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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수영 Sep 24. 2023

그래, 생각 없이 살아보자

가볍게, 고민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정말 아무런 관련이 없어 보이는 세 가지 사건이 나에게 같은 깨달음을 주고 있다. 그럼 그게 맞는거지 뭐!


 나는 여름마다 일을 한다. 관광과 관련된 일들 보통 그렇듯이 주말에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월요일, 화요일을 주말처럼 쉬면서 생활하게 된다. 올해 함께 일하게 된 동생이 마침 서울에 갈 일이 있다기에 그럼 이번 휴무에는 올라갔다가 서울에서 만나 버스를 함께 타고 내려오자고 이야기를 했다.


 사실 우리 집은 경기도라서 서울에서 버스를 타려면 1시간 넘게 대중교통을 타고 이동해야 한다. 하지만 어차피 내가 사는 시에는 직행 시외버스도 없는지라 어디로 가든 1시간 정도 더 움직여야 해서 비슷하기 때문에 큰 차이는 없었다.


 그렇게 함께 내려가기로 한 날 점심, 동서울에 있는 버스 터미널로 가기 위해 서울로 가는 빨간 버스를 탔을 때 동생이 숙취가 너무 심해 도저히 일찍 움직일 수가 없겠다며 다음 버스를 타야 할 것 같다고 연락이 왔다. 부글부글... 그래 화가 안 났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조금만 더 일찍 연락이 왔더라면 나도 더 쉬운 길로 갈 수 있었을 텐데, 연락이 늦어서 나는 동생이 나오지도 않는데 서울씩이나 가서 버스를 타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속에서 화가 부글부글 끓었지만 버스 안이라고 스스로를 달래며 화를 식혔다. 사실 버스에서 내려서도 씩씩거렸는데, 동생의 미안하다는 연락을 보고 거의 다 식혔다. 그리고 나는 저녁 시간에 도착해 팀장님이 데리러 나와주셨는데, 동생은 너무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숙소까지 택시를 타고 오게 되어서 화가 다 풀렸다. 꼬시다.


 이 날 새삼스럽게 이 일에 내가 왜 화가 그렇게나 많이 났을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혼자 오기 심심한 길 그나마 동생이라도 만나 덜 심심하게 내려오길 기대했을까, 함께 버스를 타는 것도 약속이었는데 지키지 않아서 서운했던 걸까. 뭐가 되었든 그렇게까지 화가 날 필요는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마셔버린 술, 와버린 숙취 동생도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을 텐데, 나까지 화내서 해결될 게 전혀 없는걸? 조금만 화나도 됐을 상황이었는데, 어쩔 수 없다며 넘겨도 됐을 일이었는데.




 나의 인생 3번째 공식 연애가 3주년을 앞두고 끝났다. 헤어지고 나서 여름 내내 지난 연애를 곱씹어보며 많은 생각을 했는데, 이번 연애를 통해 제대로 배운 게 있다. 말하지 않으면 모른다는 거, 그리고 말에 담긴 의도나 의미를 넘겨짚어 고민할 필요가 없다는 거. 쉽게 정리하자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된다는 걸 배웠다. 말하지도 않고 해 주기를 바라면 대체 어떻게 알고 해 줄 거며, 그 사람이 했던 말을 곱씹고 곱씹다 혼자 오해해서 얻을게 무엇이 있을까.


 가족과의 다툼도 마찬가지였다. 같은 대화를 했음에도 기억하는 말은 서로 달라서 다투면서도 기가 찼다. 이렇게 각자 기억하고 싶은 말만 기억한 채로 싸워서 얻을게 대체 무엇일까? 그냥 말하면 되는 게 아니었을까. 나는 지금 이런 부분이 힘들다고, 나는 이런 말에 기분이 상했다고.




2023년 8월 경주에서


 복잡한 세상 나라도 마음을 고쳐먹고 살아가려고 한다. 가볍게, 고민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여태까지 온 신경을 곤두세우고 살아 눈치 좋고 센스 있는 사람으로 살아왔지만 이제는 돌 같은 사람이 되어보려고 한다. 많은 생각과 고민은 본질에서 멀어지고 오해를 낳기 마련이다.


 마음을 고쳐가면서 벌써 덕을 봤다. 동기에게 오랜만에 연락해서 학교를 다니고 있는지 물어보았는데, 그 어떤 답도 받지 못한 채로 시간이 꽤 흘렀다. 답하지 못할 만큼 바쁜 일이 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지나갔다. 다시 시간이 흘러 동기 모임에서 만난 그 친구는 휴학을 했고 하루도 쉬지 않고 부지런히 일을 하고 있다고 했다. 그래, 답장 못 할 만했네! 가볍게 생각하길 잘 했다. 앞으로도 이런 일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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