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7월의 기록
활자를 읽거나 이미지를 보는 일을 업으로 갖기 전부터 독서와는 거리가 멀었다. 뭐든 간단 명료하게 정리되어 있는 마지막 한 구절, 한 장면을 좋아했고 좁은 자간으로 글자가 빼곡하게 가득한 두꺼운 책을 기피했다. 독서라는 행위 자체가 조기교육에 의해 학습된 기술이거나, 사교성이 부족한 사람들이 자아 성찰과 사회성 증진을 위한 수단으로 삼는 것이라 생각했다. 그런 내가 요즘 시간을 내서라도 찾는 곳이 서점이다.
서점 특유의 분위기와 종이 냄새가 좋다. 번화가의 화려하고 자극적인 향이 가득한 핫 플레이스와는 다르게 단아하고 수수한 꽃들이 가득한 꽃 밭 같은 느낌이랄까.
서점 이곳 저곳에서 지성인의 표정을 짓고 있는 내 모습이 좋다. 지적인 섹시함을 풍기는 그곳의 사람들과 같은 무리가 된 듯한 느낌에 스스로 만족한다. 무엇보다 좋은 건 억지스럽지 않은 여유로움이다. 이 곳은 여유를 즐기기 위해 준비하는 일련의 과정을 생략하는 공간이다. 시간을 내어 해시태그 검색을 하거나 어렵게 예약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여유를 즐기고 있는 모습을 멋스럽게 담아낼 필요도 없고 주변 사람들을 의식할 필요없이 오롯이 책과 일대일로 마주한다. 결국 이 곳도 하나의 상점이지만, 이 여유를 환산해서 돈을 지불할 필요는 없다.
읽고 싶은 책이라기 보다는 사고 싶은 책들이 꽤나 많다. 책 제목에 끌리고 표지 디자인에 끌리고 가끔은 아무도 발견하지 못할 것만 같은 구석에 꽂혀있는 책이라 끌린다. 몇 천 권 아니 몇 만권 되려나? 서점을 가득 매운 책들을 보다가 문득 죽기 전까지 몇 권의 책을 읽을 수 있을지, 그러하면 어떠한 경지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생각보다 길어지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격리시간이 늘어났음에도 책을 읽는 사람들이 늘어나지 않는 듯하다. 추천 알고리즘을 통해 만들어진 취향저격 영상 라이브러리에 의존하거나 구독과 좋아요 만으로도 즐길 수 있는 컨텐츠가 방대한 시대에 살고 있으니까.
어느 북 칼럼니스트의 말 처럼, 출판계의 생태는 변화하고 있고 실제로 출판계는 단군 이래 최대의 불황을 맞이했다. 글과 책의 무게는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책을 소장하는 의미도 사그라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바스락거리는 손맛을 안다면, 아날로그 감성의 LP판의 가치를 수집하 듯 책장을 채워 보길 권한다.
독서가 마음의 양식이 라는 거창할지 몰라도 책 한 권에서 느껴지는 한끼 같은 든든함은 확실하다.