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 있을까. 아니, 왜 없어졌을까.
2023년에는 많은 일들이 있었고 그만큼 많은 기록들이 밀려있고 쌓여있다. 뭐 대단한 내용을 넣으려고 굳이 미루기까지 했을까. 그저 틈나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뭐라도 기억을 박제해뒀으면 좋았을 것을.
늘 욕심만 앞선다. 지나고 보면 별 것도 없는데. 그러니까 한 해의 마지막 날이었던 어제와, 새로운 해의 첫 날이라는 오늘은, 밀린 기록들을 그러모으고 훌훌 털어버리는 시간을 가져보는 중.
2023년을 논하려면 책을 빼놓을 수가 없다. 그런 것 치고는 읽은 책들의 기록이 산지사방 흩어져 있어서 난감하네. 2024년에는 거창하게 책 많이 읽기 이런 거 말고 적어도 내가 읽은 책들은 꼭 연속성 있게 기록해두기, 이런 목표를 품어봐야지.
2023년의 책 관련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상반기의 <에이징 솔로> 북토크, 그리고 하반기의 <정부가 없다> 북토크.
재미있게도 두 행사 모두 내가 애정하는 책 아지트인 서촌 북살롱 텍스트북에서 진행됐으며, 두 작가님이 서로 북토크 진행을 품앗이(?) 하셨다.
어느 계절에, 어느 요일에, 그 어느 시간에 봐도 따스하고 아늑하고 그저 멋진 북살롱 텍스트북. 초행자 누구를 데려가도 이 공간이 이렇게 멋지다고 뿌듯한 마음으로 소개할 수 있어서 기쁘다. 북텍에서 진행하는 북토크들은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많아봤자 20명 언저리. 그래서 더 좋다. 여기까지 일부러 찾아오는 이들은 책에 관심을, 그리고 저자에에는 애정을 가진 이들이 대부분이다. 고민도 깊고 질문도 다정하다. 기꺼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이들을 만나게 된다.
#북살롱텍스트북 #서촌북카페
11월의 마지막 날이었던가. 도란도란 사람들이 모여드는 와중에, 앞 좌석을 잡고 마실거리를 주문한다. 뱅쇼와 코코아를 시키고 보니까 창가의 미니 트리와 포인세티아까지 더해져서 더욱 더 크리스마스 풍경이네.
#2023크리스마스
북텍의 목요일 알바이기도 한 정혜승 작가님. 매장 안에 나름 혜승존(?)처럼 구성된 권역이 있다. 그 옆의 박성제 작가님의 <MBC를 날리면>까지 합하면 불온서적 부부 작가단(?) 완성.
이렇게 편안하게 놓인 책들을 보니까 마음이 좋다. 왜냐하면 - 이 책들은 출간 후에 이래저래 마케팅 버프를 받지 못해서 세간과 언론에서 놀라울 만큼 부각되지 못했기 때문. 아니 시방 시대가 어느 때인데 정부 까는 책이라 해서 대놓고 따돌리냐고 갸웃할 수도 있지만, 정말 주류 언론에서 이 책의 출간 소식과 반향을 찾아보기가 어렵다. 주제에 화제성이 부족한 탓도 아니다. 그럴 수가 없디. 바야흐로 '이태원 참사가 우리에게 남긴 이야기'인데.
그렇게 알게 모르게 압박을 받은, 그러나 우리가 꼭 읽어야 할 책을 이렇게 들여다보고 논의하고 함께 아파하고... 그럴 수 있는 공간이라는 게 마음이 놓인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기에 내 나름대로는 사방팔방에 올해의 주요 도서로 추천하고 가까운 지인들에게는 선물도 하고 있지만.
#정부가없다
#MBC를날리면 #홍보가아니라소통입니다
5월의 <에이징 솔로> 북토크에서 롤체인지. 오늘은 김희경 작가님이 진행자, 정혜승 작가님이 작가석에. 북토크 진행은 찐팬, 진성 덕후가 하는 게 최고입니다. 그리고 다정한 것이 세상을 구원할 거야.
#에이징솔로 #김희경작가
(여담이지만 저 24페이지의 지인A는 우리집 공돌이 ㅎㅎㅎ)
책에 관해서 이야기를 본격 하기 시작하면 아마 이 글이 몹시 길어지거나, 문구들을 인용하다 못해 책 전체의 저작권을 침해할 지경이 될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런 질문을 던져보고 싶다. 이태원 참사라는 큰 비극이, 그렇지만 막을 수 있었던 비극이 일어났고, 그 누구도 책임지지 않은 채 1년도 넘는 세월이 흘렀다. 일부 생존자와 유가족이 낸 책 두어 권을 제외하면 이 사태에 대해서 깊이있게 통찰하고 이유를 분석하고 비판하는 책이, 지성의 소리가, 이토록이나 없다고?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다. 정말이지 없다. 우리는 그렇게 자칫하면 이태원 참사를 흘려보내며 살아가는 중이다.
나 또한 예외는 아니다. 비극이다, 큰 슬픔이었다, 하면서 분노도 하고 추모도 하지만 그렇게 그저 살아가는 중이었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이 책이 세상에 나와줘서 고마웠다. 이런 생각을 하고 소리를 내는 사람들에게 늘 닿아있어야겠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참사에서 시작하고 분노에서 힘을 얻은 책이지만 그렇다고 감정 뒤범벅이지 않은 점이 참 귀하다. 물론 중간중간 행간에 혜승님이 어금니 꽉 깨물고(...) 쓴 문구들은 보이지만. 그 또한 작가가 덜어내고 덜어내고 또 덜어낸 것이라지. 하지만 분노보다도 분석, 탐구, 인터뷰가 더 많다. 추천사 중 어느 분의 말대로 '오래 전에 언론을 떠난 후배 정혜승이 보여준 저널리즘의 정수' 같은 책이다.
작가 본인은 여러 모로 아쉽고 부끄럽다고 하지만 - 이 책의 모든 내용들은 누군가가 했어야 할 성찰이고, 아무도 하지 않았던 이야기다.
이런 시대를 만들어온 어른으로서 젊은 세대애게 미안해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아무 잘못 없는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에서, 이태원에서 희생됐다. 정말 미안하다. 윗 세대로서 할 수 있는 일이 대신 묻고 파고들고 답할 것 밖에 없었다. '내 새끼'만 챙기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다음 세대를 위한 어른의 마음을 고민한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비상식이, 아이들에게 당연한 상식이 되지 않았으면 한다. 책임지지 않는 어른들이 잘못한 것이고, 사회가 잘못한 것인데 피해자 탓으로 돌리는 것은 비겁하다.
분노와 절망 대신에 해답, 희망을 찾기 위한 일이다. 막을 수 있는 참사를 앞으로도 막기 위해 뭐든 해야지. 그뿐이다."
북토크 덕분에 2017 어떤혁신 북클럽 멤버들의 소모임이 결성되었다. 후후후. 분노가 불붙인 책인데 다정함의 필요성으로 귀결된다. 아니, 작가님, 이렇게 급발진(?)해도 되는 겁니까! 그런데 사실 맞아. 다정함을 대체할 수 있는 건 없어. 무작정의 다정함이 아니라 함께 다정함을 나눌 의향이 있는, 나의 다정함을 받을 자격이 있는 이들과의 다정한 연대 말이야.
#트레바리북클럽
정부가 없다
Quo Vadis?
북토크를 축하하며 북커버 포토 케익을 나눠 먹는데 절묘하게도 - 정혜승 / 아무도 책임지지 / 없다 조각을 각각 받아 들었다. 오우 대단히 의미심장한걸. 그리고 당근 케익이었다고 한다 ㅎㅎㅎ
흔들렸지만 이 날의 따스한 분위기와 빛이 담겨서 어쩐지 마음에 들어버린 B컷들.
정부가 없다.
정부가 있어야 하는데 없다.
왜 없을까. 어디로 사라졌을까.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책이다.
아쉽게도 이 세상은 그 메시지를 외면하고 있지만.
그러니까 계속 주변에 추천하고 선물해야지.
정부가 없어도 사람마저 없을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