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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미이 Jun 29. 2022

<작은 괴물 이야기>


옛날 어느 한 옛날, 어느 작은 집에 작은 아이가 살았대. 

그 아이는 시끄럽고, 버릇없고, 또 누구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였지.


아이가 말대꾸를 했을 때 아빠는 소리쳤어. 

건방진 녀석. 도대체 누굴 닮았는지 모르겠어. 

아이가 싸움을 했을 때 엄마는 소리쳤어. 

부끄러워. 너 때문에 못살겠어. 

아이가 발버둥 치며 떼를 쓰자 엄마아빠는 또 소리쳤지. 


시끄러워! 이 괴물 같은 녀석, 당장 우리 집에서 나가!  



그 때 이상한 일이 일어났어. 

울고 있던 아이의 몸이 순식간에 검은 털로 뒤덮인 거야. 

그것뿐만이 아니야. 손과 발은 뾰족하고 단단하게 굳어버렸고, 눈도 새빨갛게 변해 검은 털 사이에서 반짝 거리게 되었지. 아이는 정말 괴물이 되어버린 거야. 


깜짝 놀란 괴물은 얼굴을 감싸 쥔 채 집을 나갔어. 

그리고 멀리 멀리 도망갔지. 

하지만 아무리 멀리 도망가도 자꾸 귓가에 부모님이 괴물이라고 외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어. 그래서 괴물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고 거리를 떠돌기로 했어. 부모님에게 괴물이라는 소리를 다시 듣느니, 그게 더 나을 것 같았거든.       



괴물은 길에서 혼자 살게 되었어. 

밤에는 나무 위에서 자고, 낮에는 나무열매나 꽃의 꿀을 빨아먹으며 지냈지. 하지만 길 위의 생활은 너무 힘들었어. 늘 춥고 배고팠지. 그리고 심심하고 외롭기도 했고. 

괴물도 집이, 친구가 있었으면 했어. 푹신한 침대에서 자고, 따뜻한 음식을 먹고, 친구들과 함께 놀고 싶었지. 


그래서 괴물은 어린 아이들의 뒤를 쫓아가기 시작했어. 종종종 몰래 집까지 쫓아갔지. 

따라온 괴물을 보고 모두가 놀랐어. 아이들은 엉엉 울고, 아이들의 부모님이 나가라고 소리를 질렀지. 

하지만 괴물은 나가지 않았어.

 빗자루로 때려도 버티고 버텼어. 길은 너무 힘들어, 이제 다시 집에서 살고 싶어. 


괴물은 가족들이 밥을 먹을 때 같이 식탁에 앉았어. 

아무도 괴물에게 그릇을 주지 않았기 때문에 괴물은 식탁의 음식을 손으로 집어 먹었지. 


괴물은 아이들이 인형놀이를 할 때 근처에 앉아 있었어. 

아이들이 괴물을 모른 척 했기에 괴물은 도중에 억지로 놀이에 끼어들었지. 

괴물은 돌멩이를 자기 인형 삼아 놀았어. 그렇지만 돌멩이로 인형의 집을 꾹 누르자 인형의 집은 와르르 부서지고 말았지. 


밤이 되면 괴물은 아이들의 방문 앞에서 잤어. 

괴물에겐 침대도 이불도 없었기에 아이들 옷장에서 옷을 잔뜩 꺼내서 깔고 덮고 잤지.      


아이들도, 아이들의 부모님도 모두 괴물을 싫어했어. 눈이 마주치면 눈살을 찌푸리며 고개를 돌렸지. 괴물에게 단 한 번도 따뜻한 말이나 친절을 베풀지도 않았지. 

괴물은 섭섭했지만 어쩔 수 없었어. 어차피 괴물은 괴물인 걸. 

도대체 누가 괴물을 사랑해주겠어? 

누가 괴물을 아껴주겠어? 

괴물이 할 수 있는 건 자신에게 쏟아지는 미움을 모른 척 버티는 것뿐이었어.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이게 무슨 일이람? 아주머니가 괴물을 보고 말을 걸지 뭐야? 



“얘야. 저 밖에서 사과를 따다 주지 않을래?”


“사과요? 왜요?”


“사과잼을 만들어주마.”


괴물은 신이 나서 아주머니에게서 바구니를 받았지. 

사과잼이 먹고 싶기도 했지만, 아주머니가 자기에게 말을 걸어준 게 기뻤거든. 

평소처럼 말없이 노려보는 게 아니라, 다정한 목소리로 말을 걸며 ‘얘야’라고 불러준 게 기뻤거든.


괴물은 바구니를 들고 정원에 있는 사과나무로 갔어. 

사과나무에는 사과가 잔뜩 달려 있었지. 

괴물은 사과를 열심히 땄어. 

까치발을 들기도 하고, 나무 위에 기어 올라가기도 해서 사과를 바구니 하나 가득 땄지. 

바구니에 가득 찬 싱싱한 사과를 보니 기분이 얼마나 좋았는지 몰라. 괴물은 룰루랄라 집으로 돌아갔지. 


“아줌마. 저 왔어요. 사과 많이 따왔어요.”


괴물은 사과 바구니를 들고 집으로 들어가려고 했어. 

하지만 집 문은 열리지 않았지. 문고리를 당길 때마다 덜컥덜컥 소리를 내면서 흔들릴 뿐이었어. 

안에서 문을 잠가버린 거야.


괴물은 당황했지. 아주머니가 잠깐 어딜 나갔나 했어. 

하지만 그런 게 아니었어. 문 안쪽에서 소곤소곤 속삭이는 소리가 들려왔거든.

다들 안에 있는 게 틀림없었어. 괴물은 다시 한 번 세게 문을 흔들었지.


“사과잼 만들기로 했잖아요. 사과 따 왔다니까요? 빨갛고 예쁜 사과라고요!”


하지만 아무리 흔들어도 문을 열리지 않았어. 

괴물은 문 앞에 주저앉아 기다렸지.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저녁이 되도 문은 열리지 않았어. 


어느새 밤이 됐어. 땅에서 차가운 기운이 올라오고 하늘엔 달이 떴지. 

괴물은 코를 훌쩍이며 자리에서 일어났어. 

그리고 들고 있던 사과 바구니를 문에 내던져 버렸지. 

빨갛고 예쁜 사과들이 문에 부딪쳐 바닥으로 떨어졌어. 괴물은 발로 그 사과들을 쿵쿵 짓이겨버렸어.

그리고 그 길로 그 집을 떠나버렸단다.     


괴물은 계속해서 다른 사람들 집에 쫓아 들어갔어. 하지만 어느 집에도 오래 있을 수 없었어. 

사람들은 계속해서 괴물을 속여서 쫓아냈거든. 

뒷산에 피크닉을 간다고 하고 괴물을 버리고 오기도 했고, 집에 페인트칠을 해야 되니 잠깐 나가라고 해서 괴물을 쫓아내기도 했어.

 여러 번 버림받자, 괴물은 마음을 독하게 먹게 됐어. 

이번에 쫓아가는 집에선 절대로 쫓겨나지 말아야지.

뭐라고 해도 집 밖으로 나가지 않을 거야…….     


그러던 어느 날, 괴물은 다시 한 번 어린아이들 뒤를 쫓아갔어. 

괴물 또래의 아이와 아장아장 걷고 있는 아기였지. 

늘 그랬듯 괴물은 살금살금 그 아이들의 뒤를 쫓아가, 아이들의 집까지 갔지. 


괴물은 늘 벌어졌던 일이 벌어질 거라고 생각했어. 

사람들이 쫓아온 괴물을 발견하고 소리 지르고 나가라고 하는 거 말이야. 

하지만 이게 무슨 일일까? 괴물을 본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소리를 지르지 않았어. 

물론 깜짝 놀란 것 같긴 했지. 하지만 화내는 대신 아이들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어보지 뭐야.    

 

“어머. 얘들아. 친구를 데려온 거니?”


아주머니의 말에 아이들은 뒤를 돌아봤어. 그리고 그제야 괴물이 자신들의 뒤에 서 있다는 걸 알았지. 

괴물은 이제 아이들이 깜짝 놀라서 비명을 지르겠거니 했어. 

그것도 아니면 싫은 표정으로 노려보거나 말이야. 

하지만 이번에도 이상한 일이 벌어졌어. 

아이들이 비명을 지르지도, 싫은 표정을 짓지도 않는 거야. 


“너는 누구니?”


큰 아이가 물어봤어. 괴물은 대답하지 않았지. 


“왜 우리를 쫓아왔니?”


큰 아이가 또 물어봤어. 괴물은 이번에도 대답하지 않았어.


“같이 저녁 먹을래?”


괴물은 이번엔 고개를 끄덕였어. 그러자 아이가 괴물의 손을 잡고 주방으로 데려갔어. 

그러자 다시 한 번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아주머니가 괴물 몫의 숟가락과 그릇을 가져다준 거야. 

숟가락과 그릇을 주다니! 괴물을 얼떨떨한 기분이었어. 

꿈을 꾸고 있나 싶기도 했지. 

하지만 꿈이 아니었어. 모든 게 진짜였지. 

괴물은 그렇게 오랜만에 따뜻한 식사를 했단다.



이 집의 가족들은 아주 이상했어. 

그동안 괴물이 같이 살았던 그 어떤 가족들과도 달랐지. 

일단, 괴물에게 나가라고 하지 않았어. 괴물을 싫은 눈으로 쳐다보는 일도 없었지. 

아이들은 괴물을 놀이에 끼워주었어. 괴물이 아이들이 열심히 만든 그림을 망쳐도 화내지 않았지. 

괴물이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는 걸 알았거든. 괴물과 아이들은 힘을 합쳐 더 멋진 그림을 그렸지.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괴물과 자기 아이들을 똑같이 대했어.

아이들의 머리를 빗어줄 때 괴물의 억센 털을 같이 빗어주었고, 아이들을 씻길 때 구정물 투성이의 괴물도 같이 씻겼어. 

그리고 괴물에게 나무 상자를 이어붙인 침대와 솜이불까지 마련해주었지. 


심지어 괴물이 잘못하면 타이르기도 했어. 

다른 가족들은 괴물이 무서워서 아무 말도 못하고 한숨만 쉬거나 노려보기만 했는데 말이야. 

하지만 혼나도 괜찮았어.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혼을 내면서 짜증을 내지도, 때리지도, 욕을 하지도 않았거든.

 그러니까 아무리 혼나도, 괴물은 아저씨와 아주머니가 자기가 미워서 혼내는 게 아니란 걸 알 수 있었지.  

    

괴물은 여전히 말썽을 부렸어. 하지만 조금씩 나아졌지. 

괴물은 바뀌어가는 자신의 모습이 꽤 마음에 들었어. 

괴물은 늘 자기 자신을 미워했지만, 요즘에는 나름 나쁘지 않단 생각도 들었어. 이런 기분은 평생 처음이야.

 모두 이 다정한 가족들 덕분이지. 괴물은 어느새 다정한 가족들을 무척 좋아하게 되었어. 


하지만 괴물은 여전히 집을 나가지 않았어. 

이 가족들이 다른 가족들과는 다른 걸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쫓겨날까봐 불안했거든. 


괴물은 아이들이 꽃구경하러 가자고 해도 집 안에 있었고, 

아주머니와 아저씨가 같이 시장을 가자고 해도 집에 가만히 있었지. 

다정한 가족들은 왜 괴물이 집 밖으로 나오지 않나 궁금해 했어. 

하지만 왜 나오지 않느냐고 물을 때마다 괴물은 입을 꾹 다물고 대답하지 않았지.      


그러던 어느 날이었어. 저녁식사 시간이 되었는데 막내 동생이 보이지 않았어. 

집 구석구석을 찾아봐도 없었어. 아마도 밖으로 나가 버렸나봐. 

아주머니와 아저씨도, 큰 아이도 막내 동생이 언제 나갔는지 알 수 없었지. 

도대체 어디로 가버렸을까. 아주머니와 아저씨, 큰 아이는 막내 동생을 찾아서 집 밖으로 나갔어. 


밖은 위험해. 특히 막내 동생 같은 어린애에겐 더 위험하지. 

게다가 밤이 되면 두 배, 열 배로 더 위험해질 거야. 

괴물은 가족들이 막내 동생을 찾아서 돌아오기만을 기다렸어. 

창문에 붙어서 하염없이 기다렸지. 

하지만 몇 시간이 지나도, 해가 떨어져서 밤이 찾아와도 아무도 돌아오지 않았어. 

어떡하지. 어떡하지.


괴물은 밖에서 살아봐서 잘 알았어.

 밤에 밖에 얼마나 무서운 것들이 많은지. 

늑대가 막내 동생을 물어갈지도 몰라. 밤바람이 너무 추워서 기침병에 걸릴지도 몰라. 어두워서 도랑을 미처 보지 못하고 빠질지도 몰라.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무서운 생각들이 자꾸만 떠올랐지.


괴물은 어두운 밖을 쳐다봤어. 그리고 따뜻한 집안도 둘러봤어. 

괴물은 이 따뜻한 집을 떠나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막내 동생이 어두운 밖에 있는 것도 싫었지. 

고민하던 괴물은 결국 마음을 정했어. 


괴물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킨 다음에, 조심조심 문턱을 넘었어. 막내 동생을 찾으려고 집을 나선 거야. 

괴물은 어두운 길을 마구 달리기 시작했어. ‘막내 동생아, 막내 동생아!’ 소리를 지르면서 말이야. 


괴물의 눈은 어두워도 잘 보였어. 괴물의 발은 울퉁불퉁한 길도 넘어지지 않고 잘 달릴 수 있었지. 

괴물의 귀는 작은 소리도 잘 들을 수 있었고 말이야. 

괴물은 이곳저곳을 뒤지며 온 마을을 돌아다녔지. 

마을사람들도 횃불을 들고 막내 동생을 찾고 있었어. 

마을 사람들은 괴물을 보고 싫은 표정을 지었지만, 괴물은 신경 쓰지 않았어. 

괴물의 가슴 속엔 조금 더 일찍 나올 걸 하는 후회뿐이었어.      


마을을 다 뒤진 괴물은 마을 밖 밭과 과수원을 뛰어다녔어. 

밭과 과수원을 다 뒤진 뒤에는 조그만 뒷산을 돌아다녔고 말이야. 

그렇게 밤새도록 막내 동생을 찾으러 다닌 괴물은, 새벽녘이 다 되어서야 동생을 찾을 수 있었어. 


“막내 동생아!”


무심코 내려다 본 절벽 아래, 툭 튀어나온 바위 위에 막냇동생이 누워 있는 게 보였어. 

아마도 막내 동생은 절벽에 핀 꽃을 따려다가 떨어지고 말았나봐. 

막내 동생은 많이 지쳤는지 괴물이 불러도 대답도 않고 조용히 누워 있었어. 

그 모습을 보고 괴물은 겁이 덜컥 났지. 

막내 동생이 잘못 되면 어떡해. 너무 늦게 찾은 건 아닐까? 

괴물은 주변을 살펴봤어. 저 멀리 어른들이 들고 있는 횃불이 보여. 

하지만 너무 멀어서 부르러 가면 한참이 걸릴 거야.

 또 부르면 뭐한담? 절벽 아래에 내려갈 장비가 없잖아. 그걸 또 가져오려면 시간이 더 걸리겠지.


이미 막내 동생은 밤새 밖에 있었는데, 또 그렇게 오래 기다릴 수 있을까? 

아무래도 안 될 것 같았어. 지금 당장 막내 동생을 구해야만 할 것 같았지.

 그래서 괴물을 혼자 절벽을 내려가기로 했어. 괜찮아. 괴물은 아주 힘이 셌으니까. 

아마 작은 막내 동생 정도는 혼자 업고 올 수 있을 거야.     


절벽 아래로 내려간 괴물은 막내 동생을 업고 다시 절벽 위로 올라가려고 했어. 

그런데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어. 그건 바로 어떻게 올라오냐는 거야.

 막내 동생이 정신을 잃었다는 건, 막내 동생이 괴물에게 힘껏 매달릴 수 없다는 거야. 

그래서 괴물은 한 손으로 등에 업은 막내 동생의 엉덩이를 떨어지지 않게 받쳐야만 했어. 

그러면 남은 건 한 손 뿐, 한손으로 어떻게 절벽을 오른담? 


괴물은 천천히 절벽에 발을 올려봤어. 

발을 손처럼 쓴다면, 한 손으로도 절벽을 올라갈 수 있을지 몰라. 

물론 평범한 사람이라면 안 되겠지만, 괴물은 괴물이니까. 어쩌면 될지도 몰라. 

괴물은 발가락을 힘껏 내뻗으려고 노력했어.

 끙끙, 땀을 흘리며 노력하니까 괴물의 발가락이 점점 길어졌지. 꼭 손가락처럼 말이야! 다행이야, 다행이야 정말.


괴물은 길어진 발가락으로 절벽을 단단히 붙잡고 올라가기 시작했어. 

무척이나 힘들고 오래 걸렸지만, 그래도 어찌어찌 절벽을 올라갈 수 있었지. 

그렇게 절벽을 겨우 다 올라왔을 때, 가까이서 사람들 소리가 들렸어. 마을 사람들이 여기까지 왔나 봐.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괴물을 소리쳐 마을 사람들을 불렀어.

 다행이야. 마침 힘이 거의 다 떨어진 참이었거든. 

사람들이 도와준다면, 막내 동생을 무사히 절벽 위로 올릴 수 있을 거야. 


“여기 봐! 아이가 있다!”


“괴물이 아이를 데리고 있어!”


사람들이 손을 뻗어 막내 동생을 붙잡았지. 

그리고 끙차, 막내 동생을 절벽 위로 올렸어. 이제 막내 동생은 안전해. 

괴물은 안심하면서 자기 손도 내밀었어. 

이제 정말 힘이 하나도 안 남아서, 도저히 혼자 올라가지 못할 것 같았거든. 

그런데 아무도 괴물이 내민 손을 잡지 않았어. 


“어휴. 징그러. 저게 뭐야?”


모두 괴물을 힐끔 쳐다보곤 고개를 돌려버렸지. 그리고 알지도 못하면서 괴물의 욕을 했지.


“아이 잡아먹는 괴물인가 봐. 저 괴물이 아이를 납치한 건가 봐.”


괴물은 자기도 구해달라고 하고 싶었어. 

나는 괴물이 아니라고, 막냇동생의 가족이라고 하고 싶었어. 

하지만 아무런 말도 못했어. 아무리 소리쳐 괴물이 아니라고 말해도, 사람들은 괴물을 괴물로만 볼 거야. 괴물마저도 사실 자기가 괴물이라고 생각하는 걸. 


결국 지친 괴물의 손에 힘이 빠졌어. 그렇게 괴물은 절벽 저 아래로 떨어졌지.    

   

절벽 아래로 떨어지면 모든 게 끝날 줄 알았어. 

하지만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어. 

괴물은 굉장히 튼튼한 몸을 가지고 있었거든. 

온 몸이 아프긴 해도, 어디 하나 부러지거나 심하게 다친 곳도 없었어. 

다치지 않았으니 다행이야. 이제 일어나서 마을로 돌아가면 돼.


모두가 다정했던 이번 집도, 괴물이 나가자마자 문을 잠갔을지 몰라. 

왜냐면 괴물은 괴물이니까. 

하지만 그래도 괜찮아. 

늘 하던 대로 새로운 아이들을 쫓아 새로운 집으로 가면 되잖아. 하지만……. 


이제는 싫었어.


더는 그러고 싶지 않았어. 


괴물은 너무 지쳤어. 

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 곁에 더는 붙어있고 싶지 않았어. 

그래서 괴물은 아픈 몸을 질질 끌며 산을 헤맸지. 

산을 헤매고, 헤매고, 헤매다가 작은 동굴을 찾았어. 

그곳은 작은 괴물이 오래도록 잠들기에 딱 알맞은 곳이었지.



작은 괴물은 작은 동굴 안에서 잠이 들었어.

 춥고 배고팠지만, 괴물은 깨어나지 않았지. 

왜냐면 계속 꿈속에 있고 싶었으니까. 

꿈속에선 괴물도 행복할 수 있었어. 

누구에게도 상처주지 않고, 누구의 짐도 되지 않고, 누구에게도 미움 받지 않을 수 있었지. 


괴물은 계속 잠들어 있었어.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일주일이 지날 때까지 말이야. 

괴물이 이제 영원한 꿈속에 빠져들려는 순간, 저 멀리서 그리운 목소리가 들려왔어. 

처음엔 꿈인 줄만 알았지만, 꿈이 아니었어. 어디선가 다정한 집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어. 


“아이야! 작은 아이야!”


“어디에 있니? 대답 좀 해봐!”


괴물은 대답하지 않았어. 

다정하고 착한 가족들이 자기를 찾으러 왔지만, 사실 저 사람들도 괴물이 없는 편이 더 좋을 거야. 

괴물이 없어야 더 행복하고 편하게 살 수 있을 거야.


괴물은 가족들이 자기를 포기하고 돌아가기를 기다렸어. 

가족들의 목소리가 멀어졌다 가까워지기를 반복했지. 그

러나 결코 끊어지진 않았어. 

그 간절한 목소리에 괴물의 가슴은 점점 더 답답해져 갔지. 

제발 가. 가버려. 나를 찾지 마. 더는 사랑하고 싶지 않아. 

더는 기대하고 싶지 않아. 그러니까 제발 가버려…….


가족들이 떠나기를 바라면서, 괴물은 너무 슬프고 아팠어. 

그래서 저도 모르게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지. 훌쩍훌쩍, 가냘픈 그 소리가 동굴 밖으로 새어나갔어. 

그리고 바람을 타고 멀리멀리 흘러갔지. 산을 헤매던 가족들은 그 소리를 듣고 결국 괴물을 찾아냈어. 



“작은 아이야! 너 여기에 있었구나! 얼마나 걱정했는지 아니?”


아주머니가 쓰러진 괴물을 끌어안았어. 


“괜찮니? 눈 좀 떠봐.”


아저씨가 얼른 일어나라며 괴물의 팔다리를 주물렀어. 

큰 아이도 괴물에게 일어나라며 슬픈 목소리로 말했지. 괴물은 가슴이 너무 아팠어. 

결국 가족들이 자기를 찾아버렸구나. 

더는 기대하고 싶지 않았는데, 

더는 사랑하고 싶지 않았는데. 

괴물은 감았던 눈을 힘들게 떴어.

 그리고 원망어린 눈빛으로 가족들을 노려봤지.  


“왜 나를 찾았어요? 가요. 저 같은 건 그냥 내버려두고, 가란 말이에요.”


사나운 괴물의 목소리에 가족들이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어. 

가족들의 얼굴은 다들 핼쑥해져 있었지. 괴물을 찾아다니느라 고생을 많이 한 모양이었어. 

그 안쓰러운 모습에 괴물의 마음이 약해졌지만, 곧 독하게 마음먹고 발버둥 치며 가족들에게 쏘아붙였어.


“내가 왜 집에 가야 해요? 나는 괴물이에요. 누가 괴물하고 살아요? 난 당신들이 싫어요. 정말 싫어요! 그러니까 착한 척 말고 가버리란 말이에요!”


가라고, 가라고 괴물은 소리치고 소리쳤어. 

하지만 아주머니는 괴물을 놓지 않았어. 

아저씨도, 큰 아이도 오히려 괴물을 꼭 끌어안았지. 

그들은 괴물의 털북숭이 얼굴에 대고 눈물을 흘렸어.


“마을 사람들이 너에게 상처 줬니? 그 사람들 말은 신경 쓰지 마. 집에 가자.”


“보고 싶었어. 작은 아이야. 네가 어떻게 될까봐 무서웠다고.”


“너는 괴물이 아니야. 우리 가족이야. 내 동생이라고.”


괴물은 가족들을 밀쳐내려고 했어. 밀쳐내고 소리 지르고 난동을 부리고 욕을 하려고 했어. 

그건 괴물이 가장 잘하는 일이야. 다른 사람들이 싫어하는 짓을 하는 것.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하게 하는 것. 하지만 무슨 일인지, 괴물은 그럴 수가 없었어.


가족들의 따뜻한 온기가 괴물의 차가운 몸을 따뜻하게 데웠지. 

그 따뜻함 때문에 괴물은 미운 말도, 나쁜 행동도 할 수 없었어. 

또 꼭 붙어있었기 때문에, 괴물은 가족들의 심장 소리도 들을 수 있었지. 

두근두근, 사랑과 안도와 슬픔의 고동이 들려왔어. 그 고동이 괴물의 온몸을 흔들었지. 


괴물의 몸이 흔들리자, 괴물의 눈가가 뜨거워지기 시작했지. 

괴물의 볼을 타고 눈물이 흘렀어. 그건 아주 이상한 일이었지. 

괴물은 지금껏 단 한 번도 울어본 적이 없었거든.

 누가 혼을 내도, 누가 미워해도, 누가 때려도 괴물은 운 적이 없었어. 

더 소리를 지르고 화를 낼지언정 눈물을 흘린 적은 없었지. 

하지만 지금 괴물은 울고 있었어. 

괴물은 기뻐도, 고마워도 눈물이 흐를 수 있다는 걸 깨달았지. 

괴물은 더는 화를 내지 않았어. 

더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지 않았어. 대신 꽁꽁 숨겼던 진심을 힘들게 털어놓았어.      


“미안해요.”


괴물이 속삭였어. 


“잘못했어요.”


괴물의 목소리는 점점 커졌지. 

흑흑 숨을 들이키던 괴물을 어느 순간 엉엉 소리 내서 울기 시작했지.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어. 눈물이 흐른 자리에, 괴물의 털이 사라지기 시작한 거야. 

검고 뾰족하게 뻗어있던 털이 눈 깜짝할 새 사라지고, 그 자리에 다시 어린이의 보송한 피부가 나타났어. 


“고마워요. 찾아줘서 고마워요.”


가족들은 놀라서 괴물을 쳐다보았어. 하지만 괴물은 자기 몸의 변화도 눈치 채지 못한 채 더 크게 울었지. 


“고마워요, 미안해요. 고마워요, 미안해요.”


눈물은 폭포처럼 흘러서 괴물의 온 몸에 스며들었지. 

괴물의 검은 털이 모두 빠지고, 괴물의 빨갛던 눈은 다시 예쁜 갈색이 되었지. 

손과 발도 다시 부드러워졌어. 괴물은 이제 더는 괴물이 아니었어. 다시 작은 아이가 된 거야.


“작은 아이야. 눈을 떠. 너를 봐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봐봐.”


아주머니가 작은 아이에게 말했어. 

작은 아이는 코를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지. 

그러다가 얼굴에 더는 털이 수북하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되었어. 

작은 아이는 자신의 손을 내려다보았어. 

손은 더는 뾰족하지도, 단단하지도 않았지. 평범한 아이의 손이었어. 

작은 아이는 깜짝 놀라서 제자리에서 펄쩍 뛰었어. 


나는 이제 더는 괴물이 아니야. 다시 사람이 된 거야! 


작은 아이는 기뻐서 말도 못하고 어쩔 줄을 몰라 했어. 그런 작은 아이의 손을 큰 아이가 꼭 잡았지. 


“이제 집에 가자. 계속 같이 행복하게 살자.”


작은 아이는 잠깐 망설이다가, 큰 아이의 손을 마주 꼭 잡았지. 

그리고 아주머니와 아저씨를 올려다봤어. 아저씨와 아주머니는 작은 아이를 보고 웃고 있었지. 

그 행복한 웃음에 작은 아이의 마음이 편안해졌지. 

작은 아이는 가족들과 같이 산을 내려갔어.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작은 아이의 엄마와 아빠가 됐어.

 큰 아이와 막내 동생은 작은 아이의 형제자매가 되었지. 

작은 아이가 사람으로 변한 후에도, 사람들은 가끔 작은 아이를 보며 ‘괴물이었던 아이’, ‘괴물’이라고 수군댔어. 

하지만 누군가 괴물이라고 불러도, 작은 아이는 두 번 다시 괴물로 변하지 않았어.


왜냐면 가족들이 작은 아이를 괴물이라고 부르지 않았으니까. 

가족들이 작은 아이를 사랑하고, 작은 아이가 가족들을 사랑했으니까. 


작은 아이는 가족들과 함께 그렇게 오래도록,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지.      


<작은 괴물 이야기>     




예전에 모 공모전 최종심까지 올랐었던 동화입니다. 

재미있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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