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 필 하모닉이 한국어 서비스를 지원하면서 디지털 회원을 모집하고 있다.
세계적인 오케스트라의 음악을 서울 집에서 감상하는 것만으로도 연간 회원에 가입하기에 충분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커피를 내리고 메일을 확인하니 플레이리스트라고 내가 직접 음악을 고르지 않아도 몇 개의 음악을 테마별로 권해 주었다.
살펴보니 딱 맞춤 서비스였다.
커피 한잔을 마시며 얼떨결에 우치다 미츠코의 모차르트 연주를 들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다.
일어나서 그저 창문을 열듯이 말이다.
그들이 과연 독일인인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마케팅이 턱없이 부족하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는 데는 늦은 독일이 점차로 줄어들고 있는 클래식에서 이런 시도를 하다니 말이다.
나는 우리나라만큼 다양하지 못한 메뉴에서도 노말 카페를 (아메리카노) 마실 것인지, 카푸치노를 마실 것인지 한참을 망설이다가 주문했었다.
그러다가 메뉴가 100가지가 넘는 중국 식당에 가면 혼란스러워서 먹을만한 몇 가지 메뉴 번호를 기억했다가 주문했었다.
프랑크푸르트 시내 쇼핑몰에는 항상 사람들이 많아서 길게 줄을 서서 먹는 뷔페집이 있는데 나는 메뉴 13번의 쌀국수를 즐겨 먹곤 했다.
내가 줄 서 있으면 앞에서 계산하던 종업원이 나를 향해 손을 들었다.
손가락으로 13번을 표시하는 것이다.
고개를 끄떡이고 있으면 뷔페와 달리 준비가 필요한 쌀국수를 내 순서가 되면 바로 쟁반에 세팅해서 주었다.
그 식당에 가면 늘 그렇게 종업원의 배려를 받으며 아이들과 즐겁게 식사를 했었는데 나를 기억해 줘서 기분이 좋았다.
쭉 적다 보니 나는 보수적이고 변화를 좋아하지 않는 듯하다.
뭐든 빠르고 새로운 것이 금방 나오는 우리나라에서 사는 게 독일에서 살 때보다 더 외국인인 거 같다.
그만큼 못 따라가고 있다.
이렇게 사는 나에게 시그니처 메뉴를 맨 앞에 또는 잘 볼 수 있도록 적어놓은 식당에 가면 매우 반갑다.
점 점 맞춤 서비스가 마케팅의 중요한 부분이 되어간다.
배낭여행을 하던 1990년대의 젊은이들에서 인터넷 발달로 자유 여행이 붐인 시대를 거쳐 요즘은 부모님이 가시는 맞춤 여행 패키지를 이용하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얼마전에 보았다.
어느 것에 집중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일을 하면서 사는 요즘 사람들에게 쉼에서 만큼은 여러 생각 없이 맡기고 싶을 때 맞춤 서비스는 제격이라 생각된다.
나의 일괄적인 취향에서도 한발 떨어져서 선택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우리나라야 발 빠르게 변화하는 곳이지만 독일은 사실 놀랍다.
현관문을 열기 위해서 열쇠 꾸러미를 들고 다녀야 하고 코비드 19의 영향으로 스마트폰이 확산됐다고 할 만큼 정지됐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던 그곳에서도 변화를 하려는 움직임이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