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두가 나를 욕하는 것 같은 우울의 굴레에서 벗어나다
인간은 사회 속에서 집단생활을 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당연히 사람들과 엮이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나 역시 대학교에 와서 꽤 큰 사회 집단에 속하게 되면서 정말 많은 상황을 겪었다. 아니, 겪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지금 내가 겪고 있는 상황은 너무나도 정신적으로 힘들어서 최근 2년 간의 시간 동안 꽤 힘든 우울의 굴레에 빠졌다가 겨우 빠져나오기를 반복하고 있다.
한 사람과의 잘못된 관계가 내 대학 생활의 전부를 망쳐놓고 있어서, 나는 대부분의 친한 지인들에게 해명 아닌 해명을 해야 했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만 들어서 그렇다고, 사실은 이러하다고 계속해서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을 지나니 한 두 번 만나본, 또는 제대로 만나본 적도 없는 사람들에게까지도 이야기는 퍼져나가 나는 내 얼굴에 글을 써 붙이고 다니지 않는 이상 이 상황을 해명할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내 지인들까지도 해명 아닌 해명을 함께 하고 있는 지경이니까...
이쯤 되니 코로나에게 고맙기까지 했다. 이런 상황에서 대면으로 학교까지 다녔더라면 나는 버티지 못하고 휴학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지금까지 벌어서 낸 등록금이 아까워서 그만두지는 못하더라도 말이다.
그 사람이 지인들에게만 내 이야기를 했다고 알고 있을 때까지는 '어차피 나를 믿는 사람들은 내게 와서 나의 이야기도 들어보고 판단할 것'이라는 자신감이라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보통 나도 친하다고 믿는 지인들 대부분 내 이야기를 듣겠다고 먼저 찾아오곤 했으니까.
그런데 이 이야기가 어디까지 퍼졌는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는 최근에 와서는 아예 SNS를 정리해버렸다. 나의 팔로워 창에 있는 누가, 언제, 누구에게 어떤 얘기를 듣고 나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가 없어서, 그래서 나의 일상을 보고 나를 비웃고 있을까 봐 또는 욕하고 있을까 봐 두려워서 정리해버렸다. 그렇게 SNS도 정리해 버린 채 고립되어 매일 게임이나 하며 즐겁게 지내고 있었는데, 최근 대학에서 대면 강의가 활성화되면서 서로 소식이 활발해졌는지 또다시 내 이야기가 들리기 시작했다.
전에는 누군가 관련된 이야기를 들었다고만 해도 손이 덜덜 떨리고 진정이 되지가 않았는데, 오늘은 웬일인지 떨리기는커녕 먹던 치킨을 너무 평온하게도 다 먹었다. 오히려 소식을 전해주던 친구가 나보다 더 화를 내며 걱정해주었다. 친구에게 얘기해주었다. 이제는 화도 나질 않는다고. 어차피 나를 믿는 사람들은 내게 연락을 먼저 했을 거라고. 그리고 대부분의 대학 사람들은 평생 볼 사람들이 아니라고. 지금 이 치킨을 먹은 뒤에 얼른 가서 좋아하는 스트리머의 게임 방송을 보면서 게임을 해야 한다고. 그게 더 중요하다고.
이 방법을 깨닫기 전의 나는 화가 나면 덜덜 떨며 거의 반나절 정도를 관련된 고민을 하는데에 시간을 썼던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한다고 해서 나아지는 것은 하나도 없었으며 오히려 내가 해야 할 일을 제대로 못할 뿐이었다. 더 이상 이런 식으로 시간을 보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일의 초반에는 화를 내며 고민하는 시간을 보내기는 해야 한다.
나는 남과 나를 비교하는 것도 싫어하고, 남이 나를 남과 비교하는 것도 싫어하는 극도의 '비교 싫어 사람'이다. 심지어는 물건에 대한 비교조차 싫어한다. 예를 들면 나의 스마트폰이 출시된 지 오래되어 '꾸졌다'라는 평을 듣거나, 나의 옷이 유행과 다르다는 이유 만으로 '구시대적'이라는 평을 받는 걸 싫어한다. 누가 뭐래도 온전한 나의 것인 소중한 물건들이고, 나와 추억이 가득 담긴 소중한 존재들이니까. 굳이 가격과 연식에 따라 평가하지 않고 그냥 그대로 두는 쪽을 선호한다. 물론 이건 내가 내 영역 밖의 세상을 볼 때도 동일하다.
그렇게도 비교를 싫어하는 내가 이렇게 힘든 상황에서 우울의 굴레에 빠지지 않기 위해 선택한 방법이 '비교'라니 꽤 아이러니하다. 처음에는 해 버릇하지 않아 온 비교를 다시 하려니 꽤 어려웠는데 지금은 마치 알고리즘처럼 정착되어서 나의 기분을 지키기 위한 시스템처럼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 작동하곤 한다.
오늘을 예로 들자면 친구가 '누군가 내 이야기를 또 들었다더라'라는 소식을 전해준다. 평소 같으면 화가 나고 음식도 잘 넘어가지 않는다. 그런데 여기서 빠르게 생각의 흐름을 다른 쪽으로 돌려준다. '나는 이번 달 처음 용돈을 들여 산 이 치킨을 맛있게 먹고, 스트리머의 방송을 보면서 좋아하는 게임을 해야 한다. 화 낼 틈이 없다.' 그 생각을 서너 번쯤 반복하다 보면 어느새 머릿속에는 먹는 동안 놓치는 방송이 아깝다는 생각만이 가득해지고 결국 치킨을 먹은 뒤 서둘러 컴퓨터 앞에 앉는 나의 모습을 보게 된다.
사실 나의 상황을 대입했기 때문에 비교로 표현한 것이지 '불필요한 고민에 시간을 투자하지 않는 방법'에 가깝다. 고민 중에 나의 선택을 위한, 즉 고민을 통해 결정하고 그로 인해 무언가 변하는 '필요한 고민'이 있고, 나의 고민과 선택보다 다른 사람 또는 다른 요인이 결과에 더 많은 영향을 주는 '불필요한 고민'이 있다. 내가 후자를 불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10분 고민했을 때와 10시간 고민했을 때의 고민으로 인한 투입 시간과 에너지가 확연히 다름에도 결과에 주는 영향은 미미해서. 그럴 시간에 차라리 다른 일을 하면 결과는 같은데 다른 일도 해냈으니 더 좋은 거 아닐까?
물론 이럴 때 고민을 더 하는 것이 맞는 사람도 있고, 쉬는 것이 더 맞는 사람도 있겠지만... 생각을 다른 곳으로 돌려서라도 해결하는 것이 취향에 맞다면 '비교를 통해 고민의 규모를 줄이는 방법'을 활용해 보는 것은 어떨까. 내 생각을 정리할 겸 조심스럽게 추천해본다.
PS. 이 방법이 익숙해지고 '궁극의 경지'에 오르게 되면 지금 화장실을 갈까 말까 하는 사소한 생각으로도 꽤 큰 고민과 걱정을 틀어막을 수 있는 사람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