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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뉴지니 Dec 26. 2023

조울증이 완치됐다고 우울하지 않은 건 아니야

주변을 둘러보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우울증이나 조울증, 공황장애와 같은 정신질환을 앓는다는 것을 알게 되곤 한다. 그럴 때면 확실히 예전보다는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는 것에 대한 편견이 나아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자. 정신질환이 완치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각종 정신질환으로 상담을 받거나 약을 먹는 중이라는 사람들은 많아도 ‘나 극복해서 완치 판정받고 병원에 가지 않게 됐어'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쉽게 들을 수가 없다.



그 이유가 뭘까?



아마도 병을 앓고 있는 상태가 아니라면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이지 않을까 싶다. 작은 흠도 나의 치명적인 약점이 될 수 있는 세상이다. 이제 해당 사항이 없다면 더더욱 밝힐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들은 쉽게 들을 수 없지만, 실제 이 병을 앓거나 비슷한 증상으로 힘들어하는 사람들에겐 꼭 필요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용기 내서 글을 쓰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정신과에서 진료를 받아서 약을 먹어도 지금 현재 정확히 어떤 병을 앓고 있는지, 어느 정도인지 확실하게 듣기가 힘들다. 외상이 아니라 내상이기 때문에 쉽게 판단할 수가 없다. 또한 의사는 나의 주관적인 말로만 판단을 해야 되므로 더욱 그러하다. 그리고 실제로 정신과는 상담을 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한정된 진료시간에 많은 이야기를 할 수도 없다. 임상적으로 드러난 증상에 대한 처방만 있을 뿐. 그러니 환자들은 불안감이 더 커지고 관련 정보와 의견을 듣고 싶어 여기저기 찾아보게 된다. 누구나 자기 이야기가 되면 그렇다. 내가 같은 입장일 때 충분한 정보나 그런 상태일 때 느낄 수 있었던 감정들, 극복 과정들을 접하지 못했기 때문에 언젠가 내가 완치되는 상황이 오면 그런 부족한 부분들에 대해서 알려주고 싶었다. 불가능할 것이라 꿈꿨던 것들이 사실상 이루어지는 순간이 온 것이다. 드디어.  

    

완치 판정을 받은 그날도 나는 병원에 가서 선생님을 붙들고 울면서 힘들다는 얘기를 하고 있었다. 가장 최근의 나는 텔레비전 속의 사람들이 이상하게 보이는지 아닌지로 이상 증세를 파악하고 있었다. 그 당시 나는 영상물을 보는 것이 힘들었고 감정조절이 잘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생각하는 방향으로 계획을 세우고 노력하고 있었고, 주변 정리도 잘 되어 있었으며 회사 생활도 유지해나가고 있었다. 의사 선생님은 종합적으로 판단한 결과 '스트레스로 인해 찌그러져 있지만, 괜찮아' 라며 이제 약도 필요 없고, 병원도 오지 않아도 된다고 하셨다.           


나는 그렇게 완치 판정을 받았다.

                







전쟁이 끝난 직후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마치 종전 후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는 명령을 받은 수용소의 포로가 된 기분이었다. 나를 24시간 감시하고 괴롭히던 가해자는 순식간에 피해자와 구별할 수 없게 옷을 갈아입고 섞였다. 한 순간에 보통 사람으로 판명받은 나는 현실감을 잃었다. 이질감이 들었다. 평생 벗어날 수 없을 것만 같았던 높은 철창과 담벼락은 너무나도 허무하게 무너져 내렸다. 의사 선생님을 붙잡고 넋이 나간 채로 물었다.


'선생님, 하지만 저는 여전히 너무 힘들어요.'


완전히 패닉 상태에 빠졌지만, 이제는 내 힘으로 이겨낼 정도까지 회복되었다는 이야기만 들었을 뿐. 전쟁 후 남은 잔재와 폐허가 되어버린 나의 세상을 수습하는 것은 나의 몫으로 온전히 남겨졌다.


크게는 건강과 소비, 두 가지 커다란 과제가 생겼다.

많이 먹지 않아도 호르몬의 변화로 살이 찔 수밖에 없을 것이라던 약의 부작용, 그로 인해 생긴 건강상의 문제, 조증과 울증을 겪으며 제어하지 못했던 소비 습관의 결과 또한 오롯이 남았다.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무기력해진 스스로를 수습하는 것이 너무나도 힘들었다. 하지만 폐허가 된 마을에 언제까지 주저앉아 울고 있을 수만은 없다. 눈물을 닦고 머리를 질끈 묶고 마음을 다잡기로 했다.     


새로 짓는 집은 예상하지 못한 천재지변이나 공격에도 버틸 수 있도록 더욱 튼튼하게 안전 설계를 할 것이다. 기둥 하나를 아무리 공들여서 튼튼하게 지어도 하나가 무너지면 모든 것이 무너진다. 안전 기둥을 더욱 촘촘하게 세워 하나가 무너져도 다른 기둥들이 받쳐줄 수 있도록 무게 중심을 분산시켜 나갈 것이다.   



   





조울증을 완치했다고 해서 우울하지 않은 건 아니다.


세상이 갑자기 아름다워지거나 모든 문제와 고민을 다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긍정적이지도 않다. 병을 극복하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행복한 감정이 지속되는 것도 아니다. 이미 자리 잡은 나쁜 습관들이 바로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완전히 파괴된 세상을 재건하는 것은 여전히 부단한 노력이 필요하고, 더욱 세심하게 돌봐야 한다.




이제 조울증 완치 그 이후의 이야기를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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