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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복주 엄마 Dec 30. 2022

노벨상 수상자 아빠가 아들을 키운 교육방법

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의 어린 시절 이야기

리처드 파인만이라는 명한 물리학자가 있다.


MIT를 졸업 후 물리학 교수가 되어 양자역학과 관련된 연구에서 많은 공로를 인정 받아 노벨상을 받았다.


그의 일화를 모은 책 '남이야 뭐라 하건'을 보면, 파인만의 아버지가 어릴 때 파인만에게 어떤 교육을 했는지가 자세히 나오는데 아이를 똑똑하게 키우고 싶은 부모들은 꼭 한번 읽어보면 좋을 것 같은 내용이다.


이 책의 첫장 제목은 '나는 모든 것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로 시작한다.


내가 겨우 어린이용 식탁 의자에 앉아서 음식을 먹을 수 있을 정도로 자랐을 때 아버지는 여러 가지 색깔의 작은 타일을 잔뜩 집에 가지고 오셨다. 우리는 흰색 타일 두 장에 파란색 타일 한 장, 다시 흰색 타일 두 장에 파란색 타일 한 장 하는 식으로 좀 더 복잡하게 타일을 세우게 되었다. 어머니가 그 놀이 그만 좀 하라고 말하면 아버지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얘한테 '패턴'이 무엇인지 그리고 패턴이 얼마나 재미있는 것인지를 가르쳐 주려는 것이오. 이것은 초등학교에서 가르치는 산수와 비슷한 것이오."라고 대답하셨다. 아버지는 이런 식으로 내가 아주 어렸을 때부터 세상에 대해서, 그리고 이 세상이 얼마나 흥미로운 것인지에 대해서 가르쳐 주셨다.


심상치 않은 일화로 시작하는 아버지의 교육 이야기는 그 이후에도 계속해서 감탄을 자아냈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히고 '브리태니커' 백과사전을 읽어 주곤 하셨다. 아버지는 나에게 읽어주는 모든 내용 하나하나를 실제 상황처럼 실감나게 바꾸어 묘사하며 설명해 주시곤 하셨다. 예를 들어, 티라노사우루스 렉스라는 공룡이 키가 약 7~8미터 정도, 머리 둘레가 약 2미터 정도이라는 내용을 읽을 때 아버지는 이 대목에서 읽기를 멈추고 "자,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생각해 보자. 만약 이 공룡이 우리 집 앞 뜰에 서 있다면 머리가 여기 2층 창문에까지 닿을 정도로 키가 크지만 머리가 너무 커서 창문 안으로 들어올 수는 없겠구나."하는 식으로 설명하셨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는 정말 감탄스러웠다. 파인만의 아버지는 아이의 사고력을 키우는 책 읽기 방법을 그냥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듯했다.  


그후에 이어지는 이야기는 더욱 놀라웠다.


아버지는 주말이 되면 나를 데리고 숲을 거닐면서 숲 속에서 일어나는 재미나는 자연현상에 대해 이야기해 주셨다. 어떤 새를 발견했을 때 아버지는 내게 그 새에 대하여 이렇게 가르쳐 주셨다.
"저 새가 보이지? 저 새의 이름은 스펜서 휘파람새라고 한단다. 이탈리아 어로는 '추토 라티피다'라고 하고, 포르투갈 어로는 '봉다 페이다', 중국어로는 '충롱따', 일본어로는 '가타노 데케다'라고 한단다. 이렇게 세상에 있는 모든 언어로 저 새의 이름을 알 수는 있겠다만 그래도 저 새가 어떤 새인지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를 수 있단다. 단지 세계의 다른 곳에 사는 사람들과, 그 사람들이 저 새를 뭐라고 부르는지에 대해서만 알게 된 거지. 그러니까 우리는 저 새를 관찰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도록 하자꾸나. 그것이 정말 중요한 거란다."


리처드 파인만의 아버지는 '사물의 이름을 아는 것만으로는 그것의 본질을 알기 어렵다'는 심오한 철학적 진리를 깨달은 분이었다.


"저것 봐라. 저 새는 자기 깃털을 쪼고 있잖니? 왜 자기 깃털을 쪼는 걸까?
"새가 날아다니는 동안 깃털이 흐트러져서 깃털을 가지런히 하려고 그러나 봐요."
"그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새가 날고 난 직후에는 깃털을 많이 쫄 것이고 땅에 내려온 후 시간이 지나면 별로 쪼지 않겠네. 그럼 정말인지 같이 관찰해 보자."
우리는 땅에 내려와서 좀 돌아다닌 새나 방금 땅에 내려온 새나 거의 똑같이 깃털을 쫀다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었다.
"모르겠어요. 왜 새가 깃털을 쪼는 거죠?"
"깃털 속에 이가 있어서 가려워서 그러는 거란다. 이는 새 깃털에서 떨어지는 단백질 부스러기를 먹고 살지. 이의 다리에서는 부드럽고 연한 물질이 나오는데, 작은 진드기들이 이의 다리에 붙어서 그 물질을 먹고 살지. 그런데 그 진드기들은 그 물질을 완전히 소화시키지 못하고 설탕 같은 물질을 뒤꽁무니로 배설하거든. 그러면 그 속에서는 박테리아가 자라게 된단다. 이런 식으로 음식물이 될 만한 것이 있는 곳엔 그것을 먹고 사는 '어떤' 생명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지."


자신이 알고 있는 지식을 그냥 주입식으로 냅다 가르쳐 주는 것이 아니라, 현상을 관찰하고 아이가 스스로 생각해볼 시간을 충분히 주고 그 생각이 맞는지 검증하는 관찰을 한 후에서야, 파인만의 아버지는 차근차근 아주 기초적인 원리부터 자세하게 지식을 가르쳐 주었다.


이런 파인만 아버지의 교육 방법은 아마도 요즘 교육계에서 추구하는 가장 정석적인 '학습자 중심의 좋은 수업'의 예가 아닐까 싶었다.


이렇게 훌륭한 교육을 받고 잘 자란 파인만은 자연스럽게 이 세상의 모든 자연현상에 지적인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고, 아주 어린 시절부터 혼자 도서관에서 어려운 수학책을 빌려와서 풀어보면서 노는 것이 취미였다고 한다.


파인만이 MIT 대학에 들어갔다가 방학 때 집에 돌아왔을 때 아버지가 파인만에게 한 질문도 정말 범상치 않다.


"이제 네가 과학에 대해서 많은 것을 배웠을 테니 내가 늘 궁금하게 여기면서도 잘 이해하지 못했던 것 하나만 물어보자."
나는 무엇이냐고 여쭤 보았다.
"원자가 한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변할 때 광자라고 부르는 빛의 입자를 방출한다고 알고 있는데..."
"그렇습니다."
"그렇다면 광자가 원자 속에 들어 있다가 방출되는 것이냐? 광자는 어디에서 온 거지? 어떻게 해서 생긴 것이냐?"


이런 파인만 아버지의 일화를 보면, 결국 아이를 똑똑하게 만드는 것은 '그 부모가 얼마나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자세로 살고 있는지'에 달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파이만의 아버지는 그 자신부터가 자신의 직업적 필요나(파인만 아버지의 직업은 유니폼 판매원이었다) 아이의 교육과는 상관 없이, 세상에 대해 호기심을 가지고 언제나 공부하는 자세로 세상의 지식들을 배워 나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 아버지의 많은 지식들과 학문적 탐구자세가, 자식에게 이 세상 만물의 원리를 하나하나 설명할 때 얼마나 좋은 토양분이 되었는지는 말할 것도 없다.


아이들의 학업성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결정적 요인이 무엇인지를 찾기 위해 존스홉킨스 대학의 콜만 교수가 수행한 연구의 결과물인 '콜만 보고서'는 당시 미국에 큰 충격을 주었다.


그 보고서의 내용은 학교의 시설, 설비, 교육과정, 교사의 유능성 같은 학교 내적 요인보다 부모의 양육방법, 부모의 사회문화적 자본, 가정배경, 사회경제적 지위와 같은 가정 내 요인이 학업 성취에 매우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이었다.


이때 콜만은 단순히 사회경제적으로 뛰어난 부모가 아닌 양질의 사회문화적 자본을 제공하는 부모가 자녀의 학업성취에 더 큰 영향을 준다는 것을 밝혔는데, 그 사회문화적 자본이라는 것은 집안에 읽을 책들이 많은 것, 학문친화적이고 독서가 일상화되어 있는 가정 분위기, 부모가 자녀와 자유롭게 토론하는 것 등 자녀에게 학업적으로 다양한 자극과 기회를 제공하는 것을 말한다.


독서이론에서는 학업을 수행하는 데 기초가 되는 독서능력을 '매튜 효과'로 설명하기도 한다. 매튜 효과란 사회적 명성이나 물질적 자산이 많을수록 그로 인해 더 많이 가지게 되고, 그 결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이가 점점 커지는 현상을 일컫는다. 이러한 매튜 효과는 독서 능력에서도 똑같이 적용된다.


어릴 때부터 어휘력이 높은 학생들은 이 어휘력을 바탕으로 점점 더 많이 쉽게 읽게 되고, 많이 읽을수록 어휘력은 더 높아지고, 이것이 다시 독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반대로, 어휘력이 부족하면 읽는 데 어려움을 느끼고 흥미가 떨어져서 독서량이 더 부족해지고 어휘 습득의 기회가 줄어들어 다시 또 어휘력 격차가 늘어나는 악순환이 일어난다.


공부하라는 백 번의 잔소리보다, 이 세상에 대해 열린 호기심을 가지고 스스로 책을 찾아 읽으면서 세상에 대해 배워 나가는 아이로 만드는 것이 훨씬 더 공부 잘하는 자식을 만드는 데 효과적인 이유이다.



나도 어릴 때의 기억을 떠올려 보면, 내가 책을 많이 읽게 만들어 준 분은 단연코 어머니였다.


엄마는 내게 세계문학전집에 속하는 책들을 하나씩 사다 주면서 이렇게 소개하고는 했다.


"이 책은 '폭풍의 언덕'이라는 책인데, 엄마가 고등학교 때 정말 재밌게 읽었던 연애소설이야."


"이 책은 '이반데니소비치의 하루'라는 책인데, 감옥에 갇혀 있던 하루를 정말 실감나게 쓴 책이야. 재밌어."


이런 식으로 엄마 자신이 이미 읽었던 책들을 하나하나 추천하는 이유와 함께 소개하면서 건네 주면 그 책에 대한 호기심이 안 생길 수가 없었고, 책을 읽는 동력이 되었다.


집에 있던 많은 책들에도 자연히 손이 가서 책을 많이 읽게 되었는데, 그 책들은 엄마가 나에게 읽히기 위해서가 아니라 어머니 본인이 읽기 위해 사신 책들이었다. 엄마 스스로가 평소에도 책을 항상 읽고 있으니, 그 모습을 따라서 나도 책을 많이 읽을 수 있었다.


엄마가 어릴 때부터 틈틈이 해줬던 역사 이야기들도 재밌게 들었다가 나중에 학교에서 관련 내용이 나오면 더 큰 흥미를 갖고 배울 수 있었다.


아침마다 오전 8시가 되면 엄마는 EBS의 모닝스페셜을 틀어서 영어 방송을 들으면서 아침을 먹고는 했다. 그 모닝스페셜도 엄마는 내 공부를 위해서가 아니라 당신이 공부하기 위해서 트신 것이었다. (우리 어머니는 60세가 넘은 지금까지도 매일 아침 8시가 되면 모닝스페셜을 들으면서 영어 공부를 하시고, 그 시간에는 방해된다고 엄마한테 전화도 못하게 하신다..)


이런 엄마 덕분에 공부를 좀더 쉽게 좋아할 수 있게 되었던 것 같다. (공부하라는 잔소리만 조금  하셨어도 더 좋아했을 수도 있을 것 같다...ㅎㅎ..)



나중에 복주가 조금 더 자라서 이 세상에 호기심을 가지고 질문을 하게 될 날들이 정말 기다려진다.


"엄마, 무지개는 왜 뜨는 거예요?"

"엄마, 하늘은 왜 파란 거죠?"

"물고기는 어떻게 물속에서도 숨을 쉴 수가 있죠?"

"사막은 어떻게 만들어 지는 거죠?"


이런 여러 질문들에 좀더 재미있고 쉽게 답변을 자세하게 해줄 수 있는 엄마가 되기 위해 나부터 많이 책을 읽고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리고 나 역시 나의 일에, 공부에, 독서에 많은 열정을 쏟는 엄마가 되어서, 공부하라는 잔소리나 학원에 억지로 앉혀 놓는 방법으로가 아닌, 그런 엄마를 보고 자란 아이의 자연스럽고 자발적인 선택으로 학문에 호기심을 가지고 지식을 탐구해 나갔으면 하는 바람을 가진다.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배움을 즐기고 좋아하는 것.


이것보다 부모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더 큰 평생자산이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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