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과의사가 진료실에서 못한 말 (36)
외국인들이 우리나라에 와서 많이 놀라는 것 중 하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흥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점입니다. 사회 자체는 굉장히 경직돼 있고 차갑지만 막상 안을 들여다보면 흥이 넘쳐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놀랍니다. 옆 나라 일본과만 비교해도 같은 동아시아지만 콘서트나 야구장의 분위기가 확연히 차이 납니다. 회식의 끝이 노래방으로 끝나는 것만 봐도 얼마나 흥이 많은 민족인지 보입니다. 그러나 개개인의 흥과는 정반대로 사회 자체는 흥을 금기시하는 측면이 있습니다. 최근에는 사회적 인식이 많이 바뀌었지만 20년 전만 해도 가수는 ‘딴따라’라고 하는 등 쾌락과 관련된 직종을 낮잡아 보는 시선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점차 행복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늘고 문화의 힘에 대해 알게 되며 쾌락에 대한 인식도 바뀌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쾌락에 대한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특히 정신과 병원에 찾아오는 사람들 중에 이러한 사람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은 작가 버틀란드 러셀은 그의 책 ‘행복의 정복’에서 이러한 사람들을 ‘죄인’ 유형의 사람들이라고 칭합니다. 이 ‘죄인’ 유형의 사람들은 현실과 이상적인 자아상 사이에서 끊임없이 갈등합니다. 그들은 쾌락을 억압하려고 하지만 실제로는 쾌락을 통제하지 못하기 때문에 행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실제로 병원에 찾아오는 ‘죄인’ 유형의 환자들은 무의식적 장벽 때문에 괴로워하는 일이 많습니다. 이들은 무의식적으로 ‘나는 못난 사람이기 때문에 즐거우면 안 돼’ 혹은 ‘신이 금지한 쾌락을 느끼면 나는 지옥에 가게 될 거야’라고 스스로를 옥죕니다. 이런 생각이 자신에게만 영향을 미치면 우울이나 불안 같은 증상으로 나타납니다. 다른 사람에게까지 영향을 미치면 다른 사람을 통제하고 억압하려는 가스라이팅으로 나타납니다. 이런 무의식 때문에 몇몇 종교를 믿는 일부 신도들이 성행위나 연애에 대해 자녀들에게 지나치게 보수적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성장한 아이들은 오히려 성에 대한 뒤틀린 사고를 가진 경우가 많습니다.
이처럼 어릴 때부터 쾌락을 지나치게 억압받은 사람들은 당장에는 착한 아이처럼 보일 수는 있겠지만 나이가 들면서 그 부작용이 드러납니다. 이들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존감이 낮습니다. 또 억압된 쾌락이 질투심, 통제, 폭력성, 회피 등 건강하지 못한 방식으로 방출됩니다.
쾌락이라는 말은 완쾌 혹은 유쾌할 때의 쾌와 같습니다. 또 락도 한자 그대로 즐겁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둘은 합치면 쾌락이란 인간의 감정 상태 중 중요한 요소인 기쁨과 만족을 느끼는 긍정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쾌락과 방탕을 구별하지 못해 쾌락을 억압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방탕은 술, 도박, 여자 등에 빠져 행실이 좋지 못하다는 뜻으로 스스로를 조절하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우리는 방탕을 경계해야 하지만 쾌락은 지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쾌락과 방탕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쾌락은 자신을 통제해야 얻을 수 있는 반면 방탕은 자신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상태입니다. 최초의 쾌락주의자라고 불리는 에피쿠로스도 이에 대해 명확히 하고 있습니다. 그는 ‘삶의 기쁨을 맛보려면 적당히 할 줄 알아야 한다’라고 말하며 통제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통제하는 것도 억압이 아닌가요?’라고 물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이 둘도 엄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가 자신을 통제한다는 것은 나를 수용하고 마음과 몸을 내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억압한다는 것은 부정적인 것에서 회피하고 숨기려고 한다는 뜻입니다.
현명한 쾌락주의자들은 자신을 통제하기 위한 가장 강력한 수단이 이성이라고 말합니다. 즉 자신이 원하는 적당한 쾌락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다행히 우리 몸이 원하는 적당한 쾌락이 어떤 것인지 많은 과학자, 심리학자, 철학자들이 밝혀냈고 현재에도 밝혀가고 잇습니다. 이들에 따르면 핸드폰을 하루종일 보는 일은 쾌락이 아닙니다. 몸이 필요하지도 않은 과도한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쾌락이 아닙니다. 지나친 음주를 하는 것도 쾌락이 아닙니다. 도박이나 게임 등에 지나치게 중독되는 것도 쾌락이 아닙니다. 통제되지 못한 행동은 쾌락이 아니고 방탕입니다. 중독된 사람의 뇌는 고통의 중추인 섬엽이 활성화됩니다. 이처럼 방탕은 결국 삶의 고통으로 이어지게 되는 반면 쾌락은 행복으로 이어집니다.
쾌락을 추구한다는 것은 삶에 필요한 것을 분명히 알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이는 현재 이 순간을 즐겨야 가능한 일입니다. 쾌락주의의 창시자 에피쿠로스의 제자인 호라티우스는 그의 가르침을 두 마디의 말로 압축하여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그 유명한 ‘carpe diem’입니다. 이는 우리말로 하면 ‘오늘을 즐겨라’입니다. 그의 말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쾌락을 조금 더 즐길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