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 최고의 명품 드라마 <대장금>

by 숲별바람

방영한 지 20년이 넘었지만 케이블에서 재방하는 <대장금>을 볼 때마다 명품 드라마라는 생각이 든다.

이 드라마가 방송되기 전에는 궁녀가 그렇게 할 일이 많고 전문직이었는지, 상궁의 권세가 그렇게 컸는지 미처 알지 못했다.

사극 속 궁녀는 중전이나 후궁들에게 뭔가를 보고하고, 암투를 벌이는 비빈들 사이에서 귓속말로 상대 후궁의 동태를 이르는 단역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 드라마에서는 궁녀가 주인공으로 부상하여 궁녀의 역할과 전문성을 재인식한 계기가 되었다.





1. 내가 생각하는 명장면

이 드라마에서 손꼽을 수 있는 명장면은 최고상궁을 가리기 위한 경합 장면이다.

장금이와 최상궁이 요리 경합을 벌일 때 나온 음식들이 어찌나 먹음직스럽고 내용도 쫄깃하던지.....

근데 나는 솔직히 최상궁이 만든 음식들이 더 새롭고 맛있어 보였다.

다섯 가지 씨앗으로 만든 오자죽, 명태껍질전병, 술에 취한 대하구이, 간장게장 골동반, 섭산삼.....

그러다가 장금이가 마지막으로 내온 산딸기정과에 얽힌 모친과의 사연을 말하는 장면에서 장금이에게 불호였던 제조상궁과 부제조상궁, 지밀상궁까지 숙연해졌던 것은 모두 자신들의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은 아니었을지.....

산딸기정과는 음식의 맛보다 음식에 얽힌 사연과 만든 의도가 임금을 비롯한 왕실 사람들을 감동시켜서 최종적으로 경합에 승리했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명장면은 의녀가 된 장금이가 중종의 호혹을 고치는 장면이다.

거의 실명 상태로 누워 있는 중종에게 모든 의원들이 그 모습을 지켜보는 가운데 밤새도록 안마(?) 같은 걸 하는데 상선영감이나 정주부처럼 장금이 편에 있는 사람들은 대견한 듯 웃음 짓고, 내의정처럼 장금이 반대편에 있는 사람들은 장금이가 치료에 성공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이 대조되어 무척 흥미진진했다.




한편 납득이 가지 않는 대목이 있다.

의녀 열이가 굶어 죽어가는 자신과 다섯 동생을 거두어 준 제조상궁에게 은혜를 갚기 위해 제조상궁을 몰아낸 최상궁에게 복수하는 내용이다.

제조상궁은 최상궁 편에 서서 불의와 악행을 일삼던 사람인데 열이와 동생들을 거두어 주었다는 게 어쩐지 안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궁중에서의 세력다툼과 사적으로 선행을 베푸는 건 다른 문제였을까?



2. <대장금>에 드러나는 기득권의 카르텔

대장금의 대사나 내용을 살펴보면 신분제 사회에서의 기득권 생각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대대로 최고상궁을 이어온 우리 집안만이 최고상궁을 배출할 수 있다" (최상궁)

"정상궁이 양반 출신이나 잠깐 허수아비로 세운 최고상궁일 뿐이다" (최상궁)

"아무리 실력이 뛰어나도 천민 출신의 한상궁을 최고상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최상궁을 주축으로 한 수라간 상궁들)


기득권은 대대로 이어온 금수저끼리 뭉치지 흙수저 출신의 자수성가형 인물이나 어느 날 불쑥 갑툭튀 한 인재는 받아들이지도 않고 인정하지도 않는 거 같다.

그들만의 견고한 카르텔이라고나 할까?



3. 너무 곧으면 부러진다(장금이와 한상궁)

이 드라마에서 장금이와 한상궁은 대표적인 올곧은 인물들로 나온다.

근데 너무 올곧으니 시청자로서 답답하기도 하다.

도 융통성 없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운 타입인데도 한상궁과 장금이의 대쪽처럼 곧은 성격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한상궁은 최고상궁 대대로 내려오는 요리서책을 최상궁이나 금영이가 다 본 상태인데도 정상궁이 "음식 경연하는 데 공평해야 하니 너도 보거라"하고 권하는데 보지 않았다.

최고상궁만 보는 책이니 최고상궁이 되면 보겠다고 거절했다.

그때 최상궁이 한상궁을 아니꼽다는 듯 비웃으며 보았다.

선인들의 올곧고 정직한 모습조차 꼼수와 권모술수로 살아온 악인들에게는 고깝고 눈에 거슬리나 보다.




한상궁이 장금이의 활약으로 최고상궁이 되었을 때 최상궁의 모략으로 수라간 상궁 모두 한상궁의 지시를 거부하는 사태가 생겼다.

김장을 해야 해서 배추와 무 등을 절여야 하는 급한 상황인데도 오라는 한상궁의 지시에 어느 상궁 하나 오지 않았다.

빗 속에서 그 모습을 보던 한상궁이 최고상궁 자리를 포기하려고 대왕대비를 찾으려는데 장금이가 막아섰다.

이렇게 쉽게 포기하는 스승은 싫다면서 어떻게든 실력으로 인정받기를 종용했다.

이에 한상궁이 마음을 바꿔 대왕대비에게 자신의 실력으로 떳떳이 인정받고 싶으니 기회를 달라고 해서 밥 짓기로 진짜 실력을 보여주었다.


그때 한상궁이 꺾였다면, 그리고 적당히 현실에 타협하며 살았다면 최상궁의 타깃이 되어 죽음에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장금이나 한상궁이나 거대한 기득권인 오겸호 대감 무리와 최상궁 일가를 상대로 싸우기에는 너무 힘이 없고 뒷배도 별로 없었다.


다행히 드라마는 권선징악인 경우로 끝나야 해서 최후의 승자는 장금이가 되었다.

물론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은 아니다.

위기에 처했을 때 민정호 종사관이나 중종과 문정왕후 등 귀인들이 나타나 도운 덕도 있다. (드라마라 그렇지 실제로 중종이 성군은 아니었고 문정왕후도 국정농단의 장본인이었다)

현실이라면 한상궁과 장금이는 최고상궁에 오르지도 못했을 것이고 올랐다 해도 유황오리 사건으로 죽임을 당하거나 평생 관비로 살았을 것이다.



4. 대장금은 실제로 어떤 인물일까

장금이가 실존인물이었다는데 어떤 인물이었을까 궁금하다.

<중종실록>에 몇 차례나 나오는 걸 보면 의술이 뛰어난 어의임을 알 수 있고, 중종이 신뢰하고 각별히 아꼈다는 느낌이 든다.

그 정도면 위인전에도 나올 법한데 왜 그 밖의 행적은 알려지지 않았을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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