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전체적으로 보면 반복이고, 개인적으로 보면 유일하다. 어스름한 저녁, 뒷산에 올라 도심 속 불 켜진 아파트들을 보면 여러 가지 생각이 든다. 야경이 좋다는 생각, “저 많은 집 중에 왜 내 집은 없지?”라는 생각, 저 조그만 불빛 속에서 지지고 볶는 사람들에 대한 상상. “사람 사는 거 다 거기서 거기”라는 말은 전체의 삶에 대한 단상이다. 개인의 삶은 그렇지 않다. 누구는 실연의 아픔이 있고, 누구는 누군가와의 관계 때문에 스트레스에 시달리며, 누구는 질병으로 얼마 남지 않은 삶에 각별할 수도 있다. 가볍지 않다. 누구의 삶도 쉽게 단정할 수 없다. 개인에게 삶은 상대화하는 대상이 아니다.
사람의 삶은 전체적으로 보면 영원하고, 개인적으로 보면 유한하다. 지혜로운 사람들이 “역사를 공부하라”라고 강조하는 이유는 인류의 역사는 반복되기 때문이다. 정확하게 동일한 사건이 반복되는 것은 아니지만 같은 원인에 의해 비슷한 과정과 결과가 반복된다. 그렇기 때문에 미래를 예측하고 대비하며 유사시 적절한 대응을 위해서는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 그림과 문자를 통해 역사를 흔적으로 남기는 인류는 후손들에게 그들에게서 일어난 일들을 전수할 것이며 인류는 영원히 지혜로움과 어리석음을 반복하며 살 것이다. 그런데 개인의 삶은 단 한번, 일방향으로 진행되며 반드시 그 끝이 정해져 있다. 유한한 삶이기에 그 삶이 애틋하게 절박하며 소중하다. 그래서 개인의 삶과 죽음, 일상의 유일무이한 놀라운 이벤트는 영화로 만들어지고, 소설로 기록되며, 인상적인 순간을 그림으로 남겨 가슴을 울리고 그 속에 흔적을 남기는 것이다. 단 한 번이기에 더 아름답고 더 절실하고 더 사랑스러운 게 아닐까. 지혜로운 사람은 단 한 번의 인생을 역사를 통해 배우고 유한한 삶을 후회 없는 것들로 채우고자 한다.
결국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이 모여 역사가 된다. 이때 나는 그 “한 사람의 삶”이 “역사”보다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그 한 사람 본인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한 사람을 둘러싼 주변사람 즉 부모, 형제, 동료, 친구 그리고 사회적 관계인 모두가 그 “한 사람”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수준 높은 인식과 문화가 우리 시대에 확산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존재하는 목적,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 이해가 우리 모두를 행복한 삶에의 욕구로 이끌기 때문이다. 행복한 삶은 개인의 행복이 우선이다. 개인이 행복하지 않으면 전체는 영원히 행복할 수 없다.
매슬로 욕구 5단계의 마지막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는 개인의 삶에서 추구하는 인간성과 행복에 대한 욕구이론이다. 그것은 본인이 주관적 주체자가 되어 스스로 정의한 “자아실현”의 목표와 내용의 충족 여부에 따라서 욕구 달성이 결정된다. 반면 필연적으로 사회적 관계 속에서 살아가야만 아는 우리 개인은 남에 의해서, 즉 객관적 상대자에 의해서 평가받게 된다. 그것은 통상 ‘평판’, ‘사회성’, ‘영향력’ 등으로 표현되고 판단된다. 그와 병행해서 판단되는 것이 사람의 “깊이”이다. 우리는 사회적 관계를 맺고 사귀며 대화하거나 어떤 사건 발생에 대한 대응 과정에서 그 사람의 실력과 통찰력, 성향, 성격 등을 파악할 수 있다. 그것에 대한 종합적이고 정성적인 평가가 “사람의 깊이”에 대한 판단이다. 대화를 하다 보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바닥을 드러내는 사람이 있다. 그것은 대화의 소재, 대화의 대상에서도 구분되는 데 통상 남에 대한 험담, 본질이 아닌 피상적인 것에 대한 단순 인식, 욕심, 질투, 비속어, 저급한 단어사용 빈도 등을 보면 그 사람의 깊이가 드러난다. 깊이가 없는 사람은 오래가지 못한다. 그 자신의 존재가치도 오래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대화를 나누는 대상과의 관계도 오래가지 못한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어서 상대를 통해 얻을 것이 없고 상호보완적이지 않거나 동반 성장 가치가 없으면 가차 없이 관계를 정리하는 게 인간의 본성이다. 이것은 호모사피엔스의 dna에 숨겨져 코딩된 것이다. 따라서 본질적으로 우리가 집중하고 몰입해야 할 것은 인간관계의 양이나 범위의 확장이 아니라 내 개인의 자기 계발과 성장이 중요하고 우리를 사회적 인간으로서 지속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가치를 부여한다. 매일 저녁 약속 잡아 만나고, 출근해서 “좋은 게 좋다”라는 친절을 무기로 처세하며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들로 시간을 채우는 사람은 금방 바닥을 드러내고 결국은 정리된다. 시간을 아껴 질적 성장과 자기 계발에 몰입해야 하는 이유다.
개인의 삶이 유한하고 단 한번 사는 삶이기 때문에 사람의 깊이가 중요하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라는 말은 유한한 우리 인간에게 위안을 준다. 지금 우리의 노력이 헛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믿음과 용기를 주고 반드시 대가를 지불하고 삶의 과정을 올바르고 정당하게 살아가겠다는 결심을 갖게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노력한 만큼 성장하고 아픔이 느껴지는 만큼 성숙해지며 굴곡에 의연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게 된다. 깊이 있는 사람은 쉽게 포기하지 않고 또 쉽게 얻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매사에 초연하고, 있는 그대로의 사물과 사건을 바라볼 수 있는 능력은 다양한 경험과 배움, 인내와 노력으로 깊어진다. 위기에 직면했을 때 우왕좌왕하고 원칙과 기준이 없으며 즉흥적으로 판단하고 갈팡질팡하는 이유는 올바로 인식할 수 있는 통찰력, 즉 깊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사람이 리더가 되면 그 조직은 성공할 수 없다. 그래서 깊이가 중요하다. 개인의 삶은 반복되지 않고 무한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만의 깊이 대한 관심과 노력은 삶을 완전하게 하는 이정표가 된다. 의미 있는 삶은 깊이에 대한 관심에서 비롯된다.
각자에게 삶은 인생에 단 한번 주어지는 기회이다. 모두가 유한하다. 그래서 소중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역사를 통해 배워야 한다. 사람의 깊이가 중요한 이유는 배움과 경험을 통해 중요한 순간 올바른 판단과 결정을 할 수 있는 통찰력을 발휘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바닥이 금방 드러나는 사람은 시류에 휩쓸려 갈피 못 잡고 헤매다 사라진다. 삶을 정면으로 바라보고 용감하게, 그러면서도 초연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깊이 있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되려면 동시에 넓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 그릇이 다른 사람이 되어야 한다. 타인에 대한 포용력이 없으면 더 이상 클 수 없다. 땅을 깊게 파려면 우선 널찍하게 공간을 잡아야 하듯이 삶의 경험과 배움을 통해 깊이 있는 사람이 되려면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갖고 두루 섭렵하며 다가오는 사람을 넉넉히 받아들이는 포용력이 있어야 한다. 그런 사람만이 점점 성장하고 깊어지며 모든 일에 초연한 태도를 견지하여 두루 아우르는 사람이 되어갈 수 있다. 이런 사람을 우리는 존경하게 되고, 우리 또한 이런 사람이 되기 위해 오늘 하루를 소중하게 사는 것이다. 그것이 깊이 있는 사람이 사는 삶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