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홀로길에 Jun 21. 2023

사랑? 안싸우면 다행이야

혹여 우리의 사랑이 완전하지 못했을지라도, 행복을 얹어 보낸 시간들을 기억해요.



  취미로 사진을 찍기 시작할 무렵이었습니다. 무료한 시간을 보내고 있던 어느 주말 오후, 딸과 함께 바닷바람을 맞으러 을왕리 해수욕장에 갔습니다. 구름이 많아 예쁜 노을은 사진에 담을 수 없었지만 모처럼 딸과의 데이트가 신났습니다. 함께 조개찜을 배부르게 먹고는 물이 빠져 더 넓어진 해변에서 사진을 찍기 시작했습니다. 마음은 이미 연예인이 된 딸은 자신을 예쁘게 담아줄 기대로 이런저런 포즈를 취했습니다. 


  해변에는 자신의 SNS에 올릴 사진을 찍기 위해 휴대전화를 이리저리 보면서 미소 짓는 사람들로 가득했습니다. 밤이 되자 조명 근처엔 특히 사람이 많았습니다. 그때 주위에서 쏘아 올리는 폭죽을 보다가 찍어보고 싶은 사진이 생각났습니다. 이론은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찍어본 적이 없어서 꽤 어려웠습니다. 몇 차례 시행착오를 겪으며 나름대로 마음에 드는 사진 한 장을 건졌습니다. 


  집에 돌아와 잔뜩 기대에 부푼 채 노트북으로 사진을 옮겼습니다. 꽤 많은 사진을 찍은 탓에 시간이 오래 걸렸습니다. 전송된 사진을 하나씩 살펴보다가 해변에서 확인할 때는 몰랐던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LOVE’에서 마지막 ‘E’의 가운데 부분이 미처 그려지지 못한 겁니다. 왜 이걸 몰랐는지 우습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사진이 됐습니다. 그때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습니다. 


  사는 동안 제가 했던 사랑은 완전하지 못했습니다. 행복하게 시작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늘 아쉬웠고 힘들었습니다. 잔뜩 기대하고 나눈 마음은 서로에게 상처가 되어 돌아오기 일쑤였습니다. 서운해서 입을 다물고 있기라도 하면 속 좁은 사람이 되고, 말을 꺼내면 왜 그렇게 이야기하냐는 핀잔을 듣기도 합니다. 생일 선물을 사기 위해 비상금을 모으면 자신을 속였다며 화를 내고, 그냥 주면 낭만이 없다며 슬퍼합니다. 


  사랑은 모든 걸 주고 이해하는 거라 배웠지만 정작 행동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상대를 너무 의식한 나머지 부자연스럽고 성급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알아채기도 전에 서툴고 일방적인 감정전달로 오해가 쌓여 갑니다. 말이 끝나기를 기다렸다가 꺼내놓을 자기변명이 머릿속에 가득합니다. 저의 사랑이 더 크다고 항변합니다. 결국엔 이겨내야 속이 후련합니다. 내가 옳으니, 네가 바뀌어야 한다고 지워지지 않을 폭력을 행합니다. 


  그렇다고 사랑인 줄 알았던, 지나온 시간을 부정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 시간으로 인하여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으니까요. 수없는 시행착오를 겪어내고 나서야 조금 알 것 같습니다. 사랑을 향한 나의 옹졸했던 마음을, 이기적이었던 마음을 말이죠.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앞으로 제가 맞이할 시간만큼은 조금 더 성장한 사랑으로 행복하길 그려봅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고, 천천히 다가가 마지막 한 획을 그어 보고 싶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오늘 배송될 예정입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