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증 없는 삶이 그립다
위가 아파서 새벽에 잠을 설칠 때가 있다.
일단 통증이 느껴지면 온열기나 핫팩을 배에 올려놓아도 효과가 없다.
이런 현상이 오면 참는다고 나아지지 않는 단계가 된 것이다.
액상 소화제를 마시고는 화장실로 간다.
목구멍에 손가락을 넣어 억지로 위를 비울 수밖에 없다.
그러지 않으면 아침까지 계속 통증에 시달릴 테니까.....
이런 증상이 생기는 것에는 이유가 있다.
전날 음식을 좀 많이 먹었거나, 내키지 않는 음식을 먹었거나, 나물류 등 소화가 안 되는 음식을 먹었을 때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몸에 좋다는 나물이나 생채소, 현미류가 위의 통증을 촉진시키는 요소다.
위내시경을 해보아도 별다른 이유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근본적 원인은 알고 있다.
십육 년 전인 2009년에 암 진단을 받고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이미 암이 많이 진행되어 수술로는 치료가 어려운 상태였다. 대신 방사선 치료만 30번을 넘게 받아야 했다.
그 당시 알게 된 사실인데 암이 발병했을 때 수술만으로 치료가 끝나는 건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대개 수술과 방사선 치료, 혹은 수술과 항암치료가 병행되기 마련이다.
치료가 지속되니 치료받은 부분이 불에 탄 것처럼 새카맣게 그을린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만큼 방사선 치료는 독했다.
암세포를 죽여야 하니 몸의 장기에도 손상이 갈 수밖에 없다.
치료할 때는 마약성 진통제를 붙여서 몰랐는데 치료가 끝나고 진통제를 떼어내니 위 통증이 수시로 찾아왔다.
음식만 들어가면 통증으로 시달렸다.
병원에 가니 암치료 도중 위내시경을 받았기 때문에 몇 달을 더 기다려서 다시 위내시경을 받고 처방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그때까지는 무작정 통증을 감내하며 살아야 했다.
통증이 힘들어서 밥 대신 포도로 끼니를 때우기도 했다.
치료는 잘 끝났지만 완치 판정을 받기까지는 마음이 불안해서 신앙의 힘을 빌리고자 성당에 다녔다.
성당에서 미사를 볼 때면 일어났다 앉았다 하는 의식이 여러 번 있다.
미사에 참여하면서 통증 없이 미사를 볼 수 있다면, 하는 바람이 간절히 들었다.
성가대의 찬양을 들으며 통증을 잊으려고 애썼다.
통증 없이 미사를 보는 신자들이 부러울 뿐이었다.
결국 몇 달 후 위내시경을 받은 뒤에 약을 몇 달치 처방받았다.
그 약을 먹으니 수시로 찾아오던 위염은 사라졌지만 방심하면 어김없이 찾아왔다.
암이 생기기 전에는 위통으로 고생한 기억이 별로 없다.
하지만 방사선 치료는 내 위를 약하게 만들었다.
그렇게 좋아하던 비빔밥이나 콩나물이 든 음식, 콩나물국이나 콩나물밥은 먹을 수가 없었다.
좋아하지만 먹을 수 없는 음식이 늘어나니 삶의 질이 현저히 떨어졌다.
통증에 시달릴 때는 아, 살기 싫다, 언제까지 이러고 살아야 하지?..... 이런 생각이 저절로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