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35)
60대 여성 A 씨는 요즘 우울하고 잠이 안 와서 정신과병원을 찾았습니다. 그녀는 20대 중반에 결혼하여 평생 주부로 지내며 남편과 두 자녀를 뒷바라지하였습니다. 최근에 자녀들이 출가하고 남편도 퇴직하여 그녀도 이제 한숨 돌리게 되었습니다. A 씨는 ‘이제 나의 역할도 끝났고 그동안 힘든 뒷바라지의 보상이 시작되는 거야’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퇴직한 남편은 낚시나 하러 다니고 결혼한 자녀는 전화 한 통도 없습니다. 친구들 얘기를 들으면 다른 남편들은 같이 여행도 다니고 손녀, 손자들이랑 화기애애한 것 같은데 나만 외롭다 느꼈습니다. A 씨는 그동안의 설움과 힘듦이 한꺼번에 밀려와 우울증이 생겨서 병원에까지 이르렀습니다.
A 씨와 같은 스토리를 가진 분들은 정말 자주 볼 수 있습니다. 나를 돌아볼 시간도 없이 결혼을 해버렸고 양육할 때도 바빠서 나를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이 다 큰 이후로는 나의 역할이 끝나고 모든 고행에서 벗어나기를 기대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또 마음 한 구석에는 그동안의 고생을 누군가 알아주고 어떤 보상을 바라고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퇴직한 남편처럼 퇴직금이 나오는 것도 아니고 가족들도 나의 고생을 알아주는 것 같지 않습니다. 그동안의 고생이 헛수고처럼 느껴져서 허무함이 들어섭니다.
우리는 불행이 행복의 반대말이라고 착각하고 살 때가 많습니다. 물론 언어적으로는 반의어입니다. 하지만 심리적으로 본다면 불행의 반대는 ‘불행하지 않는 상태’이고 행복의 반대는 ‘행복하지 않은 상태’입니다. 이 착각 때문에 불행을 행복으로 가는 관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마치 커피샾 쿠폰처럼 불행 쿠폰을 열개 모으면 공짜 행복 하나가 나오는 것처럼 말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세상은 그렇게 공평하게 평형을 맞춰주지 않습니다. 불행을 많이 느꼈다고 행복한 일이 생기지 않습니다. 오히려 행복은 내가 행복을 적극적으로 찾아 나설 때야만 찾아옵니다. 또 불행은 또 다른 불행을 끌어오지만 행복은 또 다른 행복을 가져옵니다. 행복에도 복리 효과가 있다는 말입니다.
물론 인간의 작은 뇌로 이해할 수 없는 우연에 의한 큰 불행과 큰 행복이 존재하기도 합니다. 갑작스러운 천재지변으로 인한 상실은 그저 내가 받아들이는 방식을 바꾼다고 불행이 아니게 되지는 않습니다. 또 로또에 당첨되는 것과 같은 큰 기쁨은 내 마음의 문제는 아닙니다. 하지만 일상에서 느끼는 소소한 불행과 행복은 나의 선택인 경우가 많습니다. 내가 불행을 여러 차례 선택했다고 해서 그에 맞춰서 행복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내가 행복을 반복적으로 선택해야지만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행복을 선택하라는 말인데??’라고 의문을 가지는 분들이 많을 것 같습니다. 여러 방법들이 많겠지만 제가 하는 유용한 방법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아주 간단하지만 실제로 수행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그 사건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심호흡을 크게 몇 번 하는 것입니다. 내 마음에 불행하다 혹은 행복하다는 감정이 자리 잡기 전에 시간을 조금 두는 것입니다. 한번 감정이 들어서면 행복을 선택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저도 열심히 노력 중이지만 실패하는 경우들이 많습니다. 아마 대부분 사람들이 그럴 것입니다. 우리는 대단한 수행자들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지나온 길을 보고 불행한 일이 많았다고 느껴진다고 해서 내 선택을 후회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순간에는 내가 최선을 다했을 것이 분명합니다. A 씨처럼 그동안 많은 짐과 책임을 안고 살았다면 정말 고생했습니다. 하지만 힘든 일이 많았다고 행복이 자연스럽게 찾아오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제부터 우리는 행복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A씨도 독자분들도 앞으로는 행복할 권리를 스스로 찾아 나서길 바라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