석이 있는 고양이였다. 하지만 우리 집에 있는 동안 우리에게 해를 끼친 것도 아니고, 자기 할 일을 묵묵히, 열심히 하던 고양이였다. 딸 걱정도 되고, 쥐 문제도 걱정되기도 하고, 여러 복합적인 이유로 나는 포포의 소중함을 뒤늦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 좀 이상한 고양이면 어때. 우리 딸이 좋아하잖아.”


“자기야. 우리 내일은 인터넷에 고양이 찾기 전문가라도 찾아보는 게 어때? 돈이 좀 들더라도 말이야. 아니면 일요일에 하는 동물 TV쇼에 전화 걸어 봐도 되고. 찾는 걸 도와주겠지.”


“그래. 우리 그렇게 하자.”


우리 부부는 두 손을 맞잡은 채 감성에 젖어 맹세했다. 포포가 돌아오지 않았으면 했던 마음은 이미 멀리 멀리로 사라져버린지 오래였다. 포포가 돌아와야 딸도 밥을 먹을 거고, 창고에 쥐도 없어질 거고, 우리도 몇 시간 동안이나 산을 헤매지 않아도 됐다. 우리 부부는 고양이를 찾느라 고생한 서로를 짧게 격려한 뒤, 내일은 꼭 포포가 돌아오기를 기도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미우.


나는 희미한 고양이 울음소리를 들었다. 자고 있던 중임에도, 나는 눈을 번쩍 뜰 수밖에 없었다. 주변은 어둠에 둘러싸여 있었다. 두꺼운 커튼 사이로 파란 달빛이 비쳐 들어오긴 했지만, 그건 주변을 불확실하게 비출 뿐인 빛이었다. 이 어둠과 고요 속에서 나는 내가 나의 생각에 의문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내가 제대로 들은 것이 맞나? 포포를 찾기를 너무 바라고 있어서, 환청을 들은 것은 아닐까?


-미우.


하지만 내가 들은 것이 환청인가 아닌가를 고민하는 사이, 포포가 다시 한 번 울었다. 내가 들은 것은 환청이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조심스레 자고 있는 남편을 흔들었다.


“여보. 여보.”


하지만 남편은 잠에서 좀처럼 깨어나질 않았다. 끙끙거리는 신음만 계속해서 낼 뿐이었다. 아무래도 많이 피곤한 모양이었다.


-미우.


포포가 또 다시 울었다. 그리고 그 소리는 방금 전보다 확실하게 작아져 있었다. 나는 덜컥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내가 이렇게 머뭇거리는 사이, 포포가 다른 곳으로 가버리면 어떡하지? 그렇게 되면 다시 오늘과도 같은 내일이 계속 반복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자식은 밥을 안 먹겠다고 반항할 거고, 쥐들은 계속해서 창고의 물건들을 뜯어먹을 거고, 우리 부부는 밤낮없이 포포를 찾으러 돌아다녀야 할 터였다. 그런 것은 정말 사양이었다. 만약 저것이 포포라면, 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저 고양이를 반드시 잡아야만 했다.


“자기야. 자고 있어. 나 잠깐 나갔다 올게.”


나는 자고 있는 남편의 귓가에 속삭인 뒤, 얼른 의자에 걸려있던 카디건을 들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부디 포포가 그 사이 멀리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포포의 모습이 보이지는 않았다. 들리는 것은 풀이 스치는 바스락 거리는 소리뿐이었다. 나는 그 소리를 따라 풀밭 사이를 뛰어갔다. 소리가 나던 쪽으로 갔다 싶으면 또 다시 먼 곳에서 소리가 나고, 또 그곳을 쫓아가면 더 먼 곳에서 소리가 나는 상황이 몇 번 반복되었다. 나는 짧게 포포의 이름을 몇 번 불러보았으나, 포포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아 곧 이름 부르는 것을 포기했다. 포포와 나의 추격전이 몇 분 간, 어쩌면 몇 십 분 간 계속되었다.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창고에 다다라 있었다. 창고는 우리가 이곳에 집을 짓기 전부터 있었던 건물로, 집에서 좀 떨어진 외딴 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포포. 여기에 있니?” 나는 뛰느라 가쁜 숨을 가다듬으며, 힘겹게 포포에게 말을 걸었다. 포포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내가 창고 쪽으로 한걸음 더 다가가기 위해 걸음을 내딛는 순간, 나는 창고 옆에 작은 어린애들이 모여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들은 달빛이 닿지 않는 나무 그늘 밑에 있었기 때문에 잘 보이진 않았지만, 내 허리 정도 오는 덩치를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 아마 어린애들 같았다. 그나저나, 어린애들이라니. 나는 한 발짝 늦게 무언가 이상한 것을 깨달았다. 애들도 적은 이 시골동네에, 어린애들이 이 시간에 이곳에 모여 있을 이유가 무엇이 있단 말인가. 나는 등골이 서늘해지는 것을 느꼈다.


혹시 저것들, 귀신이 아닐까?


심장이 쿵쾅쿵쾅 뛰고, 한순간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도망가야 하나? 하지만 아무것도 알지 못하고 바스락 거리던 좀 전과 달리, 귀신같은 것이 있는 것을 알게 된 지금, 나는 좀처럼 발을 움직일 수가 없었다. 만약 움직이다가 무슨 소리가 나서, 그것들이 내가 지금 여기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면 어떻게 한단 말인가. 나는 도망치지도, 그렇다고 숨지도 못하고 멍청하게 그 자리에 엉거주춤 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몇 분이나 그렇게 서 있었을까. 어느 순간 은은한 밤바람이 내 머리칼을 스치고 지나갔다. 그 밤바람은, 창고 옆의 나뭇가지도 함께 스치고 지나갔다. 나뭇가지가 바람에 흔들리면서 달빛이 가려졌던 가지 사이를 비추었고, 그 덕에 아주 잠깐, 나무 밑에 있던 것까지도 달빛 아래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 순간 나는 거의 기절할 뻔했다.


나무 밑에 있던 것은 무슨 아이들이 아니었다. 그것들은 대형견만한 쥐들이었다. 그 큰 쥐들은 마치 인간처럼 두 발로 서서, 털이 숭숭한 꼬리를 흔들흔들 거리며 저들끼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찍찍. 멍청한 인간들. 고양이가 없어진 걸 포스터까지 만들어 동네방네 알리다니.


-찍찍. 우리에겐 잘 된 일이지. 덕분에 다시 이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으니 말이야.


-찍찍. 그래. 다른 집 인간들을 처음부터 관찰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니까. 요즘 인간들은 영리해서 대충 흉내 내는 걸로는 친척들을 속일 수가 없어. 오래 관찰해야할 필요가 있단 말이지. 귀찮게도 말이야.


나는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게 아닐까? 대형견만한 쥐들이 일어서서 이야기를 하다니. 꿈이 아니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하지만 볼을 간질이는 머리카락의 감촉과 밤바람의 서늘함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연하게 알려주고 있었다. 믿을 수 없는 일이지만, 나는 현실에 있었다. 그리고 저 쥐들은 진짜 우리를 해치려고 하고 있었다.


-찍찍. 고양이도 없으니 당장 가서 저 인간들의 손톱을 먹어치워 버리자고.


-찍찍. 난 아빠 손톱을 먹고 싶군.


-찍찍. 난 딸 손톱을 먹고 싶어.


쥐들은 신이 나서 각자 누구의 손톱을 먹을 것인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딸의 이야기가 나오자, 나는 그제야 조금 정신을 차렸다. 여기에 이렇게 멈춰 서 있을 수는 없었다. 저 쥐들은 내 가족의 손톱을 먹고 사람으로 변신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게 꿈이 아닌 이상, 나는 당장 집으로 달려가 가족들을 깨우고 도망가야만 했다. 나는 두려움에 아직까지도 굳어있는 다리를 억지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내가 뒤를 돌아 달아나기 시작하자, 내가 걱정했었던 대로 풀숲에 내 몸이 스치는 소리가 울리기 시작했다.


바스락. 바스락. 그리고 그 소리는 쥐들의 귀에도 들어가고 말았다.


-찍찍. 이게 무슨 소리지?


쥐들 중에 한 마리가 날카로운 목소리를 내며 내가 있는 쪽을 돌아보았다. 나를 본 쥐가 깜짝 놀라 입을 벌리며 누런 송곳니를 드러냈고, 그 누런 송곳니는 달빛에 반사되어 누렇게 빛났다.


-찍찍! 인간이다! 저 집의 엄마야!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나봐!


-찍찍! 뭐라고? 인간이 우리의 이야기를 들었다고?


-찍찍! 죽여! 당장 잡아서 죽여 버려!


나를 발견한 쥐들이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나를 향해 달려오기 시작했다. 인간으로 변신하는 쥐들이라 그런 것일까? 저 커다란 쥐들은 네 발이 아닌 두 발로 뛰면서 나를 쫓아왔다. 덕분에 그들은 그렇게까지 빠르지는 않았지만, 문제는 나 또한 겁을 먹어 다리가 잘 움직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대로라면 저 쥐들에게 잡히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 같았다. 온몸에서 식은땀이 쭉 흘렀다. 죽는다. 잡히는 죽는다. 나만 죽는 것도 아니라, 내 가족들도 살해당해 버릴 것이다. 나는 죽음의 공포에 창백하게 질린 채 필사적으로 달아났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쥐들에게 따라잡혀버리고 말았다. 등에 놈들의 긴 수염이 닿고 있는 느낌이 나더니, 쥐 한 마리가 주름이 자글자글한 손을 뻗어 내 팔을 잡았다.


-찍찍! 잡았다! 더러운 시궁인간!


나는 쥐의 손을 뿌리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를 돌려 쥐에게 자비를 구걸하려고 했다. 하지만 내 입에서 살려달라는 말이 나오기도 전에, 나를 붙잡은 쥐는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렸다. 누런 이 사이에서 끔찍한 입 냄새가 풍겨왔다. 이대로 죽는 건가? 쥐에게 머리를 뜯겨서? 평생 이런 식으로 죽을 거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앞으로 다가올 고통을 상상하고 두 눈을 질끈 감은 순간, 누군가의 목소리가 내 앞의 쥐를 멈추게 했다.


-찍찍! 안 돼! 손톱 먼저 먹고 죽여야지!


다른 쥐의 목소리에 눈앞의 쥐는 멈췄지만, 그건 그야말로 잠깐의 멈춤에 불과했다. 이놈들이 내 손톱을 먹으면, 바로 내 머리까지 뜯어먹을 것이 불과했다. 쥐가 내 손을 붙잡아 입으로 가져다 댄 뒤, 검지 손톱에 누런 이를 댔다. 일촉즉발의 상황, 나는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힘을 준 채 있는 힘을 다해 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누가 좀 살려주세요!”


누군가 나를 도우러 올까? 하지만 누가 온다고 해도 이 쥐들에게서 나를 구할 수 있을까? 내 가슴은 의문과 혼란으로 가득했지만 소리를 지르는 것을 멈출 수는 없었다. 왜냐면 지금 나는 너무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정말 이런 식으로 죽고 싶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 순간, 갑자기 산 쪽에서 거대한 짐승의 울음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미우우우.


그것은 화가 잔뜩 난 고양이의 울음 소리였다. 그리고 심상치 않을 정도로 커다란 울음소리이기도 했다. 보통의 고양이라면 결코 저렇게 울 수는 없을 터였다. 고양이의 울음소리를 듣자 쥐들은 우왕좌왕하며 어쩔 줄을 몰라 하기 시작했다.


-찍찍. 포포인가? 포포가 돌아온 건가?


-찍찍. 포포라도 우리를 막을 수는 없어. 잊었어? 우리는 어제 쥐 신님의 가호를 받았다고. 우리의 요력은 평소의 10배나 늘었다고. 보통 고양이라면 결코…….


-미우우!


쥐들이 갈팡질팡하는 사이, 갑자기 달이 번쩍 하며 지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그 순간 쥐들과 나는 너무 눈이 부셔 앞을 바로 보지 못하고 눈을 손으로 가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막연히 달님이 빛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곧이어 생각해보니, 달님이 이렇게 밝을 리가 없었다. 이 빛은 마치 야구장의 불빛처럼 지나치게 밝았다. 눈이 빛에 어느 정도 적응 했을 때, 나는 살짝 눈을 떠 빛이 비추는 곳을 쳐다보았다.


두 쌍의 이글거리는 불빛이 우리들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찍찍! 괴물이다!


쥐들이 사돈 남 말 하는 소리를 했다. 하지만 정말 괴물이 나타난 것은 사실이었다. 마치 등대 같은 두 눈을 가진, 그리고 입에서 우박 입김을 내뿜는 거대한 고양이가 갑자기 산에서 튀어나왔다. 하얀 털에 파란 눈, 분홍 코와 분홍 발바닥. 갑자기 나타난 고양이는 다름 아닌 포포였다. 포포의 등장에 쥐들은 나를 버리고 허둥지둥 도망가기 시작했으나, 포포는 도망치는 쥐들을 놓치지 않았다. 고양이의 거대한 강철 손톱이 괴물 쥐들의 등을 자비 없이 찢어놓기 시작했다. 쥐들의 비명이 사방에 울리자, 나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 자리에서 도망가기 시작했다.


도망가는 내내 내 등 뒤에선 쿵쿵 거리는 거대한 발걸음 소리와 고양이 소리, 쥐 비명이 뒤섞여 마치 아비규환이 따로 없었다.




차가운 손이 내 볼을 매만졌다. 나는 그 냉기에 깜짝 놀라 감겼던 눈을 떴다. 괴물 고양이의 입김이 닿은 게 아닌가 싶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 볼을 만진 건 괴물 고양이가 아니라 칫솔을 들고 있는 남편이었다.


“아침부터 어디에 있나 했더니. 현관 앞에서 자고 있었어? 도대체 뭐하는 거야?”


“어……. 괴물……. 괴물 쥐가.”


“덜 깼으면 침대에 가서 자라.”


나는 필사적으로 남편에게 괴물 쥐가 우리를 노리고 있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했지만, 남편은 내 이야기를 끝까지 듣지도 않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른 곳으로 가버렸다. 나는 남편의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머쓱함을 느끼며 엎어져있던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어젯밤에 그 소란 속에서 나는 집까지 도망 온 다음 정신을 잃었던 모양이었다. 엉거주춤 현관 앞에 앉아있는 내 눈 앞을 잠옷 원피스를 입은 딸이 도도한 표정으로 휙 지나갔다. 모두 멀쩡해보였다. 쥐가 변신한 걸로는 보이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부터가 쥐가 아니었으니 다른 가족들도 무사할 것 같았다.


“어쩌면……. 꿈이었을지도.”


정신을 좀 차려본 뒤 다시 생각해보니 어젯밤의 일이 모두 말도 안 되는 일 같았다. 아니, 같은 게 아니라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무슨 쥐가 대형견만하고 말을 한단 말인가. 커다란 고양이는 더 말할 것도 없다. 아마도 포포의 일로 신경이 예민해져서 이상한 꿈을 꾼 것 같았다.


나는 찜찜한 기분을 모두 예민한 신경 탓으로 돌리고, 두 다리에 힘을 주어 끙차 일어났다. 그리고 그 순간, 문 밖에서 작은 소리가 들려왔다.


-미우우.


연약하기 그지없는 고양이 소리였다. 그 소리를 듣자마자 나는 나도 모르게 굳어버렸다. 혹시나 꿈속의 고양이가 찾아오지 않았나 겁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내가 잠깐 망설이던 사이, 주방에 있던 딸이 헐레벌떡 뛰어나와 나를 밀치고 잠겨있던 문을 열었다.


“포포야!”


문이 열리고, 나는 거대한 고양이가 문을 부술까봐 걱정이 돼서 딸을 향해 손을 뻗었다.


그러나 포포의 모습은 그 어느 곳에도 보이지 않았다.


“포포야, 어디 있어?”


-미우우.


저 멀리, 아침 안개가 낀 산에서 고양이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딸과 나는 동시에 산 쪽을 바라보았다. 희뿌연 안개 속에서 거대한 무언가가 쿵쿵 움직이고 있었다. 안개 탓에 검고 희미한 형체로밖에 보이지 않았지만, 얼핏 보면 뾰족 귀가 달린 고양이의 모습처럼 보였다.


“포포야! 거기에 있었구나!”


딸은 안개 속에서 무엇을 봤는지 반색을 하며 산 쪽으로 달려나갔다. 나는 그런 딸을 쫓아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곧 현관 문 앞에 무언가가 가지런히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


그것은 등이 찢어진 쥐 3마리였다.


나는 놀라 굳은 채 그 쥐를 내려다보다가, 다시 한 번 안개 낀 산을 바라보았다. 안개 속에서 쿵쿵 거리는 소리와 함께 무언가 빛이 번쩍이고 있었고, 그 주위에서 딸이 행복한 듯 웃고 있었다. 나는 쥐를 한 번 봤다가, 딸을 한 번 봤다가, 안개 속을 한 번 보기를 반복했다. 그리고 결국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숨을 푹 내쉬었다.


포포가 돌아왔다.


그게 영 기쁜 일은 아니었지만, 나는 어쩔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하고 받아들이기로 했다. 영 찜찜한 수호신이라도, 그래도 쥐는 잘 쫓으니까. 결국 고양이의 미덕이란 쥐를 잘 쫓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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