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12월 12일
오늘 날씨가 작년 말부터 올해 초에 있었던(그래봐야 나흘이지만) 나자레의 날씨와 너무 비슷해서 기분이 아주 좋다. 신기하게도 작년 나자레에 도착했던 날이 12월 30일 쯤이다. 내가 지금 지내는 양주의 위도는 37.8도, 나자레의 위도는 39.6도로 비슷하기 때문에 그렇게 신기할 것까지는 없지만서도 약간은 신기하다. 잊고 있었다가 갑자기 생각난 꿈처럼. 딱 지금처럼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면서 맛있는 음식과 맛있는 와인 한잔 마시기 좋은 날씨었다. 처음 도착해 미리 예약한 서프빌리지에 짐을 풀고 바로 앞의 조그만 광장에 있는 식당 두 곳 중에 파란색 간판이 달린 곳으로 들어갔다. 붉은색 간판의 식당(인지 카페인지 모를 곳)에는 사람들이 꽤 있었지만, 물고기를 정성스레 그려놓은 파란색 간판에선 왜인지 모르겠지만 이곳에선 정말 맛있는 생선을 팔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좁은 테라스 좌석을 지나 내부에는 5~6 테이블밖에 없는 자그만 식당이었고, 손님은 테라스 좌석에 앉아 러시아어로 수다를 떨고 있는 가족이 유일했다. 햇빛이 제일 잘 들어오는 마주보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대구가 써져있는 4가지 중 제일 마음이 가는 메뉴로 시켰다. 사실 리스본에서 정말 말라 비틀어진데다가 너무 짜서 와인 맛을 느낄수도 없는 대구요리를 먹었기 때문에 주인에게 요리에 대한 설명을 부탁했지만, 알아듣지를 못했기 때문에 제일 손이 가는 메뉴로 시켰다. 그 사이 러시아 테이블에는 요리가 나왔고, 내 테이블에는 와인이 나왔다. 나는 술을 한잔만 먹어도 얼굴이 새빨개지기 때문에 한창 낮부터 벌게진 채로 돌아다니면 "어휴 저 동양인... 고주망태가 다 됐네" 할까봐 자제를 해보려고 했지만 주인이 잔 끝까지 와인을 채워주는 바람에 그건 이미 틀렸다 싶었다. 그때까진 동양인을 한 명도 못봤고, 다른 마을로 갈때까지 본 동양인은 한명밖에 없었다. 그러니까 나는 연말에 있던 동양인의 대표나 마찬가지였고, 마을의 누군가가 "내가 저번 연말에 동양인을 봤는데, 아무래도 동양인들은 다 고주망태야"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무슨말을 하고있는거지).
사진은 나자레의 북쪽 해변이다. 나자레는 순례자들에게는 성모 마리아의 발현지로 유명하고, 서퍼들에게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파도가 온 마을로 유명하다. 2017년 브라질 서퍼가 무려 24m 높이의 파도를 타서 기네스북에 등재되어있는 곳이다. 24m라니, 복무할 부대가 나오기 전에는 저기 동해안에 있는 부대를 배치받아 주말내내 서핑만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했었는데, 서핑은 커녕 밖의 공기를 마시는 건 쓰레기를 버릴 때와 택배를 가져올때밖에 없다. 젠장 하루빨리 이 팬데믹이 기록 속으로 사라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