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위상 Genesius Aug 09. 2021

면옥지옥 붉은 팔일

일상 의식이 흐르는 대로


Y가 말한다.


"글쎄, 생각해 본 적 없는데…"


난 Y가 선뜻 대답할 거 같았던 물음에 진지한 고민 끝에 말하는 것을 보고 의아했다.


질문은 이랬다. "너는 널 알파벳 이니셜로 부른다면… 이를테면 K, J, T.... 들 중 무엇으로 하고 싶어?"였다.


다소 뜬금없어 보일지 모르는 질문이었지만, 지금 쓰고 있는 이 글을 쓰기 위해 문뜩 생각나서 물어본 것이었다.


대뜸 Y라 대답한 Y는 대수롭지 않게 다른 일을 했다.


<제목이나 소제목이나 내용이나 무엇이나 전부 딱히 심히 깊은 고민 없이 쓰고 붙인 것이니 큰 의미나 뜻 없이 쓰려고 노력했다. 뭘 노력씩이나 어림없지>


OO헬스, 253/10000걸음


휴일 그러니까, 붉은 팔일 아침에, 몹시 가벼운 산책 하러 가기 위해 밖을 나섰다.

나는 생각한다. 사실 나가기 전에 윗옷 위로 머리를 빼 들었을 때부터 생각했다.


'녹지로 이어진 산책로로 진입해 학교가 보이는 다리까지 가면, 대략적으로 20분 거리는 1km, 휴대폰 만보기로 3,500 내외, 돌아오는 길에 모닝커피 여름이니까 더우니까 아이스 아메리카노 하나 들고...'


어쩌고저쩌고 생각하며 혼자 머릿속으로 그린 그림을 떠올리며 웃었다. 나는 움직임도 가볍게 걷기 시작했다.

걸은지 5분도 채 안 돼, 우연을 가장한 만남이 이뤄졌다.

작은 골목 사거리에서 Y를 만났다. 즉석에서 Y는 내게 제안한다.


"산책 가자! 공원으로…"


밀가루로 만든 가게가 주위에 많은 공원이다. Y가 제안한 방향은 내가 가려는 길에서 정반대 쪽이다. 나는 기억을 해낸다. 그 공원에는 너그러운 길냥이들이 많았었다. 난 승낙한다.

언제나 그랬듯 시작은 아주 흥겹고 경쾌하며 유쾌했다.


'유쾌, 상쾌, 통쾌... 이건 왜 떠오르는 거지?'


아예 다른 길로 가야 했기에 한 정거장쯤 도로를 가로질러 크게 코너를 돌았다. 케이크를 든 여자가 골목길을 지나는 자동차가 가는 앞길을 막는다. 사소하고 잡다한 광경과 흔히 일요일에 일어나는 풍경을 감상하며 걷고 또 걸었다.


코너를 돌고 가판대까지 지나치자, 세월감이 느껴지는 파란색 트럭이 보였고, Y와 나는 신호등이 있는 곳 근처로 다가갔다.


기다리던 횡단보도 옆 신호가 바뀌어, 다른 횡단보도의 보이지 않는 문이 열렸을 때 사람들이 오갔다. 우리도 자연스레 그곳에 시선을 던졌다.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면 으레 그쪽을 보기 마련이니까 말이다. 그런데 갑자기  맹수 같이 그것도 힘차게 우리 쪽으로 뛰어오는 귀여운 브론 포메라니안이 보였다.


여기서 약간의 해프닝이 있었다. 그것을 떠올려 보면 이렇다.

뭐, 주인이 목줄을 놓쳐서 강아지가 먼저 횡단보도를 건너 위험한 상황을 연출했다. 아니 했다고 봤었다. 하지만 알고 보니 뒤에 귀염쟁이 포메를 따라서 왔던 여자는 실제 주인이 아니었다. 빵을 들고 있던 여자는 파란 뻥튀기 트럭 주인 할아버지에게 맹수 같은 귀욤 포메를 맡아달라고 부탁하는 것 같았다. 진지하게 목줄을 걸어놓을 줄을 찾는 사장님을 보다가 신호가 바뀌었다.

나와 Y는 길을 건넜다. 고개는 검은 옷을 입은 빵 든 여자와 또 다른 흰옷을 입은 여자 그리고 갈색 털을 잘 빗어넘긴 포메와 뻥튀기 주식회사를 운영하시는 할아버지가 멀어져갔다.


"저기 뭐라고 써 있는 줄 알아?"


Y가 말했다. 나는 모른다고 답했다. 노안까지 심하게 들이닥치는데, 뻔뻔하게 안경도 안 쓰고 다닌다.

뭘였을까 잡다한 생각에 빠졌을 때, Y가 말한다. 


"주식회사 뻥튀기, 대표이사 강냉이."


난 0.5초 동안 눈알을 굴리며 생각해낸다. 그리고 말한다.


"유머러스하군. 현금이 있다면 바로 구매각인데. 다음에 현금 가지고 오겠어."


언제나 일상의 전개는 분위기가 나쁘지 않다.

목이 마를 수 있으니, 나와 Y는 음료를 하나씩 들고 그곳을 향해 걷고 또 걸었다. 걷고 있던 길 위에는 이전에 남았을 추억이 아스팔트에 묻어있다. Y는 추억을 기억해 내며 걸었다.


"윽, 커다란 댕댕이 푸푸다!"


Y가 말했고, 나는 피했다. 동물적인 감각을 살려 뒤꿈치를 들고 움직였다. 난 기민하다고 생각했으나 Y는 비만의 몸짓이라고 보는 눈치다.

공원을 앞에 두고 Y와 난 속을 비우셨을 그 커다란 댕댕이의 흔적을 계속해서 피했다. 빈 곳을 밟아대는 게임을 하는 것 같았다. 정체 모를 녀석의 굉장한 흔적이다. 심지어 범인은 족적을 너무 많이 남겼어.


이미 3,500보를 넘었을 무렵.


공원에 진입한 우리는 길을 따라 걷고 오르며, 땀을 쏟고 있었다. 대뜸 Y는 보너스를 받았다며, 면옥 집에서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했다. 숲이 내 위를 더 맑게 해주는 것 같았다. 하지만 난 계획을 세워놨던 일이 틀어질 때마다 심신이 약간 미약해진다.

작업해야 하는데, 눈앞에는 그들만의 은밀한 공간이 보였다. 쓸데없이 끝나지도 않는 뫼비우스의 작업.

내가 말한다.


"그래... 고양이 급식소가 있네."


마침 구경꾼들을 물리는 위엄있는 걸음으로 길고양이가 급식소로 출타 중이셨다. 움직이는 치즈 하나가 유유히 걸어온다. 느긋한 몸동작이 보는 나를 더 여유롭게 한다.


'긴장 풀라고 바보야, 뭘 그렇게 조급해하냐. 촌스럽게 급식소 가는 고양이 처음 봐? 난 목이 마르니까 물을 좀 마시겠다.'


여기 길냥이가 나를 다그치는 거 같다...


"그런데, 얘네는 구청을 집사로 들인 거네? 왠지 좋은데. 스케일이 남다르다 이 공원 길냥이들은..."


Y가 말했다. Y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하지만 Y는 반려견과 함께 산다.

'오, 그렇네. 맞네.' 속으로만 대꾸할 뿐 난 굉장히 사납게 울어대는 매미와 더운지 입 벌리고 총총걸음으로 다니는 까치를 봤다.


"말랐네."


아기냥이를 마중 나온 냥이를 본 후, Y와 난 다시 언덕을 내려갔고 초입에서 다시 고갯마루를 향해서 걸었다.

유명한 맛집으로 가는 길은 험난했고, 복잡했으며 실제로 좁은 길을 계속해서 걸어 올라가야 했다. 내려오는 사람을 피해서... 외나무다리에서 낯선 이와 맞닥뜨린 사람들의 표정은 한결같았다.


"비켜드려."


차라리 거세게 내리는 비를 맞으면 덜 억울할까? 속옷이 흠뻑 젖었다. 더위가 무서운 건 불쾌지수를 치솟게 해 친구와 가족에게 불화의 씨앗을 심어 꽃을 피운다.


드디어, 도착한 그곳은 이미 아비규환이었다. 주차하려고 줄 선 승용차와 이미 스무 팀이 넘게 예약이 되어 있는 전자예약기와 그 옆으로 더운 줄은 알고 서 있는 사람들이 거짓말 보태서 빼곡했다. 맞다, 거짓말이다. 하지만 덥고 습한 야외에서 기다려야 했고, 이미 정신은 한계에 부딪혔다.


'이곳이 그 유명한 면옥지옥인가?'


사실 이곳에 처음 오는 건 아니다. 다만, 망각이라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아주 훌륭한 능력이 있어, 당시에 얼마나 고생, 고생하면서까지 먹었는지 까맣게 잊고 배불리 맛있게 먹었던 기억만이 자리해 있었다. 그래서 기억하는 맛이 있으니 이대로 돌아가도 후회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Y는 중세 병사가 긴 전쟁에서 패배한 표정이었다. 왜 중세시대가 떠올랐는지 잘 모르겠지만 Y가 들으면 웃었을 것이다.


이미 더워 얼굴이 붉어진 Y와 나는 밥 먹다 병 얻어 갈 것 같아 그곳에서 빠져나가기로 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갔다. 내리막은 가팔랐고, 내 발목은 접질러졌다.


Y와 유치한 신경전을 벌이며, 9,000보를 찍으며, 오늘의 커피 르완다를 마시며, 나름 경쾌하게 내려왔다.

실은 중간에 있는 식당에서 아주 풍족하고 시원하게 정신과 몸의 영양분을 잔뜩 채웠다. 이로써 Y와 투닥임은 끝났다.


나의 모습은 편한 츄리닝에 산책용 신발을 신고 오른쪽 양말은 엄지발가락이 구멍 났으며, 시간은 일요일 오후 3시 13분이었다.


'엄청난 산책이었다. 그리고 Y에게 오늘도 감사히.'


하루도 잘 넘어가듯, 이 여름도 열정적으로 왔다가 소심하게 물러갈 것이다.

그리고 소리 없이 겨울이 오겠지.


브런치를 열고 서랍에 글 몇 개를 넣어놨는데, 아직 안 꺼냈다. 수정이 필요할 거 같은데, 내가 지금 위에서 만난 포메처럼 정신없이 달리고 있다.


시간 없다는 핑계를 내세웠지만, 이 글의 원래 분량이 갑절이나 됐었다는 것이 조금 씁쓸하다.


부족하다. 더 빨리 많은 글을 써내야 한다.


문뜩 작업으로 모였던 글쟁이들과 둘러앉아 말하고 또 말했던 때가 언제 다시 올까 생각해 본다. 이러니까 오래 걸리지.

작가의 이전글 할아버지와 콜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