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눈에 반한 요정
첫눈에 반한 요정
세상에는 아주 오래전부터 아름다운 꽃들을 관리하는 요정이 있었어요. 그 요정들 가운데에는 플로라는 황금 왕관을 쓴 늠름하고 멋있는 왕자가 있었답니다.
왕자는 다른 요정들과 같이 씨앗이 싹을 틔우고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날 때마다 그곳으로 날아가 탄생을 축하해주었어요. 꽃들이 피어나는 자연 속에 있는 산과 들판, 사람들이 가꾸어 놓은 화원, 심지어 집 안에 있는 작은 화분에서 태어난 꽃에 날아왔답니다.
어느 날, 플로는 자신이 사는 남쪽 왕국에서 요정들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그것은 바로 동쪽에 있는 작고 볼품없는 마을에서 몹시도 특별한 꽃이 피어날 것이라는 이야기였어요. 플로는 그 이야기를 듣고는 호기심이 생겼어요. 그래서 평소에는 가지 못했던 마을까지 가서 새로 태어나는 꽃을 축복해 주기로 했답니다.
이슬이 맺힌 이른 아침 플로가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을 향해 출발하려 하자, 경호를 맡은 제비가 하늘을 빙그르르 돌다가 내려와 플로와 함께 떠나려고 준비했어요. 잠시 후 둘은 순식간에 맑은 하늘 높이로 올라갔어요. 그리고는 새 꽃의 노래를 부르며 날아갔답니다.
한참을 신나게 날던 플로와 제비는 오후가 다 되어서, 마을이 있는 동쪽으로 방향을 바꿔야 했어요.
“제비야, 이제 조금만 더 날아가면 그 꽃을 볼 수 있어!”
넓고 높은 푸른 산을 지나고 수많은 물방울이 떨어져 아름다운 무지개를 만들고 있는 폭포수가 보였어요. 강물은 햇살을 받아 반짝반짝 밝게 빛났어요. 플로는 마치 보석을 보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어요. 그래서 빛나는 물가로 바짝 다가가 날기로 했답니다.
“물이 너무 예뻐. 너도 내려와 봐. 물속에서 물고기들이 낮잠을 자고 있지 뭐야!”
제비도 어느새 플로 옆으로 내려와 함께 날았답니다. 물속에 물고기들도 플로를 보고는 빠르게 움직였어요. 그래서 플로와 제비가 지나간 자리에는 강물이 작게 일렁거렸지요.
마침내, 컴컴한 밤이 다 되어, 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이 보였어요. 마을 입구에서 플로는 코를 벌렁거리며 새로 태어난 꽃을 찾았어요. 플로는 두 번도 채 코를 벌렁거리지 않고 쉽게 찾아냈답니다. 그리고는 연기가 피어오르는 굴뚝을 요리조리 피하며 날아다녔지요.
“역시 왕자님은 대단하세요. 꽃이라면 어디서나 금방 찾아내시니 말이에요.”
제비가 하늘을 크게 돌며 말했답니다.
플로는 서둘러 날아가 불이 켜진 연녹색 지붕 아래 창가로 갔어요. 창문 안에는 작은 화분이 놓여 있었지요. 그 옆으로는 아주 작은 종이상자가 침대처럼 꾸며져 있었답니다. 그곳에는 매우 작은 글씨로 ‘엄지공주’라고 쓰여 있었어요.
플로는 안이 잘 안 보이는지 창문 밖에서 입을 크게 벌리고는 창에다 입을 대고 ‘하하’하며 입김을 불었어요. 곧이어 창에 생긴 입김을 닦고 깨끗해진 창에다 얼굴을 붙여 안을 들여다봤답니다. 그러고는 놀라 하며 이렇게 말했어요.
“성냥갑 위에는 꽃에서 태어난 여인이 있어. 세상에나… 저렇게 예쁜 여인이 태어나다니…”
한눈에 반한 플로가 행복한 미소를 보이며, 엄지공주에게 축복을 빌어줬어요. 그때, 부엌에서 커다란 여자가 엄지공주에게 다가왔어요. 그러더니 작은 상자로 만든 엄지공주의 침대까지 와서는 “엄지 공주야. 잘 자렴.”이라고 말하고는 불을 꺼주었답니다.
플로는 엄지 공주라는 이름은 왠지 꽃에서 태어난 여인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요정들에게 몹시 인기가 많은 마야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답니다. 그리고는 모든 꽃 요정들에게 마야를 위해 행복한 꿈을 꾸라고, 건강하게 살게 해달라고, 기도하며 축복 가루를 하늘로 마구 뿌려주었어요.
그러던 그때였어요. 하늘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고, 바람이 거세게 불기 시작했답니다.
“왕자님! 축복 가루를 너무 많이 뿌리셨어요. 축복 가루는 한 줌만 뿌려도 산에 들에 바람을 일으켜주는 착한 바람이지만 많이 뿌리면 바람이 화를 내며 모든 것을 날려버려요!”
비바람은 몹시도 세차게 불어 금세 폭풍을 만들었답니다. 제비는 매섭게 불어대는 폭풍에서 플로 왕자를 구하려 했지만, 그럴 겨를도 없이 강한 바람에 그만 순식간에 휩쓸려 버렸어요. 바람은 심술궂은 표정을 하고서 플로 왕자와 제비를 이내 멀리 날려버렸답니다.
제비는 멀리, 멀리 날아가 겨울처럼 추운 나라까지 날아갔어요. 땅에 떨어진 제비는 벽에 붙어 높게 자란 가시덤불에 한쪽 날개를 심하게 다쳤답니다.
“쿵” 소리를 듣고 땅 밑에서 두더지가 흙을 파고는 고개를 빼꼼히 빼 보았어요. 집에 있던 들쥐 부인도 놀라 밖으로 나와 다가왔지요.
두더지는 들쥐 부인에게 친절히 인사를 했어요. 그러고는 제비를 한번 훑어보더니, 불쾌한 표정을 하고는 도로 땅속으로 들어갔답니다. 하지만 들쥐는 제비를 창고로 데려갔어요.
“자, 내가 널 구해줬으니, 몸이 다 나으면 일을 해서 은혜를 갚도록 해야 한다.”
들쥐 부인은 창고 문을 세차게 닫았고, 제비가 나오지 못하게 바깥에서 잠갔어요.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못하던 제비는 몸을 따뜻하게 하려고 몸을 둥글게 오그렸어요.
한편 정신을 잃었던 플로 왕자가 눈을 뜬 곳은 자신이 살던 왕국이었어요. 플로 왕자는 제비를 잃어 슬퍼했지요. 그리고 첫눈에 반한 마야가 걱정됐어요. 플로는 날마다 망가진 자신의 날개를 들고 제비와 마야가 있던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빨리 돌아오기를 바랐답니다.
“플로 왕자님! 매일 같이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그렇게 밖에만 계시면 병이 날 것입니다.”
플로에게 말을 건넨 것은 아스팔트 위에서 자란 민들레 꽃 두 송이였어요. 이들은 마을 입구를 지키는 병사들이었죠. 플로는 민들레들을 보고 환하게 웃어주었답니다. 민들레들 역시 플로가 축복을 내려준 꽃이었지요.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을 때, 민들레들이 플로 왕자를 보며 크게 외쳤어요.
“플로 왕자님! 저기 맑고 깊은 하늘에서 제비가 날아오고 있어요. 저 제비는 그때 왕자님과 같이 날아갔던 그 제비입니다.”
때마침 정오가 되어, 햇빛이 민들레와 플로를 환하게 비추었어요.
플로 왕자는 제비를 보고 기뻐했어요. 그리고 제비가 플로 옆으로 내려오자, 제비 등 위에 매달려 있던 마야를 보고 깜짝 놀랐답니다.
왕국으로 온 제비가 꽃 요정들에게 마야를 소개하며, 그간 있었던 이야기들을 해주었답니다.
바람이 화를 내는 통에 제비가 들쥐 부인이 사는 집까지 날아갔다가 창고에 갇히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어요. 하지만 마야가 따뜻하게 보살펴 준 덕분에 다친 날개가 다 낫게 되어, 왕국까지 탈출했다는 이야기였지요.
이야기를 다 들은 플로는 제비에게 고맙다는 말을 전했어요. 그리고는 마야가 궁금했답니다.
지쳐있던 마야가 뜨거운 수프와 꿀이 들어간 따뜻한 우유를 다 마시고 제비를 만났던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마야도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했어요. 폭풍우가 불던 날 밤 조금 열린 창문으로 두꺼비가 들어와 자기를 데리고 나가서, 흉측한 자기 아들과 결혼시키려 했다고 말했지요. 너무 무서웠지만, 연못에 사는 물고기들이 연잎을 끊고 구출해주어 탈출할 수 있었다고도 했어요. 하지만 얼마 못 가, 풍뎅이에게 잡혀가 다른 풍뎅이들에게 놀림을 받았던 이야기도 빼놓지 않고 이야기했답니다. 그러다 들쥐 부인을 만나게 되었고, 들쥐 부인이 고약한 두더지와 결혼하라고 했지만, 가까스로 제비의 도움으로 이곳까지 날아왔다는 이야기를 했답니다.
이야기를 다 들은 플로 왕자는 눈물을 흘렸어요. 그러자, 마야는 슬피 우는 플로의 따뜻한 마음을 알고는 안아주었답니다. 플로 왕자는 얼굴이 붉어졌어요.
“나는 세상에 모든 꽃이 행복하길 빌어주는 왕자입니다. 하지만 힘든 시간을 보낸 마야 당신의 행복만 빌어주는 왕자가 되겠어요. 저와 결혼해 주세요.”
엄지공주로 불렸던 자신에게 마야라는 멋진 이름을 붙여준 플로 왕자가 멋지고 사랑스러웠어요. 제비는 플로와 마야를 위해 행복한 노래를 불려주었답니다.
플로와 마야는 시냇물이 흐르고 어여쁜 꽃이 핀 요정 왕국에서 오래도록 행복하게 살았어요. 지금까지도 세상의 모든 꽃들은 플로와 마야가 행복을 빌어주어 아름답게 피어날 수 있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