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에 적합한 그룹 IT계열사의 전략적 활용
규모의 경제와 브랜드 파워가 중요한 금융산업에서 금융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국민경제의 건전한 발전을 이바지한다는 목적으로 국내에서 2000년 처음 금융지주회사법이 제정되었다. '22년 말 기준으로 국내 10개의 금융지주회사가 있고, 세 개 금융지주회사를 제외하고는 모두 IT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다. 순수지주회사만 허용하는 금융산업이 아닌, 산업전반으로 확대해 보면, SK, LG, SK 뿐만 아니라 중견 그룹도 대부분 IT계열사를 보유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대외사업보다는 그룹 내 사업 비중이 높고,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공정거래이슈가 있기도 하지만, 점점 중요해지는 디지털/IT기술을 감안할 때 대부분 그룹 내 IT계열사의 위상도 커져가고 있다.
금융그룹에서 IT계열사는 설립배경과 취지도 다르고, 운영 방식도 각양각색이라 어떤 모델이 반드시 성공적이라고 볼 수는 없다. 하지만 공통적으로 IT 인력을 집중하고, 기술 전문성을 높이는 방향을 지향해 왔다고 할 수 있다. 설립 당시 주력 계열사로 부터 신생 IT계열사로 조인하는 IT전문가 입장에서는, 개별 금융기관에 소속되는 것보다, IT전문회사에서 커리어를 개발하는 것이 더 성장할 수 있다는 점이 매력적이었다. 구직자 개인 입장에서도 IT시장 전체와 비교할 때, 금융IT계열사는 업무 강도 대비 상대적으로 처우 경쟁력이 있었다는 점과, 중장기적으로 금융 도메인 지식과 IT지식을 축적해 갈 수 있는 회사라고 인식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룹내부적으로는 종종 갑을 관계(계열사가 갑, IT계열사는 을)에 얽매여서 주도적으로 업무를 수행하지 못하는 점과 함께, 금융기관 자체의 처우 경쟁력이 더 높아지면서 그룹 내 IT계열사의 매력도는 그리 높지 않은 수준이었다.
개인이 아닌 그룹 입장에서 보면, 비용절감과 그룹 시너지 창출이라는 두 가지 관점에서 IT계열사를 포지셔닝해오지 않았나 싶다. 비용절감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고용의 유연성이 적은 개별 금융기관들이 직접 IT전문가를 보유하는 것보다는 IT계열사를 통해서 서비스를 받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했었다고 한다. 물론 필요할 때마다 IT계열사가 아니라 외부에서 서비스를 받는 것이, 단기적으로는 더 저렴할 수 있지만, 품질이 보장된 안정적인 서비스를 제공받기 어렵다는 점에서 IT계열사를 통한 서비스가 중장기적으로 더 나은 선택이 될 수 있었다. 또한 그룹 시너지라는 관점에서 보면, 그룹 공동의 그룹웨어, 보안 등 Shared 서비스 영역에 대해서는, 개별 금융기관이 담당하기보다는 그룹 IT계열사가 담당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다.
디지털 시대에 인터넷 뱅크, Fintech 등 새로운 경쟁자가 등장하고, 디지털 신기술이 비지니스 경쟁력을 좌우하게 되면서, 금융IT계열사를 바라보는 시각에도 변화가 있어왔다.
첫째는 단순한 비용절감보다는 시장에서 디지털 경쟁력을 확보해 가는 데 있어 금융IT계열사의 역할이 커져갔다. ABCDE 전 영역에서 경쟁력 있는 IT전문가를 채용하고 육성하기 위한 미션이 중요해지면서 금융IT자회사를 통한 디지털 인재확보도 주요 과제가 되었다. 기존 금융IT계열사의 HR 구조를 급격히 바꾸기는 어렵지만, 금융기관보다는 인력을 채용하고 개발하는 HR 프로세스를 보다 탄력적으로 운영하면서, 과거대비 보다 공격적으로 디지털 인력을 확보해 갔다.
둘째는 그룹 시너지를 창출하는 방식에서도 보안, 인프라, 그룹웨어 등의 그룹공통서비스를 확대한다는 점을 넘어서서, 클라우드, 데이타 등 실질적인 기반 기술을 제공한다는 관점으로 변화해 갔다. 규모의 경제와 신속한 전개가 가능한 디지털 기술을 그룹 내 활용하기 위해서는, 개별 금융기관보다 그룹IT계열사가 역할을 하는 것이 여러모로 유리하다고 판단한 듯하다.
국내그룹 대표적인 IT계열사들도 디지털 시대에 많은 변화를 만들어 갔다. 단순한 사람 중심의 서비스에서, 솔루션 중심의 서비스로 변화해 가면서, 그룹IT계열사들도 디지털 혁신의 역할을 강화해 갔다. 하지만 삼성SDS, LG CNS, SK 등 대표적인 그룹IT계열사를 살펴보면, 아직도 그룹 내 사업비중이 60%를 넘고 있다. 글로벌 제조 경쟁력을 갖추어야 하는 국내 그룹입장에서는, 대외 사업보다 그룹 내 디지털 혁신이 더 우선적이었다고 생각된다. 코로나로 개발자 시장이 과열된 것과 맞물려, 그룹 내 계열사별 처우에 있어서도 IT계열사들의 처우 순위가 급격히 상승했다. 클라우드, AI 등 새로운 기술의 적용에 있어서도, 공정거래에 문제가 되지 않은 선에서 그룹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산업과 무관하게 그룹의 디지털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IT계열사를 활용하는 몇 가지 관점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사업추진에 있어서 그룹의 전략적 투자인지, 계열사별 개별사업인지에 대해 충분히 논의해야 한다. 개별 계열사 입장에서 보면, 비용 대비 효과 관점에서 (그룹IT계열사에 수의계약으로 발주하는 것이 아니라) 공개경쟁을 통해서 가장 경쟁력있는 IT회사를 선정하는 것이 타당해 보인다. 경쟁을 통하면 가격은 낮아지게 되어있고, 가격적인 측면에서 매력적인 외부IT회사들이 적지 않다. 단기 프로젝트에서는 매력적인 가격일 수 있지만, 결국 중장기적으로 가격을 지불해야 한다. ( 대부분 SI사업자들도 일회성 SI사업을 통해서는 수익성을 확보할 수 없어서, 결과적으로 어떤 방식을 통해서라도 고객과의 중장기적인 관계를 통해 낮아진 SI수익성을 회복하는 노력을 하게 된다.) 더구나 그룹의 전략적인 투자로서, 내부 인력을 양성하고 지속적으로 개선해 가야 하는 핵심 디지털 플랫폼 사업을 외부에 맡기는 것은 단기적인 관점에 치우친 결정이 되기 쉽다.
금융은 대표적인 규제산업이고, 감독당국을 포함한 다양한 기관으로부터 감독과 감시를 받고 있다. IT프로젝트 사업 추진에 있어서도, 참여 사업자 간의 공정성 유지를 포함해서 많은 행정적인 노력을 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그룹의 전략사업을 IT계열사가 수행하게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종종 IT계열사가 그룹의 전략사업을 수행하는 전제조건으로, 선제적 투자를 요구하기도 한다. 구매를 담당하는 계열사 실무진 입장에서는 추후 감사에 대비하여, 배임 또는 계열사 부당지원을 하지 않았다는 증빙을 해 놔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그룹은 순수지주회사로서 소유과 경영이 분리되어 있고, 기업집단에서 대주주 이익을 위한 일감몰아주기와 같은 공정거래상의 이슈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공정성 확보를 위한 불가피하게 기울여야 하는 노력과 비용이 적지 않다.
시장자본주의 경제에서 경쟁이 발전의 원동력이기도 하지만, 규모의 경제가 작동하는 IT시장은 일정 규모 이상의 사업을 통해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경우가 많다. 미국이 인플레이션 감축법이라는 명분아래, 자국 회사에 유리한 인센티브를 제공하 듯이,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는 클라우드와 같은 대규모 IT투자사업 추진에 있어서 그룹전체를 고려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그룹의 5개년 자원소요계획을 바탕으로 CSP(클라우드 서비스 프로바이더)사들에게 물량을 커미트하고 공격적인 할인도 받아낼 수 있다면, 개별 계열사별로 의사결정하게 하는 것보다 비용효율적 방안으로 추진할 수 있을 것이다.
디지털 시대에 그룹의 IT계열사를 활용하는 방법에 있어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금융그룹 IT계열사만이 아니라, 모든 산업의 그룹 IT계열사 모두에 해당하는 논리라고 생각한다.
첫째, 전략적인 측면에서 비용절감 차원을 넘어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그룹 시너지를 확대하는 방안을 더 고민해야 한다. 클라우드와 SaaS를 중심으로 그룹 시너지를 위한 Digital Foundation을 구축해 가는 것이 방법 중 하나일 것이다. 과거 IT계열사는 그룹의 데이타센타를 운영하고, 계열사 소속의 HW, SW IT인프라를 운영하는 방식의 서비스를 제공해 왔다. 클라우드 시대를 맞아, 그룹차원의 비용절감과 시너지 확대의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 Private 클라우드와 Public 클라우드를 포함하는 그룹전체의 클라우드 아키텍처를 구성하고, 공동의 보안 랜딩존과 DevOps 구성 등 그룹차원에서 표준화해 나갈 의미있는 과제들이 많다. 나아가 Cloud Native로 전환해 가는 계열사별 디지털 플랫폼에서, 공통 마이크로 서비스를 추출하고 개선하는 역할, 그룹 공통 서비스를 포함하여 그룹 SaaS화 하는 과제 등 새로운 차원으로 시너지를 창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
둘째, 환경적인 측면에서 그룹IT계열사와 파트너들의 잠재력을 더 발휘하게 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개별회사 차원에서 추진하기 쉬운 과제는 아니지만 보다 많은 SW소유권을 IT자회사에 부여하는 방안과 보안/하도급법 등을 과다하게 적용함으로써 저하된 전반적인 생산성을 높이는 방안을 지속적으로 추진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국내 모 그룹 SI회사는 계열사에 SI서비스를 제공할 때, 공식적으로 계약문구에 SW 산출물에 대한 발주사와 수행사의 공동소유를 명시하고 있다. 정부에서도 국방과 안전과 같이 기밀이 요구되는 영역을 제외하고는, 1인 사업자에 대해서도 SW산출물의 공동소유를 인정하고 있다. IT계열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획득된 SW산출물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나아가 그룹에 맞는 AI코딩을 발전시키기 위한 기초 데이타로 활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추가적으로 보안/하도급법 등이 규정을 과다하게 해석하여, 그룹 IT계열사 직원이나 파트너사 직원들에게 제한된 권한을 부여한 결과로 저하된 생산성 이슈를 주기적으로 점검하고 해결해 가야 한다. 관료주의적 성향이 강한 금융기관에서는 항상 과도하게 리스크를 회피하는 경향이 있고, 실제 권한을 가지고 업무를 해야 하는 IT계열사, 파트너사 직원들에게는 정작 접근권한이 제한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생산성뿐만 아니라 시스템에 대한 주인의식도 갖게 할 수 있도록 파트너사 직원들의 모래주머니를 제거해 주는 작업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