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밤 산이 무서웠다

by 숲별바람

산속에서 산짐승을 보거나 사람을 만나서 두렵고 그런 게 아니라 산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

오래전 내장산이었나 백양산이었나, 엄마와 갔다가 돌아오는 길이었다.

차표를 끊고 기차를 기다리고 있었다.

늦가을이라 해가 금방 져서 깜깜해졌는데 무심코 하늘을 보니 산이 눈앞에 뙁! 보이는 거였다. 영화에서 한 장면이 클로즈업되듯 말이다.

아까까지는 환해서 단풍 든 산으로만 보였는데

깜깜한 데서 보니 산이 하늘보다 더 시커멓고 거대한 모습으로 주변을 에워싸고 있으니

순간 등골이 오싹했다.

밤이라 까맣기만 한 산이 어찌나 크고 가까이 보이는지, 바로 내 머리 위에 있는 듯한 그 모습에 압도되어 공포스럽기까지 했다.

아까와는 다른 산처럼 느껴지고 나를 짓누르는 기분이랄까?

거대한 산이라 더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정말 무서웠다.

낮에는 단풍이나 나무들로 어우러져 그냥 산 자체로 힐링이 되었는데

밤이 되니 모든 꾸밈이 사라지면서 산의 윤곽만 보여 적나라했던 거였다.



만약 저런 산에서 길을 잃어 어둠이 찾아오면 산짐승이나 사람보다 산 자체에서 뿜어 나오는 기운에 압도되어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옛날 사람들이 산신제를 드렸던 이유를 알 것 같았던 충격적인 경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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